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동공이 점점 풀려가며, 입이 헤 하고 벌어지기 시작한 필리아의 모습에 그만 이마를 짚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 눈으로 투사된 자기 모습을 보고 저렇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건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이런 것에 익숙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흡혈귀가 가진 특성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는 게 문제였다.


손가락이라도 튕기면 정신을 차릴까.


필리아의 눈 앞에서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겨보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귀에다 손을 갖다대고 튕겨보았지만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나보고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냅두고 집에 돌아갈까 싶었지만, 그래도 필리아가 불쌍하기도 했으니 어떻게든 깨워보기로 했다.


여차하면 최악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물이라도 끼얹어서 정신을 차리게 하거나 아니면 화장실에 있는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거기에 얼굴을 집어넣어서 깨우는 방법도 있다.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는 않았지만 방법이 없다면 할 수 밖에.


남들이 본다면 이걸 뭐라고 생각할까. 아니, 애초에 고문을 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머리가 아파오는 문제였지만, 생각만 한다고 해서 눈 앞에 있는 필리아의 상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필리아를 그 상태로 침대에 눕혀보기도 했고, 아니면 끙끙 거리며 일으켜세워서 의자에 앉혀보기도 했지만, 움직였다고 해서 풀리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언제까지 저 상태로 있게 되는 건지, 점점 머리가 아파온다.


두통이 살짝씩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에 다시 이마에 손을 짚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금향이나 청하, 아니면 아미야…는 안 되겠구나.


아미야에게서 전화번호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냥, 어디에 있는 지만 알고 있는 상태로 나와버렸으니.


지금이라도 찾아가도 괜찮은 걸까. 그전에, 갔다가 오는 도중에 깨어나서는 내가 없는 것에 놀라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멈추지를 않는다.


…청하는 조금 불안했으니, 금향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스마트폰의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날 느낌이 물씬 풍겼다.


누가 들어봐도 이건 옛날 노래구나 싶은 분위기의, 박자를 가진 음악이 지금 상황과 묘하게 안 어울려서 실소가 지어진다.


정말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 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상태로, 제발 금향이 전화를 받아주기를 바라며 노래가 계속 되던 가운데, 금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금향."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나요, 주빈?"


"그게…."


이걸 대체 어떻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하는 걸까. 금향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가장 나아보였지만, 청하처럼 행동하지는 않겠지만 금향이 여기로 찾아올 가능성도 있었다.


난리를 치지는 않겠지만,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버리고 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전화를 건 상태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상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급한 상황인가요?"


"급…한 상황은 아닙니다. 필리아, 그러니까. 제 옆 집에 사는 흡혈귀께서 제 눈에 투사된 자기 모습을 보고는 매혹…? 같은 것에 걸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흡혈귀가요? 아니,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자기 모습을 보고…?"


"저도 정말로, 말이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습니다만, 눈 앞에서 멍한 상태로 계시는 흡혈귀가 있습니다."


"그 상태를 깨우는 방법은, 매혹을 깰 정도로 강한 충격을 주는 것 말고는 없는데요."


"차가운 물이라도 끼얹으면 깨어납니까?"


"…아! 아미야에게서 마법은 배우셨죠?"


"약간은 배웠습니다."


"약간이라도 상관없어요. 그럼, 청하의 비늘에 담긴 마력을 이용해서 물을 만드시거나, 아니면 어디든 좋으니 물을 틀어놓고 그걸 움직여서 흡혈귀에게 끼얹으면 될 거에요."


"그걸로 충분합니까?"


"청하에겐 정화의 축복이 있으니, 아마 비늘에 담긴 마력에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을 거에요."


"알겠습니다. 이 시간에 전화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든지 전화를 걸어주셔도 상관없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주빈!"


"예."


뚝, 하고 금향의 목소리가 끊기고, 해결 방법을 다 들었으니 더 이상은 필요가 없어진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른 주머니에 있던 복주머니를 꺼내어 그 안의 비늘을 손에 쥐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 마력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쥔 손을 감싸는 푸른색 기운이 눈에 보였다.


금향이 말했던, 청하의 비늘을 이용해 물을 만드는 마법을 쓰기에는 내가 너무나도 미숙한 것도 있었기에,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차가운 쪽으로 돌리고 내렸다.


콸콸 쏟아지기 시작한 물을 보며 청하의 비늘에게 부탁하듯이 물을 움직여달라는 느낌으로 비늘을 쥔 손을 뻗으니, 물의 일부가 둥글게 모여 손 위로 날아왔다.


이거면 되겠지 싶어서 다른 손으로 수도꼭지를 올리고, 공중에 뜬 물과 함께 필리아에게 다가가니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 변함없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을 속으로 삼킬 틈도 없이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천천히, 비늘을 쥔 손을 필리아의 얼굴 쪽으로 내미니 그에 맞추어 야구공만한 크기의 물이 필리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흡혈귀니까 숨을 잠깐 못쉬어도 문제 없…겠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흡혈귀가 죽은 것도 아니고 멀쩡하게 살아있… 아니, 하나도 모르겠다.


시체처럼 새하얗게, 핏기 없는 피부라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걸지도 모른다.


가령, 지금도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가슴이라던가… 아마, 살아있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얼굴에 닿기 시작한 물은 넓게 펴져서 필리아의 얼굴을 뒤덮을 정도가 되어서야 멈췄다.


속으로 몇 초를 세야 필리아가 정신을 차릴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풀렸던 동공에 초점이 잡히고, 헤 하고 다물줄 모르던 입이 다물어진 필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어푸, 어푸!"


