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무슨 블랙홀 같은 게 생겼다는 건 아니고, 내가 보기에 그랬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우주정거장에 잘못 온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왜냐하면 리돌하고 나비 둘 다, 그리고 이 녀석들의 주변에 있던 잡동사니 여러 개가 마치 우주를 유영하듯 둥둥 떠 있었으니까. 식탁과 그 위에 휴지, 물컵,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던 물, 기타 등등. 압권은 이 무중력공간에 살짝 걸친 듯이, 끝자락만 유혹하듯 너울거리는 이불이었다.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와 그의 하수인은 그냥 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뻗어서 자고 있는 상태로 공중을 떠다니고 있다. 리돌은 아무래도 격렬한 운동에 지쳐 그대로 고꾸라진 듯 해 보인다. 아마 나비는 그냥 바닥에서 자다가 휘말려서 떠다니는 거겠지만. 둘 다 자고 있는 상황인 건 확실해 보이는데, 아무래도 리돌이 무아지경중에 자신의 공중부양장치에 있는 무언가를 잘못 건드린 듯 해보인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충 무중력 공간의 경계선으로 보이는 위치 쯤에 볼펜을 떨구어 보았다. 볼펜은 예상대로 리돌과 나비와 함께 내 방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말인 즉슨 내가 직접 들어가서 깨우려면 나도 이 꼴이 난다 이거지?


 “리돌! 일어나! 니 방 가서 자!”


 나는 큰 소리로 리돌을 깨웠다. 리돌은 별 대답도 없이 졸린 눈을 비비고서는, 공중에서 기지개를 켰다. 덕분에 그 때 마침 리돌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나비까지 한 번에 일어나게 만드는 효과를 보았다. 나비 역시 눈도 뜨지 않고 기지개만 쭉 펴고 있었지만. 리돌은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대답하였다.


 “무슨 일입니까, 민재?”


 “별 건 아니고, 너 지금 이거, 다 떠 다니는거 끄고, 올라가서 자라고. 잘 시간이다.”


 그래, 이젠 이런 것 - 내 집이 무중력 공간이 되는 일도 별 거 아니게 되어 버렸다. 어차피 다 수습 가능한 일인데 뭐. 리돌은 내 말을 듣고서는 반쯤 감은 눈으로 주변을 바라 보더니, 공중에 손을 몇 번 놀렸다.


 잠깐, 그런데 지금 공중부양이 해제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야, 잠깐...”


 불안한 마음에 내뻗은 내 손은 그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예정된 파멸의 손짓 뒤에, 리돌과 나비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떨어졌다. 컵도, 거기 담겨 있던 물도, 그 아래 있던 식탁도.


 쨍그랑! 철퍽! 와당탕!


 그야말로 공중에 떠 있던 오만 것들이 방바닥으로 떨어진다. 원래는 모두 중력에 귀속되어 있던 물건들일진데, 다시 제자리를 찾아 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요란하다. 도대체 누가 잘못한 것일까.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처음에 일을 이렇게 벌린 리돌이 잘못한 것인가. 그 해답은 지금 당장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이 아수라장을 정리해야 할 사람이 나라는 것. 


 리돌은 나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여 나비를 안고서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무어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을 정리할만한 마땅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내 방에 홀로 남겨져 버린 내 머릿속에선 기껏 외운 영어 단어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까 전에 했던 생각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 녀석이 공부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지? 이렇게나 쓸데 없는 일이 많아지는데. 하지만 이제와서 누구를 탓하랴. 다 내가 부덕한 탓인 것을. 나는 방바닥에 쏟아진 물컵 속의 물과 마음 속에 흐르는 눈물을 같이 훔쳐내면서 방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태양은 언제나 떠오른다. 언제나 처럼 햇빛이 내 감은 두 눈을 두드리는 것에서, 오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만 어제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햇빛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는 들리지 않는 이상한 노랫소리까지 합세하여 나의 잠을 깨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야 이 노랫소리느은.”


 나는 혼잣말을 하면서 누인 몸을 일으켰다. 사실 혼잣말이라고 했지만 이미 어떤 상황인지는 보지 않아도 파악이 다 끝났다. 보나마나 침대 옆에는 리돌이 앉아 있을 거고, 이 녀석이 TV를 틀어 놔서 내 귀를 파고드는 불협화음이 생겼을 테니까.


 “일어났습니까, 민재.”


