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월 31일 20:00 GMT, 러시아 유고마셉스코예


 러시아 공화국, 유고마셉스코예. 시베리아 서부의 하늘 가득히 별이 빛나는 청명한 밤, 그들은 말없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이슬람교도지만 말소리만으로는 그들의 출신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리더인 아부 이브라힘을 비롯해 그들은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억양이 섞인듯 한 기묘한 악센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시작이야, 형제들.“


 아부 이브라힘은 그의 옆에 있던 키큰 친구에게 AK47과 탄띠를 건넸다. 이브라힘-그로서는 그의 종교와 관련된 지극히 불행한 일로-대여섯 해 전에 청색 모자를 벗게 된 전직 내무부(NVD) 상위였다. 그 뒤로 그는 한랭 지대에 있는 이 거대한 시설에서 등유 탱크의 급유 밸브를 수리하는 일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그 무기를 잠깐 들어올려 탄환이 장전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안전장치를 벗겼다.  그리고 탄띠를 어깨에 걸치고 총검을 장착한 다음 자기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천국이 기다리고 있군.“


 25km에 걸쳐 탱크와 파이프가 뻗어 있고, 유정 꼭대기에서 솟아오르는 석유 가스의 불길로 가득 찬 이곳에서는 항공기용 케로신과 휘발유, 디젤 연료, 벤젠, 대륙간탄도미사일용 사산화질소, 여러가지 종류의 윤활유 기타 위험천만한 발화물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당연히 이곳은 대조국전쟁 이후 40년 동안 철저한 보안조처가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에서의 형식적, 관료주의적인 다른 절차와 마찬가지로 보안조처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골치아프게 생각할 뿐이었다. 3층짜리 현대식 건물인 통제실의 나이 지긋한 경비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차가운 땅의 어두운 밤, 열기조차 느낄 수 없는 시설 한쪽의 초소에 혼자 남겨진 그를 위로해 줄 것은 술뿐이었다.


"이봐, 자네 무슨 일인가? 오늘이 비번 아니었나?“


"오늘 오후에 밸브가 하나 고장났지만 수리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퇴근했기 때문에...... 등유 8번의 보조 급유 밸브입니다. 루트를 바꾸지 않으면 내일 전혀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어떤 곤욕을 치를지 잘 아시잖아요."


"그도 그렇겠군. 내가 문을 열테니 물러나 있어."


 그리고 늙은 경비원은 통행증을 달라는 듯 히죽이며 손을 내밀었다. 이브라힘은 통행증을 건네다가 떨구었다. 경비원이 그것을 주우려고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사나이가 느낀 마지막 물건은 이브라힘의 권총이었다. 두개골에 냉혹한 둥근 구멍이 생기고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죽었다.


 이브라힘과 그 무리는 연회에 초청받은 듯이 천천히 방을 가로지르며 칼라시니코프로 당직 엔지니어들을 교묘하게 한 방씩 먹이고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테러리스트들이 한 사람씩 사살하며 그들을 불쌍한 양떼처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엔지니어가 긴급전화기를 들고 KGB 보안대를 부르려 했지만 역시 세 발의 탄환을 가슴에 맞고는 쓰러졌다.


 이브라힘은 통제실의 마스터 컴퓨터로 다가가 신속히 16개의 컨트롤 밸브를 닫고 다른 10개를 열었다. 순식간에 수백만 리터의 휘발유가 흐르는 방향을 바꾸어 밸브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되자 점화장치도 필요가 없었다. 적재장에서 빠져나오던 트럭이 철철 흐르는 휘발유에 미끄러져 전도되었던 것이다. 단 하나의 불꽃으로도 충분했다.


 한편 가까운 유전에서 오는 메인 파이프라인은 직경이 2미터나 되며 몇 개의 지선이 모든 유정으로 통하고 있었다. 이들 파이프의 내부에 흐르는 석유는 유전의 펌핑 스테이션으로부터 계속해서 공급되고 있었다. 이브라힘의 명령으로 밸브가 개폐되었다. 10여 군데에서 파이프라인이 터지고 컴퓨터의 명령으로 펌프가 계속 작동했다.


