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불안정해진 마법진을 손으로 더듬어가며, 이상한 부분들과 지워진 부분들을 고쳐나가기 시작하는 필리아의 모습을 보며, 과연 마법의 기초의 기도 모르는 내가 조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마법을 사용하게 것도, 기초를 배우게 된 것도 고작해야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데, 이런 나보다 필리아가 마법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지 않나.


이게 맞나, 이렇게 하는 건가?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쳐나가는 필리아를 보고 있자니 지켜보는 나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고쳐가던 필리아의 손이 우뚝 멈추고는, 벌벌벌 떨리더니 나를 돌아봤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한 모습에 내가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아미야에게서 들은 것이 있었고, 말하는 사람도 불안해하면 더 불안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했다.


"처음부터 고치는 게 아니라 어디서부터 고쳐야하는 건지 파악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네!"


고개를 끄덕거린 필리아는 고쳐나가는 것을 멈추고,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건지 마법진을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력을 사용할 줄만 알지, 생각해보면 마법진의 구조라던가 그런 것에 관해서는 아미야에게서 배우지를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배운 것이라고는 마법의 기초에 관한 것들이었지.


그것말고도 간단한 마법들 몇 가지도 배우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쓸모 없는 것들이었다.


마법진의 구조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틀린 부분들에 대해서는 눈에 명확하게 보일 정도로 띄었으니 그것만 필리아에게 알려주면 될 것 같다.


여기저기 손으로 짚어가며 마법진의 틀린 부분을 기억하는 듯한 필리아의 어깨를 톡, 톡 느낌이 갈 정도로만 작게 두드리니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힛?! 왜, 왜 그러시나요?"


"별 것 아닙니다만, 그 옆 쪽에도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알려드릴려고 합니다."


"아… 옆에요? 거기는 이상한 점이 안 보였는데."


필리아의 짚은 손의 오른쪽을 가리키며 알려주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이 반응했다.


…저 정도로 눈에 잘 띄는데, 어째서 못 보는 걸까.


다른 곳이랑 명확하게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진의 색깔은 파란색이 정상적이라면, 지금 가리킨 곳은 빨간색으로 빛나기도 하고, 보라색으로 빛나기도 했다.


그런 차이점을 필리아는 느끼지 못한다는 듯,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어… 거기가 틀린 곳이 맞나요? 제가 보기에는 멀쩡한 곳 같아요."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뭔가 다릅니다."


마법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필리아는 내 말을 믿고 그 쪽을 살펴보더니 놀라워했다.


"아! 여기, 자세히 보니까 다르게 적은 곳이 있네요! 고마워요!"


"별 일 아닙니다."


필리아의 반응을 보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맞았나 보다.


어째서 못보는 걸까. 흡혈귀와 사람간의, 무언가 알 수 없는 차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눈에 띄일 정도로 차이나는 색깔의 변화가 있었다.


지금도 필리아가 여기가 틀렸다고 가리킨 곳은 멀쩡하게 빛나고 있는, 파란색이었다.


"거기는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네? 네."


분홍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머리를 부여잡던 필리아는, 내 말을 듣고는 아까 살펴보던 부분을 훑더니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네요. 저도 잘 몰랐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내가 보는 것을 왜 필리아는 못 보는 걸까.


도통 생각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어쩌면, 내가 사람이라서 볼 수 있는 걸까?


아까도 생각했었던, 사람과 흡혈귀의 차이에서 오는 무언가가 있기에 나는 볼 수 있지만, 필리아는 못 보는게 맞는 건가?


추측은 많았지만,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로지 가능성의, 가능성만 떠올랐기에.


마법진을 뚫어져라 살펴본다.


필리아가 훑어 봤었던 부분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역시나 필리아가 확인했던 부분들 중에서 맞는 부분들과 틀린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일부러 확인하려고 마법진을 구성하는 문양들 가운데에 선을 그어놓은 것이 보였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부분들도 선을 그어놓은 탓에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는 걸 보면, 필리아는 이게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는 건지 아닌 건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 싶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게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너무나도 명확하게 잘못된 부분들이 보일 리가 없었으니.


