Prologue


 한 남자가 길을 걷고있다.
 부스스한 빨간색, 그렇다고 새빨갛지만도 않은 주황빛이 약간 섞인 머리칼을 지닌 자칭 키 185cm의 남성은 8월의 한여름이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덥지도 않은지 긴 소매의 하얀셔츠에 긴 남색계통의 청바지를 입고있다.
 네가지 지형, 꽃과 나무가 만개하는 남동쪽의 숲, 햇볕이 쨍쨍하게 내려쬐는 북동쪽의 바다, 거친 바람에 모래를 흩날리는 남서쪽의 사막,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으로 뒤덮인 언제 분화할지 모르는 화산지대에 둘러쌓인 이 중앙도시는 8월이 되어 여름에 접어든 한창때이다.
 저렇게 입고도 어떻게 매일 같이 저런 식으로 긴 옷을 입고 땀 한방울 흘리지 않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그런 그를 뒤따라가며 불러세운다.

 "레인, 어디가냐"

 자신의 이름을 불리워도 돌아보지 않는 그는 아무래도 벌써 자신의 이름을 잊어먹은 듯하다.
 하는 수 없이 그의 뒤까지 달려가 어깨를 두드리자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


 내 이름은 레인이다.
 레인......
 도저히 하늘에서 내리는 비 밖에 떠오르지 않아 익숙해질것 같지가 않다.
 뭐? 이름인데 어째서 익숙해지지 않느냐고?
 그야 이 이름을 받은지 아직 하루도 채 안되었으니까.
 나는 어제 정식으로 기사가 되었다.
 지금의 옛날의 만화책에서나 보는 기사와 달리 도시 안의 축제나 행사준비나 도시 밖의 주변 지형탐색이니 하는 이상한 직업이다.
 전혀 기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직업이지만 아무래도 이 나라의 공주가 기사가 좋아, 라고 한 모양이다.
 꽤나 제멋대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던 그 공주를 직접 만난것이 바로 어제 낮이었다.
 이름 같은건 생각나지 않는, 내 뇌가 그딴 쓸모없는걸 기억할 리가 없다, 어쨌든 그런 공주의 선택을 받아 기사로 뽑히는게 일년에 약 100명, 이게 또 쓸모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되지만 돈이 꽤나 되기 때문일까, 경쟁률이 대단하다.
 뽑히는 기준의 딱 하나, 공주의 눈에 드는 자, 그것뿐.
 정말 이상한 선발기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그 기사 채용에 난 절대로 참가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친구놈과의 내기에서 졌을뿐인데 이런 상황이 될 줄이야.
 어찌됐든 그렇게 되어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채용된 나는 기사들에게 부여되는 두번째 이름을 받았다.
 근데 이게 또 지랄맞은게,

 "어라, 당신 이름이 특이하네요? 후후, 좋은 생각이 났어요. 당신, 이제부터 당신의 이름은 레인이에요. 레인 보우, 그게 당신의 두번째 이름이니까 잊지말도록 해요"

 라고 말하곤 반대할 순간도 없이, 아니 반대했다고 달라질건 없겠지만 그렇게 순식간에 이름이 정해진 것이다.
 뭐, 이미 정해진건 어쩔 수 없다지만 레인은 둘째치고 보우라니 보우라는 성씨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이런 어제의 일을 생각하는 도중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려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검은 머리카락에 남자인 내가 봐도 잘생겼다고 생각되고 키도 꽤 커서 나와 비슷한 놈이 서있었다.
 그 망할 놈은 곤색의 반팔티에 베이지색 칠부바지를 입고 있었다.

 "안녕, 레인. 부르면 대답 좀 하라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녀석에게 인사를 돌려준다.

 "망할 자식아, 그 이름 부르지말라고"

 어제 기사로 임명되고부터 놀려오는 이 망할 녀석은 망할놈1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하겠지.
 이 망할놈1이 내가 기사가 된 제일 결정적인 역할을 한 녀석이다.
 그때 그 내기를 안 했어야 되는데.

 "왜? 원래 이름보다 훨씬 낫지않냐?"

 "시끄러워"

 "이름이 무지개가 뭐야, 무지개가"

 무지개.
 그것이 내 본명이다.
 땅 지(地)에 열 개(開),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 이름을 웃는 놈은 맞아도 싸다.
 그런 의미에서 녀석의 팔에 주먹을 날린다.
 절대 기사가 된 분풀이가 아니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러고보니, 넌 누구냐?

