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emfATdy07c8


내가 처음으로 본 그 사람의 인상은 턱수염이 군데군데 난 털털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얼굴 군데마다 새겨져 있는 굵은 주름이 거의 노인이 다 되가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그의 일터는 언제나 단정해 있었고 먼지가 쌓이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살짝 열려져 있는 창문에선 짭짜름한 바다의 내음이 엷게 들어와 괜히 콧구멍을 킁킁거리게 했던 곳 이였지. 누구나 한 번 쯤은 꿈꿔볼만한 고독과 낭만을 품은 일들만이 있는 곳. 이곳은 활짝 열려있는 수평선이 일품인 근처 부두의 등대였다.


"어서 와서 먹자구나."


수년을 써서 그을려진 오래된 냄비에 우유를 끓여 컵에 담는다. 식탁에는 어느새 두 개의 접시에 햄과 계란이 올리어진 간단한 샌드위치까지 올려 있었다. 포크나 숟가락 같은 식기도구도 없이 약간의 냅킨과 함께 식사는 시작되었다.

몇 입도 안돼서 빵조각을 입에 욱여넣어버려 가루가 묻은 손수건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려니 천천히 맛을 음미하듯이 우물우물 씹고 있었던 그 사람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 곳에 온지 얼마나 지났지?”


나는 손가락을 세어가며 겨우겨우 암산해서 9개월 하고도 두 이레가 지났다고 당돌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다짜고짜 등대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래에 있었던 허름한 나무문을 두드리던 시절이 금세 지금까지 지나왔었던 것 같았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순수한 수평선에서부터, 탄자나이트처럼 빛났던 에메랄드빛 바다를 본 날에서부터였었던 것 같다. 


*


처음으로 봤었던 풍경에 나는 깊이 매료되었었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었던 모래의 질감과 파도가 칠 때마다 달라지는 건들바람, 갈매기들과 게 같은 생물까지도 모든 것이 새로웠으니까.

그렇게 땅에만 눈을 내려 신경을 쓰고 있을 동안, 언젠가 부둣가에 세워져 있는 하얀 기둥을 보고선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이윽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저벅거리며 그 기둥을 향해 불나방처럼 걸어갔었다.


쿵쿵쿵. 쿵쿵. 페인트가 칠해져있지만 색이 바란 갈색 껍질이 드문 벗겨져있는 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다. 아마도 비를 너무 많은 세월동안 맞아 저렇게 낡은 것이었겠지. 

뚜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낮선 남자가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한 눈빛으로 빤히, 자세히 나를 몇 초 동안 훑어보았다.


“···어디서 왔니?”


그 때부터 나의 잊을 수 없는 등대 생활은 시작되었다.


-


셀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나간 것만 같다. 그것도 한 순간에.



오늘도 침상에서 일어나 한결 피곤한 기색으로 바닥을 닦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한 터라 먼지가 쌓일 틈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하루라도 이 작업을 빼놓지 않는다. 내가 일하는 곳을 아침에 청소하는 작업은 무거운 눈꺼풀의 무게를 한 층 줄여주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책상 밑부터 서랍 바닥까지 말끔히 수건으로 손을 댄 후에야 음식이 넘어간다. 짭조름한 소금이 약간 섞인 것 같은 물과 딱딱해질 대로 굳은 호밀 빵이 나의 아침식사다.

이미 잇몸과 치아는 허약해져 무언가 단단한 것을 씹기에는 많이 무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 한 모금과 빵조각을 조금씩 함께 넣어 입 안 속에서 녹이는 것이 요령이다. 이것을 계속 하다보면 한 끼에 요하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차 많아진다. 하지만 괜찮다. 이 지루하고도 외로운 곳에서 하루라도 더 버티려면 쓸데없는 일을 많이 늘려야 하니까. 


개미 속도보다 더 느리게, 입술이 텁텁해질 정도로 우물거리고 있었던 나의 귓속에 웬 드럼 두드리는 소리가 밑층에서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누가 왔나?”


혼잣말을 한마디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 계절에 굳이 올만한 사람들은 지나가던 뱃사람이나 해변을 감상하러 오는 여행객들, 가족이나 연인들 뿐 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이 등대의 문을 한 번도 두드리려 하지 않았다. 슬쩍 쌀쌀해지는 날씨에 누가 이 해변에 왔단 말인가. 


문을 열고 꾹 다물어진 입술에 반 쯤 덮인 눈을 내려 불청객의 정체를 찬찬히 살핀다. 더 자세히 보려 목을 아래로 트자 서서히 눈이 떠지기 시작한다. 


