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아미야에게 마법을 배우겠다고는 했지만,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를 못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생각해보니 나는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주머니에 들어간 복주머니 안의, 청하의 비늘을 이용한다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 지도 몰랐지만….


애초에, 마력을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도 모르는데다가 마력을 느끼지도 못해봤다.


내 몸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것에 깃든 정체불명의 에너지를 움직이는 방법같은 건 알지도 못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아미야에게 따로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고.


너무 깊게 생각해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 단순히 아미야만 믿고 갈 뿐이었다.


아미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챙이 넓은 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미야의 얼굴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시선이, 악수를 나눴던 자기 손으로 향하고 있었으니 손이라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겠거니 하고 넘겨버렸다.


금향이나 청하도 아니고, 설마 아직까지도 손을 쳐다보고 있을 리가.


적어도, 내가 본 그녀는 그런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금향도 친해지기 전까지는 괜찮아 보였지만, 친해지고 나니 청하와 비슷한 행동을 했으니.


"그럼, 이걸로 약식이지만 계약은 성립이야."


"…계약입니까?"


"계약이지. 마녀와 악수를 나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모를 수도 있구나."


"그렇지…. 아마, 주빈은 의미를 모를 거야."


"…인간이라고는 해도,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흰 종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좋은 거지만."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금향의 눈을 마주보니, 내게서 고개를 돌리는 금향이 보였다.


뒤에 들린 말이 어떤 것이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면 부끄러운 말을 한 게 아닐까.


이제는 어느정도 목소리로 말해야 잘 안 들리는 건지 알아낸 것 같다.


덕분에, 금향이 어떤 말을 했던 건지 궁금해졌지만, 한심하다는 듯이 금향을 쳐다보는 아미야가 보이는 걸 보면 그렇게 좋은 의미는 아닌 듯 싶었다.


좋은 의미는, 안 좋은 의미든 직접 듣지 못했으니 추측만 무수히 생겨났을 뿐이지만.


"…어휴. 너도 청하랑 다른 게 없구나, 없어."


"나, 나름대로 자제하는 중이거든!"


"그게? 자제하는 중이라고? 나도 잠…깐이지만 시선을 떼기 힘들었는데?"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진 거야! 그리고, 청하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 녀석은…."


"…그 녀석은, 뭐랄까. 전혀 변한 느낌이 안 들지."


"그렇지."


서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하던 둘의 모습을 보며, 주머니에 넣어뒀던 복주머니를 꺼냈다.


복주머니 안에 있는 비늘을 꺼내어 아미야에게 보여주니, 아미야가 눈을 빛내며 비늘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뭐야. 청하의 비늘이잖아? 나도 꽤 오랜만에 보는 건데."


"선의로 주는 것이라며, 복주머니와 함께 주셨습니다."


"복주머니도? 얘, 그거 꽤 귀한 물건이니까 아껴 쓰렴. 생각보다 복잡한 주술도 사용된 물건이니까."


"그렇습니까?"


"제가 마법으로 억지로 늘려놓은 주머니보다 훨씬 좋은 거에요, 주빈. 청하의 공간을 이용한 주술은 저보다 잘 쓰는 편이니까."


"청하는 그것도 불편하다면서 너의 마법을 배워보려고 했지만 말이지."


"…어떻게 하겠어. 걔가 배운 주술은 용에게 맞춘 물건이라 이미, 마력 자체가 주술에 맞춰졌는데."


"쓴 다면 쓸 수는 있지 않아?"


"쓸 수야 있겠지. 근데, 중간에 주술로 변환되는 게 더 빠를걸?"


"…그렇네."


아미야와 금향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만히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난데없이 나를 쳐다보는 둘의 시선에 머리를 매만졌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인간에게 마법을 가르치면, 마력도 없을 텐데 회로가 어떻게 되는 걸까?"


"아마도, 주빈에게 마법을 가르친다면… 아니, 애초에 회로가 없지 않아?"


"그럴려나. …나도 그렇고, 금향. 너도 그렇고 인간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미안해요, 주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죠?"


"아닙니다. 제게 혹시나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르니 걱정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해. …애초에, 깊게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고 흡혈귀에게 간단한 마법만 쓰게 해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될 테니까."


"그렇습니까?"


"그럴 거에요. 보통,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건 마법의 구조를 깨닫는다는 뜻이니까, 아마 방음 마법은 알아서 고칠 수 있을 거에요."


금향이 내게 설명하는 것을 듣다보면, 나도 마법의 구조를 알 수 있게된다는 것처럼 들려왔다.


머리를 매만지는 것을 멈추고, 카운터 위로 두 손을 올려놓고 아미야를 쳐다봤다.


"저도 배운다면, 마법의 구조를 깨닫을 수 있다는 소리십니까?"


"어… 혹시, 신체에 마력을 만드는 기관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럼 힘들겠네. 왜냐면, 마력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니까."


"…주빈."


"없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할 건지 조금 들어주셔도 괜찮지 않나요?!"


"마력을 만드는 기관에 대해 물어보실 생각 아니셨습니까?"


"맞기는 하지만!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민정도는 해주셨으면 해요!"


"싫습니다. 마력이 없어도 대체할 물건이 있으니 그걸로 하겠습니다."


내게 상체를 내밀고 항의하는 금향의 모습에서 시선을 뗴고, 아미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향의 투덜거림을 듣던 아미야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는 데, 내가 보자마자 입꼬리가 순식간에 내려가며 무표정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걸로도 충분히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 전에 먼저 확인해야 되는 게 있어."


"무엇입니까?"


"…당연히, 비늘에 담긴 마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력을 깨달아야지?"