 01


 어쨌거나 이런 녀석과 함께 길을 걸어 도시의 정중앙에 세워져있다고 하는 성의 앞, 대광장에 도착했다.
 들어오는데 기사의 신분증 검사를 하는걸 보니, 참고로 기사 신분증엔 기사 이름이 적혀있어 검사하는 녀석이 레인 보우라는 이름을 보고 웃어댔지만, 어쨌든간에 여기 있는 녀석들은 전부 기사인 모양이다.
 그 수는 약 만 명.
 알고는 있었지만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여있는건 둘째치고 노인이나 꼬마도 끼어있다.
 기사에 관심이 없었기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옆에 있는 놈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까지 많은 기사가 모인건 처음인 듯 하다.
 이유는 지금부터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겠지.
 그래봤자 또 행사니 축제니 하는 말을 하려고 하겠지.
 그만큼 재미난걸 추구하는 여자니까.
 성의 안에서 마이크라도 앞에 두고 말하는건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들리려나. 안녕하세요, 여러분"

 공주의 인사에 합창이라도 하는지 안녕하세요, 라고 소리치는 기사들.
 아, 물론 난 아니지만.
 기사라고 해도 남녀노소 불구하고 모인 집단에 불과해서 제대로 된 제식 따위 없다.
 그냥 마을 주민이랑 차이가 있다면 도시 밖을 나설 수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 뿐이다.

 "음음, 오늘 여러분을 모은건 별게 아니라 한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있어서 모았어요.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말할게요. 지루한건 질색이니까. 사실 저희 아버지인 왕께서 행방불명 되셨답니다"

 뭣-.
 순식간에 수근대는 기사들.
 그도 그럴게 한 나라의 왕이 사라졌다는 것이니까.
 옆에 서있는 녀석을 보자 뭔가 중얼거리지만 잘 들리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러거나 말거나 공주는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말이죠. 그 왕을 찾아 데려와주시는 기사분에게는 무지막지한 상금을 드리겠습니다!"

 무슨 행사하냐?!
 이벤트라도 하는 듯이 말하는 공주가 그 뒤에 말한 액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그 순간 여기저기로 뛰어가는 기사가 절반, 남아있는 기사가 절반이었다.
 그 절반에서도 어쩔 줄 모르고 남아있는 기사가 있는 반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남아있는 기사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또 대부분이 자리를 떠나고나자 남은 인원은 약 100명.
 물론 나도 그 안에 있었다.
 죄다 나처럼 재미를 좋아하는 공주라면 힌트라도 줄테지, 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조용해진 성의 앞에서 왕의 행방불명 소식을 말한지 약 1시간 뒤 소리가 울려퍼진다.

 "여기서 보니까 아직 출발 안한 사람이 있네요. 1시간이나 지났는데, 상금이 필요없는 분들일까나?"

 자신의 아버지가 없어졌는데도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뭐, 어찌됐든 인내심이 많은 여러분을 위해 힌트 한가지 드릴까 해요"

 나왔다.
 이 자체를 이벤트라고 생각한다면 힌트가 없어서야 안되지.
 그래서야 단순한 노가다다.
 그리하여 공주의 힌트를 듣는건 여기있는 약 100명뿐.
 이걸로 100분의 1의 경쟁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주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누구도 알아먹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한 수수께끼였다.

 02


 공주의 말을 듣고 광장을 뒤로 해 친구놈과는 헤어졌다.
 그녀석은 그녀석대로 무슨 생각이 있겠지.
 습관적으로 손목시계에 눈을 돌려 12시 10분임을 확인한다.
 어쨌든 나는 다시 한번 그 말을 떠올린다.
 '나무와 물과 모래와 불이 뒤섞인 세계의 끝, 그곳에 왕이 있다'
 ......
 뭐냐,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건지, 힌트를 들었는데 오히려 헷갈리게 만드는 말을 하다니.
 나무와 물, 물과 불, 불과 모래, 모래와 나무가 섞이는 경계라면 알고 있다.

