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아미야가 건네준 마법 지팡이를 누가 채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품 안에 소중하게 끌어안은 채로 집에 가고 있었다.


누가 가져가도 돈이 될 것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남자였을 때에도, 여자가 된 지금도 도둑은 간헐적으로 보였으니.


물론, 치안같은 경우에는 이쪽이 훨씬 나은 편이기는 했다. 감시 카메라말고도 마법이라는 법칙이 있기에 아주 작정하고 도둑질을 하는 게 아니라면야 어지간해서는 잡혔다.


도둑이 마법을 사용하면 일이 조금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거기까지는 내가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거기는 경찰이라던가 아리센처럼 국가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그러고보면, 금향이나 청하, 아미야는 소속이 어떻게 되는 걸까. 국가에 소속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많이 엮이고 있다고 생각되는 마당에 거기까지 들어가면 영영, 발을 못 빼는 곳까지 엮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지금의 거리감이 적당하지 않나.


한편으로는, 이게 옳은 거리감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다.


이게 평범한, 여성간의 거리감이라고 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남자의 정신을 갖고 있는 탓에 여성간의 거리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지.


분명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고 있다. 받고는 있는데, 어떻게 해야되는 건지는 영 알 수 없었다.


무작정 밀어내기에는 이미 이름까지 알려줄 정도로 친해진 상황이었다.


…밀어내고 난 뒤의 금향이나 청하의 반응이 어떨 지 상상이 안 되기도 했고.


저번에 보았던 모습은 여전히 내 뇌리에 남아있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청하의 모습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상념을 지워버린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니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집에 돌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게 나아보였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할 지 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아파트 부지에 들어서니 저 멀리에서 운동을 하러가는 건지 전에 보았던 복장의 필리아가 보였다.


여전히 눈에 띄는 색의 복장이라 여기서 팔을 흔들어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높이 들고 흔들었다.


필리아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는 지 상체를 이리저리 돌리다 팔을 흔드는 나를 보고는 이쪽으로 달려왔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아침에 제가 보냈던 문자는 보셨습니까?"


"봤어요. 내일 저녁…인 거죠?"


"예."


조금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필리아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장난 마법진을 고치기는 했지만, 이걸 어떻게 고쳤냐는 질문에 필리아가 알아서 고쳤다고 대답해도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을 지는 잘 모르는 일이었다.


필리아가 해결했다고 보기에는, 조잡하게 고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리센이 충분히 알아챌 가능성도 있었고.


되도록이면 잘 풀렸으면 좋겠다.


"…잘 풀리겠죠?"


"잘 풀릴 겁니다. 새벽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을 보면 고쳐지지 않았습니까."


"그렇…겠죠?"


신에게 기도라도 하듯이 두 손을 모으고는 눈을 질끈 감는 필리아의 모습에 흡혈귀도 뭔가를 믿기는 하는 구나 싶었다.


여기에서는 어떤 신을 모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이 잘 풀리도록 도와주기를.


그렇게 속으로 필리아가 비는 신에게 부탁을 드리며, 다시 눈을 떠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필리아의 동공이 눈에 띄일 정도로 커진게 보였다.


"어, 저기. 머리, 바꾸셨나요?"


"아. 이거 말입니까?"


손으로 하나로 묶어놓은 머리카락을 가리키니 고개를 끄덕거리는 필리아가 보였다.


어쩐지 목이 허전하다 느껴지는 게 하나로 묶어놓았다는 것을 까먹어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별 거 아닙니다. 아마, 오늘만 이렇게 묶은 채로 다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엣. 오늘만요?!"


주위에 크게 울려퍼지는 필리아의 목소리에 흡혈귀도 성량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는 않았다.


금향이나 청하처렁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파트 부지내에 울려퍼질 정도였다.


필리아도 자기가 목소리를 너무 크게 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어버버 거리며 입에서 손을 뗐다가 다시 붙이기를 반복하던 필리아는, 어느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야 입을 틀어막은 손을 떼었다.


"죄송해요. 이게, 방송을 하다보니 버릇이 되어버려서 그만…."


"괜찮습니다. 실수를 안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실수라는 내 말에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급격하게 얼굴이 어두워진 필리아의 모습에 왜 저러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방음 마법진을 고장낸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건 실수라고는 해도 필리아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으니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쳐다보다가, 필리아가 작은 웃음 소리를 내며 침묵을 깼다.


"히히…. 제 실수기는 해도, 너무 눈치를 보시는 거 아니에요?"