 흘러나온 경질 원유가 유전지대로 흘러들고 겨울 바람을 맞아 맹렬한 기세로 불길이 확대되었다. 석유 파이프라인과 가스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는 오비 강에서도 또 다른 화재가 발생했다. 정유소와 화학 공장의 거대한 탱크에서는 엄청난 양의 발화물질이 슬러지와 섞인 채 터져 나오고 있었고, 곧 불이 그쪽으로 옮겨붙으면 전례없는 규모의 재해가 발생할 것이었다.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대되었다. 어느새 그들 주위에서는 모든 것이 불에 휩싸인 듯했다. 이제 전 세계가 진짜로 불타오를 것이다.


"알라후 아크바르!"



1985년 1월 31일 21:30 GMT, 버지니아 주 랭글리


"놀랍군!"


라이언 상사는 중얼거렸다. 


 정유시설의 화재는 미국 최대의 우주자산으로 인도양 상공 3만 7천km 궤도에 떠있는 전략조기경보위성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비상 보안조치를 요구하는 신호가 미 공군 부대로 보내졌다.


위성 제어기지의 선임 당직 장교는 공군 대령이었다. 그는 선임 기사 쪽을 돌아보았다.


"정밀 영상을 비춰."


"네."


"저건 정유시설의 화재입니다. 그야말로 굉장하군요! 대령님, 이제 20분 후에는 KH-9 빅버드가 통과하며 그 통과 궤적 차는 120 킬로미터도 채 안 됩니다."


"그런가.“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스크린을 계속 응시하며 열원이 정지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콜로라도 주 사이언 마운틴의 NORAD로 통하는 전화기를 들었다.


"NORAD 사령관에게 긴급 연락사항이 있음.“


"잠깐 기다리십시오."


최초의 음성이 말했다.


"NORAD 사령관이야.“


두번째 목소리,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최고 책임자의 목소리였다.


"위성제어기지 책임자인 조나단 포레스트 대령입니다. CIA의 연락을 받아 조기경보위성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북위 60도 50분, 동경 76도 40분에 방대한 열 에너지 발생이 보입니다. 장소는 소련 최대의 정유시설인 투멘-65로 추정됩니다. 열원은 이동하지 않습니다. 반복합니다. 이동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20분 후에 KH-9 위성이 열원 근처를 통과할 예정입니다. 저의 사전평가로는 이 열원은 유전의 대화재라고 생각합니다, 장군님."


"그쪽에서 우리들 위성에 레이저 광선을 비추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 조기경보 위성을 무력화시키거나 하는." 사령관이 물었다. 소련이 위성을 사용하여 혼란을 꾀할 가능성은 항상 있었다.


"있을 수 없습니다. 광원은 적외선과 모든 가시 파장역에 걸쳐 있으며, 레이저는 아닙니다. 반복합니다, 레이저는 아닙니다. 몇 분 후에 좀 더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지상에서 발생한 대화재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습니다."


 30분 후에 그 사실이 확실해졌다. KH-9 정찰위성이 지상 가장 근접한 곳까지 다가가 탑재된 8대의 텔레비전 카메라를 모두 사용하여 대혼란의 모습을 잡았다. 화재는 이미 정유 관련시설의 절반과 부근의 유전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터진 파이프라인으로부터 흘러나온 원유가 오비 강으로 흘러들어 강 전체가 불타고 있었다. 


 시속 40노트의 바람으로 불길이 급속히 옮겨지며 화재가 확대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시광선에 의지하면 연기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적외선 센서는 연기를 관통하여 많은 열원을 포착하고 있었다. 지상에서 타오르는 것이 방대한 양의 석유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포레스트의 부하인 하사관은 텍사스 동부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 유전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그 석유기지의 주간 사진을 조정하고 비주얼 디스플레이와 비교하며 정유시설의 어떤 부분이 불타고 있는지 확인했다.


"엄청납니다, 대령님."


하사관은 무겁게 고개를 흔들고 전문가다운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정유시설은...... 없어졌습니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확대될 것입니다. 이제는 방법이 없습니다. 정유소는 완전히 소실되고 3일간 또는 4일간...... 어쩌면 1주일 정도 불탈지도 모릅니다. 진화할 방법이 나오지 않으면 유전도 소실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 통과하는 지역은 전역으로 불길이 확대되어 있고, 유정으로부터 불타는 석유가 분출하고 있을 겁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유정 화재의 소화 전문가라도 이런 일은 맡고 싶지 않을 겁니다."