 수업시간에 배운 지도를 보면 명확한 것.
 인구가 밀집한 왕국인 이 곳을 중심으로 북서쪽엔 나무가 가득한 숲이, 북동쪽엔 물이 가득한 바다가, 남동쪽엔 불이 가득한 용암지대가, 남서쪽엔 모래가 가득한 사막이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부가 있는 경계가 있을리가 없다.
 그래, 각각의 구역의 끝에 있는 하늘까지 솓아올라있는 그 거대한 벽을 넘지라도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거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몇 억년도 전부터 있었다는 그 벽을 부수거나 타고 넘으려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했다.
 그야말로 대지가 솟아올라 만든 듯한 벽.
 학자들은 저 벽 너머에도 무언가가 있어서 이 세계는 구의 형태를 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도에 세로로 선을 그어 경도라 칭하고 세워진 벽이 있는 그 선을 기준인 0도라 하였다.
 그 한쪽 부분인 이 구역이 우리 세계의 전부이다.
 그런데 세계의 끝이라니, 우선 그 벽까지 가봐야되겠지?


 ◇


 우선은 남동쪽의 숲부터 가려고 마음먹고 도시의 남동쪽 끝인 문 앞에 서있다.
 흠, 근데 이대로 나가도 되나?
 흰셔츠와 남색청바지......
 에라, 알게뭐람, 일단 가보자.
 문득 도시의 방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1시 26분을 가리키고 있다.
 왠지 모르게 시간을 생각하면서 문 앞에 있는 문지기(?) 같은 놈들한테 기사신분증을 보여주고 처음으로 도시 밖을 나선다.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가 싹 가신다.
 지금은 북동쪽의 바다지역에서 도시를 향해 바람이 부는 계절이라 도시는 무척이나 더웠으나 숲으로 나온순간 계절은 봄이 된 듯 더운것이 아니라 따스했다.
 눈 앞에 펼쳐지는건 무성한 숲, 그리고 시선을 위로 올리면 하늘을 타고 오르는 듯한 거대한 회색의 벽이 있다.
 이 벽은 도시에서도 보이는거지만 도시의 방벽에서 이어지는 듯 보였던 도시에서와는 달리 밖에 나와서 그런가 새삼 눈에 띄는 듯하다.
 그보다 이 안을 파헤쳐 지나가서 저 벽에 도달해야한다니, 도대체 몇일이나 걸릴지 눈 앞이 캄캄하다.
 어쨌든 이렇게 서있기만 해서는 될 일도 안되지.
 자, 가볼까.
 다리를 움직여 무성한 나무가 있는 숲으로 향한다.
 그리고 첫번째 나무를 지나는 순간,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어째선지 배에 고통이 찾아온다.

 "뭐야, 이건......"

 무심코 입으로 소리를 내며 배를 바라보자 거기엔 새빨간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빨개서 너무나도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눈이 감긴다.
 아, 이걸로 죽는건가-.


 ◇


 컥, 하고 기침을 하듯 목으로 공기를 내뱉으며 배를 움켜잡는다.
 죽을 듯한 고통에 잠시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서 주위를 둘러본다.
 시끌벅적한 도시의 시내, 사람들이 활기차게 돌아다니고 있다.
 시간을 알기위해 손목시계를 보자 가르키는 시각은 12시 10분이었다.

 아무래도 돌아온 모양인데, 음? 뭐야, 놀랐냐? 아니 놀랄것도 아닌가, 너도 능력자 아니야?
 그렇지않고서야 내 머리속을 들여다 보고 있을 수는 없을테니까.
 뭐 어찌됐든 너도 봤다시피 난 과거로 이동하는게 가능하다는거지.
 정확히는 어느날 일어났더니 손목에 채워진 이 시계의 능력이지만.
 덕분에 죽어도 살아나지만 한가지 안 좋은게 나 대신 다른 녀석이 죽는다는건데, 뭐, 내 알 바냐.
 다른 놈 살리자고 내가 죽을 수는 없잖아?
 게다가 죽으면 그거 또한 그놈 운명이지 뭐.
 
 어쨌든 몬스터가 다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어째서 다른 녀석들은 1시간 동안이나 그걸 알리러 오지 않는거지.
 아니, 그보다도 공주는 이걸 알면서도 묵인하는건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모르겠군.
 일단 목표는 변경이다.
 공주에게 우선 몬스터에 대해 묻는게 우선인가.