"…위로를 해드리기에는 너무 명확한 실수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이젠 해결되었으니까 내일을 기다려야죠."


"괜찮겠습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방송을 하면서 늘어난 제 말솜씨로 어떻게, 잘 넘겨봐야죠."


엣헴, 하고 가슴을 내미는 모습이 어디선가 많이 본 푸른색이 이상적인 용이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비교하기에는 필리아에게 미안한 일이었으니.


청하와 필리아, 둘 중의 어디가 낫냐고 물어본다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필리아였다.


청하는 뭐랄까, 너무 귀찮게 다가온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이상으로 친하게 지냈다가는 이것저것, 묶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에 비해서 필리아는… 여태까지 봐온 모습이라면 밀면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물로 비유하자면 햄스터같았다.


흡혈귀를 햄스터라고 말한다면 실례가 되는 발언이지 않나 싶으면서도, 분위기라던가 느껴지는 것들을 그렇게 표현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두워진 표정이 사라진, 방실방실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필리아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렇게 느껴졌다.


"아무튼, 내일 저녁에 잘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헤실헤실 웃으며 내게 손을 내미는 필리아의 손을 마주잡으니,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위아래로 흔들고는 손을 놓은 뒤,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마 평소대로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겠지만, 이 날씨에 저렇게 입어도 안 추운 건지.


흡혈귀니까 아마 더위라던가 추위같은 것에 덜 민감한 걸지도 모른다.


…그건, 좀 부러울지도.


날씨가 추워지면 두텁게 껴입어야하는 내 입장으로는 마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필리아의 체질이 부러웠다.


따뜻해지는 건 좋은데, 뭔가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여름에는 차라리 얇게 입으니 괜찮은데 껴입는 건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겨울은 답답하게 지내겠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절로 내쉬었다가, 품 안에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에 확인해보니 아미야가 건네준 지팡이가 보였다.


…필리아와 대화를 하다 보니 이걸 품 안에 껴안고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빨리 집에 가서 잘 보이는 곳에 둬야겠다.


내가 사는 아파트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근처에 흔히 보이는 나무의 위에 올라간 꼬리 두 개가 인상적인 고양이 여성이라던가, 고개가 저렇게까지 돌아가도 문제가 없는 건가 싶을 정도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 여성이 보였다.


입은 옷가지와 등 쪽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날개로 보아하니 새의 특징을 가진 종족인 듯 싶었다.


밤에 움직이는 새가 뭐가 있더라 잠깐 생각을 해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나마 기억에 남은 것이라면… 편의점에서 보았던 그 알바생 정도였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대뜸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요청했던 건 아직까지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쓰다듬으니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질겁했던 것이 아직도 떠오른다.


…한동안은 잊기 힘든 기억이 되겠지.


으, 하고 진저리를 치며 아파트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필리아가 내려온 덕에 1층에 머무른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옆의 패널에서 뭔지 모를 광고를 열심히 띄우고 있었다.


여전히 의미 불명에 가까운 광고에 신경을 끄고, 9층을 눌렀다.


우웅 하고 약간의 진동음이 울리고, 엘리베이터가 매끄럽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동안 품 안에 있던 지팡이를 꺼내어 오른손에 쥐었다.


손에 착 하고 달라붙는 촉감이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아미야의 공방에서 잡았던 것을 빼면 이번으로 두번째인데 이렇게 잘 맞는 느낌이 든다는 게 신기했다.


청하의 마력과는 다르게 내 의도대로 잘 움직인다는 점에서 가산점이 더 붙지만.


매번 부탁하듯이 움직여야 하는 청하의 마력은 생각보다 귀찮은 점이 많았다.


이거라면 먼지같은 것을 굳이 빗자루로 쓸 필요도 없이 마법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법을 어떻게 쓰는 건지는 배워야했지만.


9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와서 집 앞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집 안이 보였다.


오늘도 뭔가,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왜 이렇게 피곤하게 느껴지는 건지.


아마, 마법을 사용한다는 게 몸에 무리를 주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신체적으로 피곤한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친 것에 가까웠다.


그래도 잘 때는 빨리 잠에 들어서 좋은 일이었지만.


저녁을 먹기는 너무 귀찮았기에 적당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적당히 푹신푹신한 침대의 촉감에 잠이 솔솔 왔지만, 뭔가 지금 자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이니 스마트폰으로 필리아의 방송이라도 찾아보고 싶었다.


지금 방송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잠을 자기 전에는 방송을 키지 않을까.


다시보기로 봤던 적은 있었지만 생방송은 본 적이 없었기에,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필리아가 방송을 키기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