 아니나다를까, 내 옆에는 리돌이 앉아 있었다. 리돌의 옆엔 나비는 없었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 아직 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리돌은 멍하니 TV를 바라보다, 내 목소리에 반응하여 나를 돌아 보았다. TV에는 어제 틀어 두었던 음악채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고, 여전히 아이돌그룹들이 칼군무를 추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신기하네? 이 녀석이 밥 달라는 이야기 이전에 이렇게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건 처음인데.


 “그렇게 재미있어?”


 “어떤 겁니까?”


 “너, 춤추고 노래 하는 게 재미있냐고. 밥먹자는 얘기도 안 하고 저것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물어 보는거야.”


 “재미있는 것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자극합니다.”


 “하긴, 너 하는 짓 보면 그런 것 같긴 하다.”


 마치 아이같이 멍하니 집중하고 있는 걸 보면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 흥미가 동하는 데도 밖에 안 나가려고 드는 걸 보면 그것도 신기하지만. 방 안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되는 건가? 

 갑자기 물어볼 것이 하나 떠올랐다. 


 “리돌, 뭐 좀 물어보자. 달에는 뭐 할만한 게 있어?”


 내 질문에 리돌은 즉답을 내놓았다.


 “달에는 달이 있습니다.”


 선문답?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지금까지 너가 TV 보는, 그래. 일단 TV도 없다고 그러고. 동물들도 처음 본다고 그러고. 음식도 아예 맛이 나지 않는 걸 먹고. 도대체 달나라 사람들은 뭘 하고 사는거야? 일은 해?”


  내 질문을 들은 리돌은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올리고서는 눈을 위로 돌렸다. 한참을 눈을 깜빡이며 고민하던 리돌은, 자기도 이게 맞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나에게 대답하였다.


 “달에서 사람들은 함께 일합니다. 매일매일 할 중요한 일에 감사드리며 하루하루 일하기를 매일매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당신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파낼 필요가 있다면, 언젠가는 달이 땅에 있을 것입니다.”


 “음.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아들었다는 뜻은 아니고, 왜 저런 말이 나오는지를 알겠다는 뜻에서.


 “한 문장씩 말해줄래?”


 리돌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방금 보였던 그 애매모호한 표정은 자기도 이게 번역이 제대로 될지를 고민했던 것이 맞을 거다.


 “일단, 달에서 사람들은 함께 일합니다.”


 “음음”


 “사람들은 오늘 무엇을 해야할 지 결정하고 모두가 그 일을 합니다.”


 “그래. 그래.”


 “예를 들어, 오늘 금속을 캐낸다고 결정되면 모든 달나라 사람들이 땅 속에 갑니다.”


 이제야 말하는 게 무엇인지 감이 잡힌다. 쉽게 말하자면 공산주의 같은 거구만. 모두 다 같이 일하고 모두 다 같이 나누는 그런 사회.


 “그래, 뭐 어쨌든 일을 하고 나면 사람들이 쉴 때 뭐라도 할 거 아냐. 너 지금 하는 것마냥 TV를 본다던가, 아니면 스포츠를 한다던가. 그런 게 아예 없어?”


 리돌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다. 뭐야, 내가 못할 말을 한건가? 나도 그에 따라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사이, 리돌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빠르게 이야기를 내뱉었다.


 “달 성인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잘 잤습니다.”


 “그래?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그냥 집에 돌아오면 누워서 잠만 자?”


 “그렇습니다. 민재가 마치 침대에 앉아서 집안이 불의 냄새가 난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뭐?”


 리돌은 내가 못 알아듣는다는 표정을 짓자 잠깐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밖으로 나갔다. 뭐, 뭐야. 못 알아듣는다고 삐졌나?

 갑작스러운 리돌의 돌발행동에 내가 잠시 벙쪄있던 것도 잠시, 리돌은 나가기가 무섭게 문을 부서져라 열고 들어왔다. 쾅!


 “야! 뭐해! 문 부서지게!”


 나는 문의 안위부터 먼저 걱정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리돌이 고장난 것 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춤을 춘다’ 라는 행위를 보여줄 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리돌은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면서 집 여러 군데를 온몸으로 부딪히다가, 갑자기 침대 옆에 불안한 자세로 서서 고개를 앞뒤로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대로 침대에 머리부터 떨어졌다. 다시 말해서, 힘을 쫙 빼고 고꾸라졌다.

 ...지금 뭘 재현한 건지는 대충 알 것 같다. 그리고 리돌은 나의 어렴풋한 예상에 부연설명을 더 했다.


 “이것은 저녁에 늦게 오면 저녁 식사 없이 냄새가 나는 민재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