 03


 광장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으나 어째선지 광장으로 가는 길목을 아침에 봤던 그 녀석들이 막고 있었다.
 이래서야 다른 녀석들이 몬스터가 활동한다고 알리러 오지 않는, 아니 못하는거였나.
 아니, 그렇지않더라도 경쟁자가 줄어드는 쪽이 기사놈들한테는 좋을테니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어찌됐든 이 상황에 내가 도시를 벗어나봤자 죽는건 뻔하지.
 차라리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보다 적을 쓰러뜨리는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쪽이 지금은 도움이 되겠는데.

 "레인, 여기서 뭐하고 있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지나가는 행인1이,

 "지나가는 행인1 아니거든. 계속 그럴래?"

 음, 착각이었다.
 아무래도 지나가는 행인1이 아니고,

 "2도 아니니까"

 읽혔다?!!!

 "그 장난 식상해, 그보다 진짜 뭐하고 있는거야?"

 지나가는 행인이 아닌 보랏빛의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의 땅꼬마인 그녀는 아무리 봐도 10대 소녀로 밖에 안보이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도 왠지 교복을 연상시키는 듯한 반팔의 블라우스 셔츠에 무릎 위까지 오는 체크무늬 빨간색 치마다.

 "식상해서 미안하군. 그보다 뭐긴, 보면 모르냐, 서있잖아"

 "...... 재미없어. 감점이야, 레인"

 재미없는건 알겠다만 대체 뭔 점수를 깎는다는걸까.
 몇번이고 물어봤지만 비밀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더는 묻기도 귀찮아져서 이미 포기한 상태다.
 그보다 내 생각엔 이미 마이너스가 아닌가 싶은데.

 "응? 아니야, 애초에 기본 점수가 높았으니까 지개는. 아, 지금은 레인이었지"

 "아, 그래?"

 보다시피 그녀는 아무래도 생각을 읽는 능력을 지닌거 같은데 이상하게 어쩔땐 읽는데 어쩔때는 욕을 해도 모른다.
 뭔가 읽고 싶을때만 읽는다던가 그런게 있겠지.
 아,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욕을 해봤다는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보다도 기사가 아닌 그녀는 아무래도 이번에 활약할 무대는 없겠지.
 그보다도 난 여길 통과해야 되는데......

 "응? 뭐야, 기사일?"

 아, 얘, 생각읽지, 참.
 바보같이 그것마저도 생각을 읽혀 결국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그녀에게 털어놓자 그녀가 도와준다고 하곤 광장으로 향하는 입구를 막고있는 기사와 몇마디 대화하더니 돌아온다.

 "자, 가자. 레인"

 그리고는 나의 팔을 이끌고 걸어 길을 막고 있던 두명을 지나 광장으로 들어선다.
 대체, 뭔 짓을 한거지.
 그녀는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나를 바라보고는 윙크를 날리며 말한다.

 "비밀~"

 나이부터 시작해서 비밀도 참 많은 여자네.
 그런 의미로 오늘부터 그녀는 비밀녀1이다.

 04


 그녀에게 이끌려 광장에 들어가 무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시간은 1시 26분.
 아마 내가 아까 도시를 나선 시각이 26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약 2분 후 누군가가 나 대신 죽을터.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뭐, 그렇다고 대신 죽어줄 마음은 없다.
 어쨌든 광장에 들어온건 좋은데 공주와 이야기를 하려면 성에 들어가야되는데,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하고 있자니 성문이 열린다.
 그리고 나오는 초가 붙을 정도로 땅꼬마인 여자아이가 한명.
 비밀녀1과 비교해봐도 손바닥 하나 정도나 더 작아보이는 그 아이가 바로 공주다.
 공주를 보자마자 나는 달려들어 말했다.

 "몬스터가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거지? 몰랐다고 하지는 않을거 같은데"

 나의 물음에 공주는 웃는다.
 자신의 아비가 실종해도 웃는 여자다, 그깟 몬스터에 희생 당하는 일반인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건가.

 "후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레인 보우. 제가 몬스터를 일부러 깨우기라도 했다는건가요?"

 "조금은 어울려주려고 했지만 누가봐도 너가 흑막이잖아. 애초에 실종된 왕의 위치는 어떻게 아는건데"

 내 말에 공주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 그건 말이죠-"

 공주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무엇인가 바람이 스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주의 머리가 목에서 뿜어져나오는 피의 압력으로 공중으로 뜬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걸 보고 바람이 날아온 듯한 방향인 오른쪽을 쳐다보는 순간, 퍽, 하고 뇌수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귀에 울려퍼진다.