그 불청객은 태어나서 겨우 8년 정도 밖에 지난 것 같지 않은 앳된 꼬마였다.


*


그 사람은 나의 열성과도 같은 부탁에 못 이겨 이곳에서 일을 돕는 것을 허락해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등대’ 라는 곳을 걸레로 열심히 청소해봤다. 낮에는 이상하리만치 정말 큰 조명을 짧은 사다리 위에 다리를 웅크려 앉아 수건으로 열심히, 그리고 빠짐없이 먼지를 닦아냈다. 


이 사람은 이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서 반복한다고 했다. 도대체 왜 이런 큰 전구를 거르는 날이 없이 청소하고 점검해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바다는 신기하게도 저녁이 되었을 때, 달도 없이 깜깜해서 하늘 위 별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눈길이 바다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신비롭게도 달빛 한 점 없는 바다가 별빛을 거울처럼 반사해서 반짝거리며 빛났기 때문이었다. 등대 아래 바다는 깨끗한 반사체가 되어 빛 전부를 반사할 수는 없었지만, 약간은 흐릿하게 형체만 보이는 청동 거울처럼 일렁거리는 것은 남극의 오로라를 연상시키는 듯 했었던 것 같았다.


창문에 살살 들어오는 밤바다의 찬 공기를 얼굴에 맞아가며 보이는 믿기지 않는 풍경을 마음  속에 새겨가고 있으려니, 그 사람은 자신의 작업대 위에 놓여있는 기계의 버튼을 어떻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낮에 닦아냈던 조명의 불이 순간적으로 번쩍이며 켜졌다.


-


참으로 이상한 꼬마다. 보통 저런 동갑내기 친구들 같았더라면 밖에 나가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한다던가, 고무공 같은 것들을 차고 놀지 않았던가. 혼자 이곳에 온 이 녀석은 어찌나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쳐도 내 일을 돕겠다고 나서는지. 결국은 청소하는 일들을 허락해 주긴 했지만 살짝 불안한 감은 있었다. 그래도 본 것은 있어서인지 시킨 일들을 척척 잘 해내긴 했지만 말이다.


이 아이에겐 내가 평소에 먹는 음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먹었을 때엔 벌레 섞인 모래알을 씹는 것과 같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간만에 창고에 묵혀두었던 단단한 호밀 빵 대신 햄과 치즈 같은 것들을 근처에 있는 가게에 천천히 걸어가 사왔다. 저 당돌한 아이를 위해서 아주 오래간만에 식단을 바꿔보려 했기 때문이었다.


고맙게도 그 아이는 성의 없어 보이는 간단한 빵조각을 단숨에 먹어치우곤 맛있다고 손을 추켜세워 주었다. 입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빵가루가 얼마나 귀여워 보이던지. 또 열심히 등대를 저 조그마한 손으로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나의 과거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아주, 희미하고, 눈을 살짝 감았을 때 가슴이 뛰며 온 몸에 피가 흘러 따뜻해지는 기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전율과 보람이 쌓여 행복감을 은근히 주곤 했던 그 시간들이···.


그러니까······. 말이다.


오늘 밤엔 그것을 보여줘야겠구만.


*


태양처럼 밝지만 뜨겁지는 않은 빛이 순간적으로 켜져 윙 소리를 내며 두 갈래로 나눠졌다. 저 수평 선 너머의 너머까지 보일 정도로 뻗어가는 광선은 작아져 있었던 나의 눈동자를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넓히기 시작했다.


빛의 시작부터 광원이 쭉, 쭉, 쭉, 계속해서 늘어나 별 밖에 볼 수 없었던 진정한 풍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뽐내듯, 스포트라이트 같이 비춰지는 바다는 물속의 노래와 함께 심포니로 하나의 극장을 만들어냈다.


고동 소리만 들렸지 보이지 않았던 지나가는 배들도 이제는 확실하게 보인다. 낮은 아니지만 세상을 비춰 어두운 곳에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설마 이것이 하얀 기둥, 아니 등대가 존재하는 이유인걸까?


“······좋으냐?”


창가에 바짝 붙어 있었던 내 뒤에 허름한 나무의자에 앉은 그가 물었다. 나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그거면.”


다시 시선을 바다 쪽으로 향해 연신 눈을 껌뻑거리며 광선이 돌아가는 모습을 빛이 나오는 곳에서 감상한다. 정신이 그 곳만을 향해 풍경의 의식에 잠겨 멍해져 갈 때 쯤,


나의 등 쪽에서 아주 살짝,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흐느끼는 소리가 났었던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그는 오른손을 얼굴에 감싸쥐으며 아주 조용히, 고요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