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평소에는 목을 가리고 다녔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들이 하나로 묶여 훤히 드러내고 다니니 느낌이 참으로 묘하다.


이렇게나 남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목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관심인데 치마같은 여성의 옷차림을 입는다면 얼마나 많은 시선이 모일련지.


상상하는 것도 끔찍했지만, 언젠가는 그런 옷을 입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상상도 하기 싫다.


평소보다 더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한숨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속으로 삼키며 아미야의 공방을 향해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청하의 도서관처럼 카페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었기에 십여분정도 걸으면 곧 도착하겠지만, 오늘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복주머니에 있는 청하의 비늘도 가져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가서 가져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미야에게 곧 찾아간다고 문자도 보낸 것도 있으니 사정을 설명하고, 집으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아미야의 도움을 받는 수 밖에.


도움을 바란다고 해도 마법을 배우러가는 입장일 뿐인데 도와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아미야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었으니 거절하면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라는 이유로 아미야가 내게 친절을 베풀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금향과 청하도 당장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는 아닌 것 같다.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족이었더라도, 카페에 들어갔다면 충분히 관심을 받았겠지만 이렇게까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겠지.


차라리 그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나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사람에게서 페로몬인지 뭔지가 붙어 있는 건지.


남자였을 때의 살던 곳에서는 다들 사람이라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건가. 그것도 아니면, 이쪽 세상에서의 사람이 가진 특성이나 아니면 비슷한 무언가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더더욱 이상한 것이, 내가 이쪽에 넘어온 것은 한달 전이었는데 그전에는 별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거기서는 동물을 제외하면 사람밖에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에게 효과를 발휘한다는 건 뭔가 이상했지만, 검색을 해봐도 마땅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으니 답답한 따름이었다.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대답을 해준다면 정말로 좋을 텐데.


금향과 청하에게 물어본다고 한들, 제대로 답을 줄거라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둘은 사람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것 같은 부분들도 꽤 있었고, 왜 그런 페로몬이 있는 건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냥, 처음부터 사람이라는 종족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걸로 받아들이는 게 편할 것 같다.


주변에서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드는 종족이라던가, 귀를 미친듯이 움직이는 종족이라던가, 내 쪽으로 얼굴을 내밀면서도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한 채 냄새를 맡는 종족이라던가.


그 외에 가지각색의 종족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으려니 상념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아미야의 공방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상념이 지워질 무렵, 어느 지점에 다다른 순간부터 주변에 있던 종족들이 나를 인지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관심이 사라졌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기니 눈 앞에 나무로 된 출입문이 보였다.


주변의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낡은 목재로 된 표지판에 적힌 아미야 라는 이름을 보고 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시오 라는 팻말이 달린 나무로 된 출입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솥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나무 주걱으로 휘휘 돌리고 있는 아미야가 보였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힘들 지도 않는 건지 열심히 휘젓던 아미야는 사다리 밑으로 휙 하고 가볍게 뛰어내리고는, 내게 다가와서는 어깨나 얼굴을 주물렀다.


"뭐…하십니까?"


"오는 동안에 귀찮은 것들이 달라붙지는 않았나 확인하는 거니까 안심하렴."


상냥한 목소리로 말해오는 것과는 다르게 내용은 날카롭게 들렸다.


귀찮은 것들이라니, 아까 나를 쳐다보던 다른 종족들을 그렇게 표현하는 걸까.


아무렇지도 않게 문제가 될 법한 발언을 내뱉은 아미야의 모습에 속으로 조금 당황하고 말았지만, 남을 얕잡아보던 것은 청하도 마찬가지였다.


금향…은 그랬던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째서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친해진 걸까 의문만이 들었지만, 지금 꺼내기에는 그렇게 좋은 때가 아니었다.


아미야는 거의 5분을 내 몸 이곳저곳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줬다.


"혹시 귀찮은 일이 발생하면 이걸 땅에 던져버려. 그럼, 대충은 해결될거야."


"위험한 물건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슬쩍, 내게서 고개를 돌리는 아미야의 모습에 이건 절대로 사용할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용할 일이 생겨도 아마, 내 주머니에 없거나 아니면 금향이나 청하를 부르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적어도, 이걸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선을 피하는 아미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그렇게 위험한 물건은 아니란다. 단지…."


"단지?"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간지럽게 만드는 연기를 뿜어낼 뿐이지."


"위험한 것 아닙니까?"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괜찮아지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 적당한 시간이 언제인지 참으로 궁금했지만,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에 입을 다물었다.


아미야도 머쓱하다는 듯이 어깨를 올렸다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걸 배우고 싶니?"


"…아. 그게, 오늘은 청하의 비늘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집에서 나오면서 챙겨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것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아닌데… 흠. 적당한 물건이 있으려나."