 ◇


 윽, 기분 나빠.
 나도 모르게 손이 머리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머리를 만져 확인한다.
 다행이라고 할지 당연하다고 할지 머리는 '아직까지는' 붙어있었다.
 휴, 다행이군, 하고 중얼거리는 내 모습을 쳐다보던 꼬맹이가 걱정이라도 되는지,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하고 물어온다.
 음, 괜찮냐고 하면 지금은 괜찮지만 이대로 있다간 위험할거 같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도 아까의 녀석을 찾지 않으면 또 되풀이할게 뻔한데......

 "되풀이?"

 "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지만 어쨌든 생각하는건 조심하지 않으면 들키겠는데.
 어쨌든 방금 전에 얼핏 본 실루엣만으로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아까는 공주에 미쳐서 잘 몰랐는데 지금보니 아직도 꽤 되는 사람의 수가 있었다.
 약 20명 정도일까, 남은 녀석들은 전부 20대에서 30대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들이었다.
 이 중에서 나의 왼편에 있는 자들을 제외하면 용의자는 다섯이다.
 1, 갈색의 머리카락에 키는 나와 비슷해보이고 전형적인 대검을 등에 메고 있는 30대 남성
 2, 마찬가지로 갈색의 머리카락에 키는 좀 작은 편인 활을 들고 있는 20대 여성
 3, 남색의 미역머리를 한 의외로 잘생겨보이지만 그게 또 기분 나쁜 무기를 소유하지 않은 20대 남성
 4, 주황색 머리칼을 한 갈래로 묶어내린 스태프를 든 20대 여성
 5, 흑발에 스태프를 지닌 인상이 나쁜 20대 남성

 내 감으로 볼 때, 5번의 흑발녀석이 제일 의심된다.
 그렇다면 저 녀석을 먼저 제압하면 되겠지.
 몰래몰래 조심조심 그 녀석과 거리를 좁혀나가던 도중 마침 시간이 된 것일까, 성의 문이 열려 일제히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다.
 흑발녀석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해 이쪽이 사각이 되었다.
 이야압! 하고 달려들어 뒤쪽에서 그의 팔을 잡고 그대로 넘어뜨린다.
 그 모습이 공주의 눈에 들어왔는지, 안 들어오는게 이상하지만, 나를 쳐다본다.
 그 순간 다시 한번 그녀의 목의 지상에 나뒹굴고 피의 분수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범인의 인상착의를 제대로 파악한다.
 남색의 미역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또 다시 뇌수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번에야말로 잡아주마.
 너무 화가 치밀어올라 죽을때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아, 참고로 절대 내 감이 틀렸다거나, 두번이나 죽은게 화가 난게 아니고 공주를 지키지 못했던 것에 화가 난거니까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니 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도 집어치우고 말야.
 어찌됐든 이번에야말로 진짜 범인인 남색 미역놈의 곁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그리고 공주에 시선이 쏠린 그 순간 녀석의 팔을 꺾어 넘어뜨렸다.

 "네 녀석이 범인인건 이미 알고 있어. 순순히 항복해"

 내 행동에 녀석은 놀랐는지,

 "칫, 어떻게 알았지?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텔레포트를 사용해 빠져나가려다가, 실패했는지 하반신만 땅에 박힌채로 눈 앞에 나타났다.

 "엑, 이게 아닌-"

 그리고는 당황했는지 뭐라고 말하는 도중, 스윽, 하는 칼소리와 함께 목이 떨어져나간다.
 검의 주인은 바로 공주였다.

 "뭔진 잘 모르겠지만, 성 안에서 마술이라니 사형죄에요"

 죽은 시체를 왕궁에서 나온 몇몇의 사람들이 처리해나가고, 그 사이에 나는 공주에게 말했다.

 "왕이 있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성의 안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밖에 몬스터가 나다니는데 왕을 찾아오라고 할 리가 없지, 안 그래?"

 그 말에 공주는 활짝 웃더니,

 "좋아요, 레인보우. 나를 따라오도록 하세요"

 나를 왕궁에 들여보내주었다.