자, 하고 아미야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걸 잡아야하는 건가, 아니면 비늘을 달라는 건가 고민이 되었지만, 적어도 비늘을 달라고 하는 것이라면 손바닥을 펼쳤겠지.


반쯤 추측에 가까웠지만, 비늘을 달라는 것이었으면 사과하고 복주머니에서 비늘을 꺼내어 주면 되는 일이었다.


내게 내민 손을 마주잡는다.


아까까지는 몰랐지만, 아미야의 손은 생각보다 따뜻하면서도, 어떤 기운같은 게 손에서 느껴졌다.


마력이라는 게 이렇게 따뜻한 건가 싶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손은, 생각보다 따뜻하네. 부드럽기도 하고."


"…예?"


"너도 내 손을 따뜻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마력으로 일부러 따뜻하게 만들고 있는 거야. 마녀는 마력으로 몸이 보호되다보니 따뜻한 편은 아니거든."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한번 느껴볼래?"


아미야의 손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사라지고, 그 위를 차지한 건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손이었다.


내 손이 남들에 비해 따뜻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차가운 손을 잡고 있을 때에는 예전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니, 여기서 그 기억을 떠올리는 건 좋지 않다.


고개를 내저으며 기억을 억지로 지워버리고, 아미야를 쳐다봤다.


"…뭐,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랐니?"


"…예."


내 얼굴을 보며 그렇게 말해오는 것에, 차마 아니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미안해. 하지만, 마력을 느끼게하려면 신체를 접촉하는 게 가장 효율이 좋거든."


"그렇습니까."


"그렇지. …자, 이제 다시 마력을 움직일 테니까 잘 느껴보렴."


그렇게 말하며 차가웠던 아미야의 손은 다시, 어떤 기운에 휩싸이니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기운이 마력이라는 건가 싶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뭔가, 어떤 게 느껴지지 않니?"


"아미야의 손 위로 어떤 기운이 감싸면서, 따뜻해진 게 느껴집니다."


"…그래? 생각보다 신기한 경험인걸. 남들은 기분이 나쁘다고 하던데."


"주빈은 아무래도, 사람이라서 남들의 마력을 느껴보지 못해서 그렇지 않을까?"


"한번 알아보면 되겠지. 금향, 손을 바꿔줄 테니 너도 잡아서 드래곤의 마력은 어떤 느낌인지 느끼게 해줘."


"엑? 자, 잠깐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나서…."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대충, 마력을 느끼면 바로 내 공방에 데리고 갈 거야."


"…아, 그렇지. 응. 마법을 배워야 하니까."


아미야는 악수를 나눴던 손을 풀고, 내 손을 잡고 금향 쪽으로 내밀었다.


조심스레, 천천히 내 손으로 다가오는 금향의 모습에 답답한 나머지 내가 먼저 손을 뻗었다.


마주잡은 손으로 느껴지는 금향의 기운은, 마치 황금색 기운같은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황금색 기운이 금향의 신체 전체를 감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금향의 등 뒤로 시선을 옮기면 신체 전체가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는 드래곤이 보였다.


저게 저번에 공원에서 봤던 금향의 본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아, 혹시. 제 모습이 보였나요?"


"황금색 기운에 휩싸인 것도 보였고, 그리고 그 뒤에 금향의 드래곤일 때의 모습도 보입니다."


"흠. 생각보다 마력에 대한 적성이 높은데? 거부 반응이 없는 것도 어쩌면, 적성이 높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네. 이럴 때에 청하가 있었다면 뭐라고 알려줬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자기 집으로 돌아간 녀석을 뭣하러 이야기해.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주빈?"


"예."


"저, 잠깐만 손을 더 잡고 있어도 괜찮나요?"


"괜찮습니다. 저도 마력이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 그렇군요. 제게는 주빈의 손의 촉감말고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네요."


신기하다는 듯이 내 손을 주물거리는 금향의 손을 따라서, 황금색 기운같은 게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여기저기 움직이는 게 보인다.


그 기운은 내게 다가오는 것 싶었지만, 겁 먹은 것처럼 주춤거리더니 얌전히 금향의 신체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금향의 신체를 따라 흐르더니 내 손과 마주잡은 금향의 손으로 가고는 내 손 위로 올라오지는 않았다.


마치, 다치기 쉬운 생물을 만지는 것처럼, 그 기운이 내 손의 이곳저곳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이 마력이라는 게 주인을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네?!"


"황금색 기운같은 게, 금향이 잡고 있는 손 위로는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금향이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느낌입니다."


실제로도 금향이 내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그 위로 쓰다듬는 느낌이 추가된 것 같았다.


그런 내 말에 금향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는, 황급히 잡았던 손을 풀고는 뒤로 뺐다.


"왜 그러십니까?"


"그, 그… 죄송해요!"


금향은 그 말만을 남기고 카운터 뒤쪽으로 달려가더니 문을 열고는, 그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미야는 그런 금향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핫! 천하의 그 드래곤이, 인간에게 그런 감상을 들었다고 도망가는 모습을 볼 줄이야!"


"시, 시끄러워! 너도 주빈의 손을 빤히 쳐다본 주제에!"


"…그런 적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이 모자로 얼굴을 가린 아미야가 보였다.


아미야가 금향과 청하와 친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왜 친한가 싶었더니 둘과 비슷했으니 친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아미야의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하아아아…."


"그, 그렇게 한숨 쉬지 말아주겠니? 나도, 인간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알겠으니, 얼굴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줘."


"마법은 언제 배울 수 있는 겁니까…."


그런 볼멘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그럼에도 아미야는 아무런 말도 없이 붉어진 얼굴을 내게 보이지 않으려고 모자를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늘 마법을 배우기는 커녕, 내일이 되어서야 마법을 배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