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주빈은 머리 모양을 바꿔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둘의 투닥거림이 멈추고, 금향은 내 오른편에 앉아서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물어왔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짧게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다르게 바꿔볼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고개를 내저었다.


"없습니다. 지금도 너무 길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중이라, 이왕이면 짧게 자르고 싶습니다."


"뭐! 짧게 자른다고!"


"네? 지금도 괜찮은 것 같은데…."


왼편에 앉은 청하가 꼬리를 꼿꼿이 세우며 놀라는 게 보였다.


머리를 짧게 자를 뿐인데 저런 반응을 보여주는 건지 모르겠다. 짧아져도 괜찮지 않나?


금향은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었는 데, 그 손놀림이 뭔가 간지럽게 느껴진다.


머리가 짧았을 때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라 생소하면서도, 그렇게 막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느낌이 이상하네. 그렇게 넘겨버렸다.


"…끈으로 머리를 묶어본 적도 없나요?"


"없습니다."


"허어. 머리가 그렇게나 긴 데도 다른 머리 모양을 해본 적이 없다고?"


여자들은 머리가 길어지면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남자로 살아왔을 때에도 귀찮으면 머리를 짧게 쳐버렸으니. 그건 여자가 된 지금도 변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금향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옆 자리에 앉은 청하도 내 머리카락으로 장난을 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비 꼬으거나, 옆 머리카락을 땋기 시작했다.


청하의 장난이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머리카락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내게 충분히 이상함을 느끼게 했다.


실시간으로 머리카락이 꼬아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쓰다듬듯이 만지면 어떤 느낌으로 내게 전해지는 건지.


이런 감각을 느끼면서 여자들은 살아왔던 건가.


…아미야에게 조금 있다가 찾아간다고 문자를 보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오래 카페에 있다가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을 놔줄 생각을 안 하는 둘의 모습을 보면.


"흐음…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남들이 보는 모습이 많이 바뀔 텐데 말이죠."


"그렇지만, 남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록, 우리가 곤란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그렇네. 그렇지만, 주빈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구나!"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쳐다보는 청하의 시선을 무시하며, 옆에 앉은 금향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청하와 마찬가지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머리카락을 바꾸는 것 정도라면야.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들어주다보면 언젠가는 옷으로 바뀔 지도 모른다.


부탁에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금향과 청하, 둘이 해준 것을 떠올려보면 무심결에 입어준다고 말이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바지 종류라면 흔쾌…히는 아니겠지만, 입어주기는 하겠지만 치마 종류라면 결단코 거부였다.


내가 아무리 여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신은 남자였기에, 절대로 입고 싶지 않은 옷이었다.


"…머리 모양을 바꿔주는 것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보는 둘의 시선을 무시하는 것도 어느 정도였지, 부담이 되는 것은 여전했기에 한숨을 속으로 내쉬며 허락했다.


둘은 이예이!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로 이동했다.


어떤 머리카락을 해주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너무 이상한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카운터 위에 어느샌가 올라온 황금색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전에 마셨던 것과 똑같았지만, 전과는 다르게 조금 더 맛있게 느껴진다.


타는 방법이라도 바꾼 건가, 아니면 오늘은 좀 더 잘 된 건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공짜로 밥을 먹은 데다가 커피나 차도 공짜로 나오는 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맛이 없더라도 감사히 먹어야하는 것이었다. 아니, 맛이 없다면 조금 고민은 하겠지만.


"그래서, 원하는 머리라도 있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한번도 머리를 바꿔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흠… 그럼, 가볍게 하나로 묶어보는 것도 괜찮으려나."


"그것도 괜찮아 보인다. 내가 보기엔, 주빈은 목이 드러나는 편이 훨씬 예쁠 것 같구나."


"적당히… 적당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는 둘에게 그런 부탁을 건네며, 제발 이상한 모양으로 바뀌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다.


둘은 곧, 어떻게 할 지 정했는 지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양갈래라던가 머리를 땋는다던가,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 끈 같은 것으로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은 고무줄처럼 생긴 것으로 머리를 묶지 않나?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그녀가 고무줄같은 무언가로 머리를 묶었던 것이 떠오른다.


"끝났어요!"


"…벌써 끝났습니까?"


"하나로 묶었을 뿐이니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느니라!"


엣헴, 하고 가슴을 내밀며 자랑하는 청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뻔히 상상이 되었다.


그런 청하의 상상을 뒤로 하고, 금향이 내게 건네는 손거울을 받아서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관리라고는 전혀 하지도 않았던 머리카락이 하나로 묶여 있는 걸 보니 어색하면서도, 목이 보인다는 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남자였을 때처럼 목이 다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훤히 보일 정도였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달라붙던 머리카락이 이제는 때릴 것처럼 붙을 것 같기는 하지만.


하나로 묶이면서 머리에서 느껴지는 무게도 달라졌다.


전에는 하나하나 무게감이 느껴졌다면, 지금은 하나로 묶인 상태라서 한 쪽으로 쏠려있는 느낌이다.


…거울에 비치는 묶인 부분을 자세히 보니 황금색과 파란색 끈이 살짝씩 보였다.


"…두 분이서 묶었다고 끈을 두 개나 쓰셨습니까?"


"무, 문제라도 있느냐?"


"문제까지는 아닙니다. 근데, 하나만 써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주빈. 저희가 서로 싸우는 걸 원하시나요?"


"아닙니다."


금향이 정색하며 내게 물어오는 것에 급하게 대답하며, 손을 내저으니 정색하는 표정이 얼굴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는, 방긋 웃는 모습이 보였다.