비늘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여있는 곳으로 향한 아미야는 무언가를 찾는 듯, 그곳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뭘 찾길래 저렇게 뒤적거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여성의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건 실례가 아닌가.


같은 여성의 몸이 되었다고 해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몇몇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건 그 기본적인 예의에 포함되는 부분이기도 했고.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한참을 잡동사니의 산을 뒤적거리던 아미야는, 무언가를 가지고 내게 돌아왔는데 여기저기 금이 가고 갈라진,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 정도 되는 나무로 된 낡은 지팡이였다.


그걸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아미야는 그걸 내게 내밀었다.


"받으렴. 마력이 없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란다."


생긴 것만 봐도 그렇게 생긴 물건이기는 했다.


흡사, 흔히들 말하는 마법 지팡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종류의 물건이었기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직접 사용하게 될 줄은 예상 못했지만.


아미야가 내미는 지팡이를 조심스레 건네받으며,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으려니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받은 게 눈에 띄었다.


잡동사니 속에 쳐박혀있었던 것 치고는 관리가 되고는 있었는 지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마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마녀들을 위해 안에 마력이 담긴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야."


"제가, 잘 사용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처음에 네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청하 녀석의 비늘에 담긴 마력을 사용하는 걸 보고 충분히 사용 가능할 거라고 봤단다."


"그렇, 군요."


"…말투는 굳이 바꿀 필요 없으니 편하게 말해도 좋아."


"…괜찮아요."


아직은 말투가 어색했지만, 이것도 아미야에게서 마법을 배우는 동안에 천천히 나아지겠지.


아미야가 건네준 지팡이를 손에 쥐니, 풀이라도 붙여놓은 것처럼 손에 딱 달라붙는 것 같았다.


쥐는 감각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상태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나쁜 건 아니니까 안심하고 쓰렴."


"알겠습, 니다."


"어휴, 듣는 내가 답답할 정도네. 본인 의지라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편한대로 말해."


"예."


저번처럼 마법을 배웠던 곳으로 아미야와 함께 가서 청하의 비늘에 담긴 마력을 사용하는 느낌으로 지팡이를 사용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보다 꽤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네."


"그, 런가요?"


"그럼. 나 정도는 아니어도 마법을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마녀들보다는 훨씬 나은걸."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청하의 비늘에 담긴 마력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지팡이의 마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부탁하듯이 움직여야 겨우 움직이는 청하의 마력이었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려고 하면 그것에 맞춰서 따라왔다.


…아무리 그래도 청하의 일부였던 물건이라지만, 너무 청하를 닮은 게 아닌가.


아미야는 내가 돌려준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어떤 생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만지는 그 손을 보고 있자니, 아미야에게 있어서 의미가 깊은 물건인 듯 싶었다.


그렇게 만지작거리던 지팡이를 다시, 내게 내밀었다.


"이제는 내게 필요없는 물건이니까 가져가렴."


"가져가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방금 말했다싶이, 이제는 이걸 사용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럼, 적어도 지금 필요한 너에게 주는 게 더 낫다고 봤단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내민 지팡이를 조심스레 받고, 아미야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미야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머쓱하다는 듯이 모자를 아래로 숙여 얼굴을 가렸다.


살짝, 뺨이 붉어진 것 같았지만 모자를 올린 얼굴에서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근데, 머리는 어쩐 일로 그렇게 바꾼거니?"


"아. 금향과 청하가 바꿔보고 싶다고 말하더니 이렇게, 묶었습니다."


"그래? 잘 어울리네. 평소에 보던 답답한 모습보다는 이렇게, 시원해 보이는 모습이 좀 더…."


거기까지 말한 아미야는 갑자기 코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돌렸다.


뒤에 뭔가를 더 말한 것 같았지만, 내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기에 숨소리같은 느낌으로 들렸다.


잠깐을 코를 부여잡았던 아미야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을 때에는 뺨이 약간 붉어진 모습이 보였다.


"잠깐, 이상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괜찮습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아미야의 코 밑에, 피가 묻은 것처럼 붉은 색의 뭔가가 묻은 게 보였지만 아마 착각이겠지.


"그래도… 내가 가르치는 게 나쁘지는 않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미야가 제게 잘 설명해주는 것도 있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지금은 쓸 수 있는 게 한정적이지만, 나중에 가면 이것저것 사용할 수 있는 게 늘어날거야."


"그렇군요."


"기대 되는 걸. 이왕이면, 청하 녀석의 마력이나 네게 건네준 지팡이의 마력이 아니라 네가 직접, 마력을 사용해서 마법을 쓰는 걸 보고 싶은데."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나도 마력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적어도 내 몸에 어떤 무언가가 생기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다른 곳에서 마력을 빌려와서 사용하는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으니.


"안타깝네. 어지간한 마녀들보다 훨씬 나은데."


목소리에서 느껴질 정도로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아미야의 모습에 쓴 웃음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