"정유시설이 완전히 타 버린 건가? 기가 막히군......"


포레스트는 빅 버드가 찍은 테이프의 재생화면을 응시했다.


"이건 저쪽의 최신, 최대의 사건이야. 불탄 정유시설을 다시 세우기까지 석유 생산은 엄청나게 줄어들겠군. 그 화재를 끈 다음 최고 소비에트는 연료 할당을 크게 바꾸지 않을 수 없겠어. 한 가지 분명한 일이 있지. 소련 국민은 상당히 불편한 꼴을 당할 거야."


이 분석은 다음날 CIA에 의해, 그 다음날에는 영국의 SIS와 프랑스 대외안보총국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들은 모두 잘못 짚고 있었다.



소비에트 화재

러시아의 유고마셉스코예에서 대화재.

송고 01/ 31_06:15


//윌리엄 블레이크//

AP 국방전문기자


워싱턴발(AP)


워싱턴의 군 및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1984년의 멕시코 시티 재해, 1947년의 텍사스 시티 화재 이후 최대의 중대한 유정 화재'가 오늘 러시아 중부의 어둠을 꿰뚫었다.


 화재는 미국의 '국가적인 기술적 수단'으로 탐지되었다고 하는데, 이 용어는 통상 CIA가 운용하는 정찰위성을 의미한다. CIA는 이 사태에 관한 코멘트를 거부했다.


 국방성 소식통은 화재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를 동요시킬 정도로 대단했다고 말하여 이 보고를 뒷받침했다. 이 사령부는 최초에는 그 화재가 합중국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 또는 레이저 또는 다른 미사일로 미국의 조기경보 위성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고 우려했었지만 핵 경보가 발령됐던 적은 없으며, 경계상태는 30분만에 마무리되었다고 밝혔다.


소련의 타스 통신으로부터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련은 이런 사건을 신속히 보도하는 일은 없다.


 미국의 고위 소식통이 두 가지 역사적인 산업재해를 참고로 제시한 것은 이 대화재에 의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국방관계 소식통은 민간인의 피해 가능성에 대해 발언을 삼가고 있다. 유고마셉스코예 시는 석유 콤비나트 가장자리에 있다.


 미국 석유협회에 따르면 유고마셉스코예 유전의 생산량은 소련의 원유 생산 전체의 약 31.3퍼센트를 차지하며 인접해 있는 새로 건설된 정유시설은 전체 석유제품 가운데 거의 17.3퍼센트를 생산하고 있었다. 석유협회 대변인 도널드 에반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로서 다행한 일은 지하의 석유는 여간해서 불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불이 꺼지는 데는 2, 3일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정유시설의 피해 범위에 따라서 지하의 석유에 손실이 따를 수도 있지만, 원래 정유시설의 재해란 대부분 상당한 규모를 갖게 마련입니다." 


이어,


"그러나 소련에는 그 구멍을 메울 만큼 충분한 잉여 정유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모스크바의 콤비나트에서 추가 작업을 한다면...... 기후 또는 어떤 다른 것에 의해서인지 모릅니다. 알래스카 유전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여 신중한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보다, 어쨌든 정유시설은 화재의 잠재적 디즈니랜드입니다. 주의깊고 숙련된 정유시설 노동자들은 쉽게 보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소련 석유산업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고 가운데 가장 새로운 것이다. 지난해 가을에도 최고 소비에트에서는 시베리아 동부의 2개 유전에서의 생산목표가 '당초의 희망을 완전히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표면적으로 온건한 이런 표현은 서방측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제 고인이 된 말체프 전 석유산업장관의 정책에 대한 맹렬한 비난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후임 장관인 알렉세이 밀러는 전직 레닌그라드 당 제1서기이며 소련공산당의 실력자인 것 같다. 엔지니어링과 당무의 경험을 지닌 테크노크라트로서 석유산업의 재편성이라는 밀러의 업무는 몇 년이 걸릴 과제로 생각된다.



[극지의 폭풍]

1부

1화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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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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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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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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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냥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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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화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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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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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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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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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이트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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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붉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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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라인의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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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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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사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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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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