필리아가 슥슥 그어놓은 부분들을 지워버리니, 앞에서 머리를 부여잡던 필리아가 크게 놀랐다.


"뭐, 뭐하는 거에요?!"


"잘못된 부분들을 한번 고쳐보려고 합니다."


"…정말로요?"


"예."


필리아가 확인하려고 그어놓은 선들을 지워버리고, 멀쩡히 작동하나 확인하니 그어놓은 곳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뉜 문양들이 가운데로 합쳐지며 멀쩡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빨간색으로 빛나던 것들이 파란색으로 돌아오고, 여전히 빨간색으로 빛나는 부분들을 훑어본다.


어디는 필리아가 그어놓지 않았는데도 그어져서는 반으로 나뉘었고, 어디는 문양의 일부가 지워진 채였고, 어디는 문양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이 그어져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부분들부터 시작했다.


반으로 나뉜 문양들을 하나로 합치고, 일부가 지워진 문양들은 모르니 냅두고, 가로지르는 선…도 냅두고.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지만, 나머지는 필리아가 어떻게든 해주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냅뒀다.


필리아도 할 수 없다면 금향에게 전화하거나 마법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알아서 고쳐주겠지.


그렇게 하나 하나, 천천히 고쳐나가니 내가 고치지 못하는 것과 필리아가 고치지 못하는 것 만이 남았다.


"몇 개 안 남았는데, 그 몇 개가 문제네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제 생각에는,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나. 그래도 어느정도 수습은 되었으니까…."


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마법진의 빨간색으로 빛나는 부분들을 보면서 머리를 매만지다가 나를 돌아봤다.


"…혹시,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있기는 합니다. 문제라면, 아마 그렇게 해결하면 필리아씨가 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불렀다는 게 들키겠죠."


"…상관없지 않나요?"


"여기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곳이니, 지정된 마법사가 아니라 다른 마법사가 멋대로 손을 댄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 렇네요."


추욱 하고 어깨가 늘어진 필리아의 모습에, 그래도 나와 필리아가 고친다면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쫓겨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어 방음 마법을 찍어서 금향에게 문자와 함께 보냈다.


문양이 사라진 부분들과, 가로로 그어진 부분들을 어떻게 해야 복구할 수 있는 지.


내 문자가 가자마자 금향이 봤는 지 1이 보였던 자리가 사라지고, 답을 보내고 있었다.


금향은 사진을 토대로 원래는 이렇고, 이렇게 고치면 더 나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문제가 생긴다면 전화를 달라는 답을 보냈다.


고맙다는 말을 보내고, 필리아에게 그것을 보여주니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마법진에 거의 코를 박다싶이 얼굴을 들이밀고는 고치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보내준 분은 천재인 게 틀림없어요!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 쉽게 고치는 걸 알아낸거죠!?"


잔뜩 흥분해서는 금향에 대한 칭찬을 하기 시작한 모습에, 드래곤이니까 천재… 천재가 맞는 건가? 하며 머리를 매만졌다.


천재가 맞기는 할 것이다. 드래곤이니까 마법에 대한 재능이 넘쳐나는 수준이 아니라, 마법이 드래곤인 수준이니까.


당장, 내게 보여줬던 마법도 그렇고 화려함도 화려함이지만 카페에 사용된 마법을 보면 어지간한 종족들은 눈치채지도 못하고 들어올 수도 없었으니.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청하가 말했던 대로, 금향에게는 장사의 재능이 없었다.


드래곤이라고 뭐든지 잘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청하가 말하고나서 알았다.


그래도, 마법에 관해서라면 충분히 신뢰하다 못해 신앙을 가져도 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금향이니.


어쩌면, 옛날에는 금향도 신으로 취급받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종족 자체가 신으로 취급되거나.


과거에는 어땠을까. 생각보다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고개를 내저으며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필리아가 열심히 고치기 시작한 마법진으로 다시 되돌아오니, 이전에 고쳤던 부분들도 다시 고치고 있었다.


