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ght 124, 5000ft로 상승하세요."

 "라져, Flight 124."

 늘 하던 교신. 늘 잡던 조정간. 모든 것이 늘 이루어졌다. 존은 잠시 생각을 버린다. 모든 비행이 늘 똑같았다. 비행기 안은 너무나 안전했고, 늘 똑같았다. 그저 늘 지루하게 똑같은 에펠탑에 불과했다.


 늘 그랬듯 프랑크푸르트로 향하기 위해 프랑스를 지나치던 시점이었다.

 "존, 오늘 일 끝나고 술 한 잔 할 거냐? 내가 살게."

 기장이 물었다.

 "아뇨, 전 술 못 합니다."

 존은 별 다른 생각을 거치지 않고 대답했다. 어차피 본인을 교신 로봇 취급하는 어른 따위는 상종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기장이 실망한 듯 대답했다.

 그 때였다. 콕핏에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가득 찼다. 기장은 당황했는지 욕을 뱉었다.

 "씨발, 뭐야?"

 "메인 데크 뒷쪽에 화재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화재 경보기가 울려댔다. 잠시 정적이 있다가, 존이 교신을 시도한다.

 "MAYDAY MAYDAY MAYDAY Flight 124, 메인 데크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비상 선언합니다. 가능한 한 빨리 착륙해야 합니다."

 "Flight 124 비상 선언하셨습니다. 25000ft까지 하강하고, 고도 유지가 가능하면 유지하십시오."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두 조종사가 산소 마스크를 착용한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사투가 시작되었다.

 

 산소 마스크로 인해 소통이 어려워졌다.

 "들리십니까?"

 "잘 안 들려."

 "제기랄..."

 호흡을 가다듬는다.

 "파리, Flight 124입니다."

 "Flight 124, 말씀하세요."

 "르부르제에 비상 착륙해야 할 것 같습니다."

 "Flight 124, 알겠습니다. 060 방향으로 좌선회가 가능하다면 좌선회하십시오."

 "파리, 다시 말해주십시오.:

 "Flight 124, 060 방향으로 좌선회가 가능하다면 좌선회하십시오."

 "Flight 124, 라져."

 좌선회까지는 성공했지만, 기체가 폭발할 지 유압 계통이 망가질 지 가스가 콕핏으로 유입될 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기장이 말했다.

 "제기랄, 산소가 공급이 안 돼. 그냥 벗어야겠어."

 "괜찮으십니까?"

 "벗어도 되겠지 뭐."

 "예... 알겠습니다."

 "Flight 124, 10000ft까지 제한 없이 하강하십시오."

 "Flight 124, 라져."

 그 때였다. 조종실로 가스가 들어온다. UPS 6편의 일이 있었음에도 회사에는 콕핏에 가스가 차있을 때의 매뉴얼을 써놓지 않았다. 존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계기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계기비행 뿐이었다. 산소 마스크를 벗었던 기장은 잠시 후 실신한다.

 "파리. 콕핏에 가스가 유입되고 있습니다. 계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관제사는 교신을 듣고 놀라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교신 밖에 없었다.

 "Flight 124, 알겠습니다."

 "파리, 우리의 고도를 알려주십시오."

 "Flight 124, 현재 고도 13000ft입니다."

 이제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