 05


 어쩌다보니 따라온 비밀녀1도 포함해 셋이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나간다.
 뭔가 가운데 원통을 끼고 돌아내려가는 듯한 계단, 계속해서 내려가는 도중, 꽤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위치상 북쪽인지 남쪽인지 어느쪽인지 알 수 없는 공간.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자, 시간은 어느새 4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어쨌거나 공간의 저편에 문이 있으니까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그대로 떨어지는 느낌만이 든채로 눈을 뜨자, 시계를 바라본 그 상태였다.
 뭐지, 이건.
 아무래도 죽었던 모양인데, 떨어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보다 여길 대체 어떻게 건너야-

 "뭐해, 레인. 가자"

 아무것도 모르는 비밀녀1이 건너고, 그대로 땅이 그녀를 잡아간 듯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뭐, 뭐야?!"

 나도 모르게 놀라 소리치자,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희생의 길이야. 누군가가 한명 바닥이 되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다행이네. 그녀 덕분에 왕에게 도달할 수 있을테니"

 마치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한 공주의 말에,

 "그럼 너가 죽어"

 라는 말을 하며 나는 공주의 칼을 뺐어 그대로 나의 목을 찌른다.


 ◇


 "컥, 켁, 켁"

 목에 남은 고통에 기침을 해대자 비밀녀1이 나를 보며 걱정한다.

 "왜 그래? 레인. 괜찮아?"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혹시나를 위해 공주의 검을 잡은채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공주를 밀었다.

 "에? 잠깐, 뭐 하는-"

 아무래도 방심하고 있었는지 그대로 바닥으로 빨려들어가는 공주, 그걸 보고 놀라는 비밀녀1이었지만 나는 실수라고 말하고 그녀를 건너편까지 데려갔다.
 거기엔 어째선지 문이 있어서, 손바닥 모양으로 파인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에 손바닥을 대보자, 삐이이, 하는 경고음과 함께 목소리가 울렸다.

 "왕의 허락을 받은자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왕의 허락을 받아야 열리는 문인가본데, 역시 공주가 있었어야 되나, 하지만-

 "나라면 괜찮아, 레인"

 어째선지 그런 말을 내뱉은 비밀녀1, 아마 내 속마음을 읽은걸까, 그녀는 그대로 내가 들고있는 공주의 검을 빼앗고는 자신의 목을 찔렀다.
 하아, 이거 또 죽어야 되나?

 06


 결국 나는 그녀의 희생으로 그곳을 통과해, 공주의 도움을 받아 지하로 이어지는 끝이 없을 것 같던 계단을 내려가 성의 지하 깊은 곳에 도착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2m 쯤 되어보이는 문이 하나.

 "여기에 있다는거야?"

 확인차 묻자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는 일을 마쳤으니까 머리 나쁜 기사놈들을 구경하러 간다며 위로 올라간다.
 공주를 뒤로 하고 문을 열자 거기엔 커다란 공간이 펼쳐져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사람인듯한 그림자가 하나.

 "흐음? 누군가가 여기까지 찾아올 줄이야. 내가 남긴 힌트를 보고 찾아온것인가"

 "왕...... 이런 곳에서 무얼하는거지?"

 그림자의 실체는 실종되었다는 왕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발로 이곳에 와 있는 것 같은데, 무슨 꿍꿍이지.

 "무얼하는가, 인가. 뭐, 좋다. 여기까지 도착한 보상이다. 아직 시간은 많다. 천천히 알려주도록 하지"

 그렇게 길고 긴 왕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때는 7164년, 지금으로부터 수만년이나 전의 이야기.
 세계는 멸망했다.
 인간들은 지구의 환경을 착취하고 파괴하고 버렸다.
 쓸모없는 지구는 어느새 쓸모없는 사람들만이 남아 쓸모있는 인간이라 판단된 자들은 지구를 떠난지 오래, 그러나 남은 찌꺼기뿐인 지구에도 신은 있었던 것일까.
 모든 대륙이 점차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일어나기 전의 판게아로 되돌리려는 지구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백년에 이르러 모든 대륙은 하나가 되었고, 마치 신이 남은 쓰레기를 분리수거라도 하듯 환경에 피해를 미치는 모든 것을 판게아의 반대쪽에 모아두고 지구의 반을 나누듯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그리곤 살아남은 환경엔 몬스터라고 하는 지능이 없이 인간을 헤치는 생명체를 만들어 생태계의 보존을 유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세계다, 라고 말하며 어째선지 역사공부를 시켜주는 왕에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반문하자 왕이,