"굳이 거기까지 고칠 필요가 있습니까?"


"있어요! 할 거면 싹, 전부 다 고쳐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테니까요!"


"오히려, 의심받는 건 아닐지 걱정됩니다."


"의심받을 정도로 마법을 배웠다고 하면 됩니다! 옆에서 그렇게 말해주실 거죠?"


"…알겠습니다."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그렇게 말해오는 필리아에게, 보이지도 않겠지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마법진의 문양들을 수정해나가던 필리아는, 중간을 넘어간 부분부터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같은 부분을 문질렀다.


딱히 특별한 곳도 아니었기에 그냥 고치면 되는 게 아니었나 싶었는데, 몸을 뒤로 돌려 나를 보는 모습에 깨달았다.


내 피를 마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마력을 그렇게 많이 사용한 것인지, 벌써 마력을 다 쓴 모양이었다.


"…저, 저기. 조금만 더 마셔도 괜찮을까요?"


"…예."


마법진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지만, 한숨을 내쉬며 찔렸던 검지 손가락 대신에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필리아는 내게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입을 열고는, 잠깐 내 눈치를 보듯이 눈을 돌리다가 꾹 감고는 엄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혀로 이리저리 굴려대며 엄지 손가락에 침이 묻는 느낌이 좀, 좋지는 않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송곳니 쪽으로 옮겼다.


엄지 손가락이 송곳니 위에 자리를 잡자, 괜찮냐는 듯이 나를 보는 필리아에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송곳니에 엄지 손가락을 살짝 찔렀다.


푹도 아니고 살짝 건든 수준인데도 엄지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든다.


정말, 흡혈귀의 송곳니가 괜히 사람의 몸에 구멍을 뚫었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날카로우니 목에 송곳니를 박으면 사람이 죽는 거구나.


쯉 쯉 하고 아기가 자기 손가락을 빨듯이 내 엄지 손가락을 빨기 시작한 필리아의 모습에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별 거 아니겠거니 하고 넘겨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필요에 의해서 손가락을 빠는 흡혈귀를 아기 같다고 생각하는 건 좀, 너무한 생각이 아닌가.


내 생각이 필리아에게 들리지 않도록 빌며, 그리고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어떻게든 무표정을 유지했다.


엄지 손가락이 침으로 범벅이 되고도 남을 정도로 빨고 난 뒤, 필리아가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아, 닙니다."


엄지 손가락에서 뚝 뚝 떨어지는 침이 필리아의 입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기에 무심결에 주춤거리며 말이 나왔지만, 전혀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침과 함께 피도 같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피가 떨어지려는 것을 본 필리아는 한 방울도 아깝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는 엄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가 앗 하고 놀라는 표정과 함께 입을 열고 뒤로 떨어졌다.


"죄, 죄송해요. 더 마시고 싶었던 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일단 침부터 닦아내고 연고랑 반창고를 붙일 테니, 하던 작업은 계속 하시겠습니까."


"…네."


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뒤로 돌아서 마법진을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한 필리아의 뒷모습을 보다가, 싱크대 쪽으로 가기전에, 가는 동안에 피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휴지 몇 장을 뜯어서 엄지 손가락을 감싸맸다.


휴지가 피로 물들기 시작하는 모습에 서둘러 싱크대로 향하여 수도꼭지를 돌려서 틀고, 물로 침과 피가 섞인 엄지 손가락을 닦았다.


차가운 물에 닦아내지는 침과 피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피부가 쪼그라들 정도로 빨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빨고 있었던 건지.


다치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수도꼭지를 끄고 방으로 돌아와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한동안은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다행이라면 주로 사용하는 손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른손은 새벽에 찔렸지만, 그건 약으로 나았으니.


…내일 아미야에게 찾아가면 이것도 약으로 낫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비싼 약으로 보이기도 했고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었는데 부탁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마법진으로 시선을 돌리니 얼추 다 고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