"농담이에요!"


"농담입니까…."


식은 땀이 등 뒤로 흐르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정색하는 금향은 무서웠지만 농담이라고 하니 별 말을 붙일 수는 없었다.


청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깔깔깔 쾌활하게 웃었지만, 그것도 찌릿 하고 쳐다보는 금향의 시선에 금방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거라."


"웃은 게 누구인데."


"저렇게 쩔쩔 매는 모습은 처음봐서 그렇느니라!"


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도로 내 옆에 앉는 청하는 하나로 묶여있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금향은 그런 청하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마찬가지로 내 옆에 앉았다.


마치 내 옆 자리가 자기 자리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하게 앉는 모습이 꽤 익숙해보이기도 했고, 나도 이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자 골치만 아파올 뿐이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훤하게 보이는 목이 뭔가 싸늘하게 느껴져 목을 매만졌다.


원래라면 머리카락이 닿았을 부분들이, 머리카락이 없고 맨 살의 감촉만 느껴지니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이상하겠지만, 나중가면 그것도 괜찮아진답니다?"


"그렇습니까."


"매번,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다니던 때보다는 훨씬 보기 좋구나!"


단순히 하나로 묶었을 뿐인데도 저런 반응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묶기 전의 내 모습은 생각보다 답답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묶는 것도 금향과 청하, 둘이 해줬으니까 이렇게 있는 거겠지만, 내가 하라고 하면 아마 귀찮아서 안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묶는 것도 귀찮았고, 묶기 위해서 끈을 따로 준비한다는 것도 귀찮았다.


짧게 잘라버리는 게 내게 있어서 가장 나은 선택지가 아닐까. 옆의 둘은 결사반대를 하겠지만, 머리카락의 주인은 나인데.


황금색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금향에게 고개를 돌려보니 훤히 드러난 내 목부분을 보며 웃고 있었다.


옆의 청하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찬가지로 같은 곳을 보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내 목에 볼 게 뭐가 있다고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건지.


괜스레 어색함이 들어 손으로 목을 만지려다가, 금향에게 손을 붙잡혀 제지당했다.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요! 밖에 나가서도 그렇게 부끄러워 할 생각이에요?"


"그, 건 아닙니다."


"모처럼 우리가 머리를 묶었으니 한동안은 그렇게 지내는 게 어떠느냐!"


"…솔직히 말하자면, 매일 머리를 묶는 것도 귀찮을 것 같습니다."


"뭣!"


"…주빈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전처럼 머리를 풀고 다니시겠죠."


금향이 턱을 두드리며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머리를 풀고 다니던, 묶고 다니던 대체 둘에게 있어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인데.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해준 것도 있으니 이러고 밖을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나중에 머리를 어떻게 바꿀지는 몰라도, 짧게 잘라버린다면 목이 훤히 보일 테니까.


지금이라도 익숙해지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생각도 모르는 청하는 자기 꼬리로 내 머리카락을 빙빙 꼬듯이 감싸고 있었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머리를 못 풀겠지!"


"그럼, 씻을 때에는 어떻게 합니까?"


"…어, 그건 생각을 안 했구나."


순식간에 시무룩해지더니 꼬리를 풀고는 자기 몫으로 놓인 커피를 마시는 청하의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눈 앞의 차를 마셨다.


차가 거의 비어갈 쯤에도 말 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금향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고는 나를 바라봤다.


"제가 끈에다가 마법을 걸어드릴 테니까, 묶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한번씩 써보는 게 어때요?"


"마법입니까…?"


"네! 주빈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머리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 같으니까 끈에다가 마법을 걸어서 자동으로 묶이게 하는 거에요!"


…그건,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여태까지 머리에 손을 대지 않았던 이유가 귀찮다는 것도 있었으니.


금향의 방법이라면 손을 대지 않고도 이렇게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마법이 어떻게 적용되는 건지는 물어볼 필요가 있었지만.


"끈에다가 마법을 걸어둘 테니까, 손으로 머리카락을 한 곳으로 모아주시면 알아서 될 거에요!"


"알겠습니다."


저번처럼 지팡이라도 꺼내려는 걸까 싶었지만, 황금색 끈에 손을 툭 하고 갖다대니 금향의 손을 타고 올라오는 황금색 기운이 끈으로 옮겨갔다.


머리를 묶는 것에도 마법이 이런 식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니, 아미야에게서 배운다면 나도 나중에는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생활에 응용이 가능한 게 많아보였다.


…아미야의 생각을 떠올리니, 카페에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슬슬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금향의 모습을 보니 조금 더 오래 있어야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슬슬 아미야에게 가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내가 아미야에게 간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알려주지도 않았던 사실을 알고 있는 금향을 쳐다보니, 슬쩍 고개를 돌려서는 내 시선을 피했다.


"그게, 언제 보내줄 생각이냐고 아미야에게서 연락이 와서…."


"그렇습니까."


생각보다 더 오래 있었던 모양이었다.


"흠, 그렇다면 나도 일찍 가봐야겠구나. 먼저 가보겠느니라!"


나중에 보자꾸나!


내 머릿속으로 그렇게 전하며 훌쩍, 떠나는 청하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붙잡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약이 있으니 어쩔 수 없겠죠. 나중에, 또 와주실거죠?"


"오겠습니다."


금향에게 고개를 끄덕거리니, 방긋 웃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며칠 사이에 이렇게나 친해질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가보겠습니다, 금향."


"또 오세요, 주빈."


손을 흔들어주고, 카페의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