 "너무 성급하군, 자네. 내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야기를 계속해나간다.
 지루하다.
 그렇기에 요점만 간단히 집어들자면, 요컨데 인간의 수가 늘어났으니 몬스터를 통해 줄이려는 것이라 한다.
 뭐야, 처음부터 간단히 인구감소정책이라고 말하면 끝날 일이잖아.
 아니, 잠깐 기다려.
 분명 몬스터는 여태껏 활동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단순한 인간일터인 왕이 몬스터의 활동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거지.
 나의 생각이라도 읽은 것인가, 그렇지않으면 단순히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가 온 것인가는 모르겠지만 왕이 자신의 뒤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것이 바로 몬스터들이 움직이게 만드는 마술이지"

 왕의 뒤에 있는 것은 구형태의 물체였다.
 마치 지구본과 같은 그것의 한쪽면에는 연두색 빛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대대로 왕에게 물려받아 지금까지도 인구를 줄여오며 세계를 유지했지. 모든 것은 세계를 위해서다"

 지구본으로 무엇이 가능하다는거지.
 살짝 정신줄을 놓은게 아닌가, 하고 쳐다보고 있었더니 왕이 눈치챘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군. 좋아, 그럼 이런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그러고는 지구본에 표시된 화산지역을 자신의 주먹으로 세게친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린다.
 마치 그의 주먹이 지진이라도 일으켰다라는 듯이.

 "뭐야, 그 지구본에서 일어난게 현실에도 일어난다라고 하고 싶은거냐"

 "허허허, 역시 나의 힌트를 보고 찾아올만한 인재로군. 바로 그렇다"

 아니, 그런거 누가봐도 아는거잖아.
 어쨌든 믿을 수는 없지만, 없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나도 이상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뭐, 그래서 본론으로 들어가서 말인데. 자네, 나의 뒤를 이어 이걸 관리 할 생각은 없는가?"

 뭐?
 이런걸 나한테 맡긴다고?

 "어째서냐, 왕한테 물려오는거라면 너의 딸인 공주쪽이-"

 "닥쳐라! 내가 유지해온 세계를 말아먹으란거냐?! 그 아이의 성격을 보면 모르냔 말이야!"

 "아, 미안. 지금은 내가 나빴어. 인정해"

 장난을 좋아하는 공주에게 맡겼다간 순식간에 지구멸망으로 이어지겠지.

 "흠흠, 흥분했군.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부탁 좀 하지. 내 힌트를 알아볼 정도로 머리도 좋은거 같으니 말이야"

 아니, 뭐, 수십번이나 죽었지만 말이지.

 "아-, 뭐, 나쁠건 없지만 궁금한게 있는데"

 왕이 말해보라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뒤의 검은편은 뭐냐, 뭐가 있긴한거야?"

 나의 말에 왕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글쎄? 가보면 알겠지?"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짓거린다.
 대체 왜 뜸을 들인건지도 모르겠고.

 "아, 그래?"

 대충 대답하자 왕이 다시 한번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맡을 생각이 있는가?"

 그에 나는 생각하는대로 대답했다.

 "------"

 여기까지가 나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부터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펼쳐지겠지.

 Epilogue


 계단이 끝나는 곳에 거대한 문이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본다.

 "5시 23분인가"

 긴장한 마음을 추스리고 문을 연다.
 거기에 광장보다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헤에, 왕궁의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처음보는 광경에 놀라 감탄을 내뱉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 드디어 왔나"

 방의 중앙에 검은 실루엣이 하나.
 어두운 탓에 잘 안보여서 가까이 다가간다.
 주황빛이 섞인 빨간색의 머리칼.
 키는 180cm 정도 되려나, 며칠 전에만 해도 본 적이 있는 그 얼굴에 나는 입을 열었다.

 "왕... 역시 이곳에 있었군요"

 "내가 남긴 힌트를 보고 찾아왔나?"

 왕의 말에, 네, 라고 짧게 대답하자, 그것이 웃겼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미소짓는다.
 그런 왕을 향해 나는 의문을 던졌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죠?"

 그 말에 왕은 웃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가. 좋아, 시간은 많다. 자,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물과 불과 나무와 모래가 공존하던 시대의 이야기,
 그것은 이 행성 전체에 인간이 살던 시대의 이야기,
 그것은 아직 버려지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끝이 나고, 왕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자, 이제 그대가 왕이 될 차례다"

 그에 나는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

 그리고 아무래도 이걸로 너와도 작별이다.

 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