얼굴이 물에 닿아있다는 것에 놀란 나머지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휘젓던 필리아는, 그대로 침대에 발이 걸려서 침대 위로 쓰러지듯이 눕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이리저리 움직이던 팔이 벽에 부딪치면서 부딪친 부분을 부여잡고는 끄응 거리며 아파하기 시작했다.


"아, 아파!"


"…이제, 정신을 좀 차리셨습니까?"


"…에? 에… 아!"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내 모습을 보고는 눈이 동그랗게 커진 필리아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가 허공에 떠있는 물에 얼굴을 박았다.


저게 도대체 뭐하는 건지.


한숨을 내쉬며, 물을 싱크대로 날아가게 한 뒤에 마력을 비늘로 되돌리니, 싱크대 위에서 공의 형상을 유지하던 물이 그대로 흘러내려갔다.


얼굴에 물이 닿아서 축축해진 필리아의 얼굴을 보다가, 책상 위에 휴지가 있는 게 보여 몇 장 뜯어서 필리아에게 건넸다.


"감,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를 전하며, 얼굴에 물이 닿은 부분을 휴지로 닦아낸 필리아는,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었던 건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흡혈귀도 저렇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를 수 있구나 하는 묘한 감상을 느끼며, 부끄러워하는 필리아를 쳐다봤다.


"그, 그렇게 보지 말아주세요. 저도 한심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생각을 좀 하기는 했지만.


툭 하고 건들이면 폭발할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진 게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필리아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필리아가 어느정도 진정했을 쯤이었다.


"…죄송해요. 바보같은 모습을 보였네요."


"아닙니다."


"흡혈귀면서 자기 능력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다니… 역시, 저는 반푼이인가봐요."


"자기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 아니. 종족들도 많은데 그걸 파악하고 있는 것도 충분히 잘 하시는 겁니다."


"그, 그런가요? 에헤헤…."


헤실헤실 웃으면서, 머리를 매만지던 필리아는 핫, 하고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방, 방음 마법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이야기해요!"


"그럽시다. …일단, 제가 어느정도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저도 나름대로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는 했는데, 그래도 모르는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집에서 쫓겨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 보이는, 두 손을 불끈 쥐는 필리아의 모습을 보며 아미야에게서 들었던 방음 마법에 대한 내용을 전했다.


내 말을 듣던 필리아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는 지 얼굴이 점차 굳어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여전했다.


"…그래도, 주빈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주빈이 없었더라면, 방음 마법을 어떻게 해보려다가 더 큰 사고가 발생했을 지도 몰랐으니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부정하는 게 참으로 힘들다.


아마도, 내가 없었더라면 필리아는 방음 마법을 제대로 고치지도 못한 채로 집에서 쫓겨났을 지도 모른다.


아직, 제대로 고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금향이나 아미야를 부른다는 최후의 방법이 있으니.


그 결과로 필리아에게 뭔가 큰 문제가 발생할 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의 문제는 해결되니 나쁘지는 않았다.


아무튼, 상념은 멈추고, 이제 방음 마법에 집중할 차례였다.


"시작해봅시다."


"네!"


내 방과 연결된 방음 마법이 있는 벽으로 다가가서, 가볍게 두 번 두드리니 그 위로 마법진이 빛을 내며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파란색 빛이었다가 빨간색 빛으로 바뀌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을 구성하는 문양들 중에서 지워진 부분이나 다르게 그려진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아미야에게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라면, 저 부분들이 중요했는데, 아마도 필리아가 나름대로 고쳐보겠다고 이리저리 건드린 탓에 꼬여버린 게 아닌가.


마법에 대해 문외한인, 이제 입문한 내 눈으로도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필리아는 그것을 굳은 표정으로 보다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피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망설임 없이 필리아에게 검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필리아는 그런 내 손가락을 보며 잠깐 눈을 감고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내 손가락을 입에 앙 하고 물었다.


그러고는 우물우물 거리며 깨무는 게 아니라 입 안에서 굴리면서 혀로 핥는 듯 싶더니, 송곳니 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내 앞에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손가락을 옮기는 필리아는 생각보다 웃겼지만, 웃지는 않았다.


송곳니 쪽으로 옮겨놓은 손가락을, 필리아는 정말로 깨물어도 괜찮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개안아요?"


"…살짝만 깨물어 주셨으면 합니다. 생각보다 송곳니가 날카롭습니다."


"에."


고개를 끄덕거린 필리아를 따라 손가락도 위 아래로 움직였다가, 그대로 송곳니에 푹 하고 찔리고 말았다.


손가락 끝을 타고 올라오는 알싸한 고통에 잠깐 눈가가 찌푸려졌지만, 금방 풀렸다.


필리아는 실수로 찔러버린 것에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리고 말았지만,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피가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모습에 급히 입을 다무는 게 보였다.


그대로, 손가락을 빨며 피를 마시던 필리아는, 어느정도 마시다가 입을 열고는 고개를 뒤로 빼어 손가락을 뺐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휴지 몇 장을 뜯어, 찔렸을 때보다는 적게 나오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피가 나오는 손가락을 닦으며, 필리아가 가져다주는 연고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손가락 끝에서 아린 느낌이 가시지를 않는 것을 보면, 이 상처는 꽤 오래갈 것 같았다.


필리아도 피가 조금씩이기는 해도, 여전히 피가 흐르는 내 손가락을 보다가 몸을 돌려서, 방음 마법이 그려진 벽으로 향했다.


"어디를 고쳐야하는 건지,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도 듣기만 해서 잘 모르는 편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조언을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일단은, 저기 밑부분의 꼬여버린 곳부터 시작합시다."


"네!"


씩씩하게 대답하는 필리아는 자세를 낮추어 마법진 밑 부분의, 내가 봐도 이상하게 그려진 곳을 고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