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4화




"아직이다!!"

"하아아압!!"


악마의 굵은 목소리와 소녀의 기합소리가 서로 교차한다. 칼과 손톱이 부딪힐 때마다 폭음과 굉풍이 주위를 뒤흔든다. 나처럼 특정 형체를 이루게 하지 않는, 그저 대충 휘두르는 검을 따라 움직이는 바람의 위력이 어마무시하다. 와우. 내가 낸 피해량이 그냥 묻혀 보이는데? 


'무게에 의지하지 않고 있어. 대검의 무게 자체는 별로 안나가는 건가? 그래도 상당한 쾌검이네.'


일단 내 목숨의 위협이 사라지자 자연스레 기술을 분석하게 된다. 맞으면 뼈도 못추릴 위력들이 오가서 별 도움은 안되겠지만. 그 자랑스럽다던 자신의 손톱이 상대의 검에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악마가 다시금 물러서며 손에서 마법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쏘아지는 번개 구슬.




"레이나."

"문제없죠!"


번개 구슬은 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레이나'의 대응이 한층 더 빨랐다. 그녀는 검을 공중에서 돌려 바닥에 꽂았고, 그 자리에서 반투명한 성벽이 앞에 구현되었다. 자그마한 성벽에 공성추마냥 구슬들이 부딫혀 폭발했지만, 그 이상의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아, 그렇군... 내가 뒤에 있으니까 일부러 써준 건가...


"마법을..."

"맞아. 저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전투법이지."

"네...?"

"처음 보는 마법인데도 별로 놀라지 않네, 너는?"

"..."




번개 구슬을 막은 직후에 검사는 폭발을 뚫고 순식간에 달려들었다------지금까지의 수배가 넘는 속도로 말이다. 상대 악마는 엉겁결에 긴 손톱으로 방어하려 했지만, 그녀는 그 손톱 사이로 칼을 찔러넣었고, 악마의 몸통을 관통시켜 그대로 옆으로 베어버렸다. 


"크...아악...!"

"악마와 드래곤을 멸하는 성검. 너에게는 치명상일거다."


아무리 우락부락한 모습이라고 해도 지성체일 터인데, 소녀는 너무 무덤덤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도 냉기가 풀풀 날릴거다. 반대로 악마는 악의에 가득찬 눈으로, 


"저... 녀석만 아니었...어도..."


...악의에 가득찬 눈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사라졌다. 검은 가루로 부서져내려 그 가루조차 허공에 녹아든 것이다. 바람이 불어왔지만 흩날리는 잔해따위는 없었다.




[땡그랑!]


"음. 마석 확보. 광택이 좋네."


자리에 남은 것은, 짙은 보랏빛의 보석 하나였다. 회장은 그것을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악마의 몸 속에서 떨어져나온 보석같은 돌을, 마석이라고 하나 보다. 


악마의 부하들을 퇴치하고, 악마를 퇴치하고, 전리품으로 마석을 수거해서 감정. 이것이 일상이라는 듯, 회장은 자연스러운 행동과 말투를 보여주고는 아직도 엉거주춤 앉아있던 나에게 손을 뻗었다. 

 

"이건 무슨..."

"저 녀석은 악마, 이계에서 온 종족이야. 하급 악마지만 평범한 사람에게는 재앙이지. 운이 좋았구나."

"저런 걸 만난 시점에서, 운이 좋은걸까요..."

"후훗."




그녀는 내 말이 옳다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손을 뻗어------ 소매에서 수많은 박쥐들을 불러냈다. 아니, 박쥐가... 맞긴 한가? 박쥐 모양의 슬라임 같은 건가? 보통 박쥐가 몇마리 뭉쳤다고 커다래지거나, 몸을 분리해 접착제처럼 돌과 돌을 붙이거나 하지는 않잖아?


"이, 이건...?"

"놀라지 마. 이건 사역마라고 해. 기본적으로 '마'를 뭉쳐서 생겨난 이런 하급 마물들은 물리적인 전투력은 약하지만 굉장히 편리하지."

"아... 아?"

"하지만, 약하다고 해도 뭉치면 어느정도 구속력은 있어."//"...엑?"


그녀는 말을 잇다가 뜬금없이 나를 가리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 팔다리에 박쥐들이 드글드글하게 붙어있다! 가까이서 보니 그냥 검은 솜털에 날개가 달린 것 같네------라고 감탄할 때가 아닌데...! 이거 또 기억 지워지는 패턴 아냐!?




"그럼."

"윽...! 몸이..."


장난치듯이 손가락을 들어올려, 빙글빙글 돌리면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몸을 비틀어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아... 좀...!  으엑!


[쿠당!] 무리하게 팔다리를 움직이려 했더니 넘어졌다. 덕분에 박쥐 몇마리가 찌그러지면서 탈출할 수는 있었다. 으아... 팔꿈치 맞아서 디게 아퍼... 


"어머, 어제 일을 기억하는 모양이네?"

'드, 들켰다...'


헐! 이거 어제 일까지 기억 제거당하는 거 아냐...!? 


"아, 그, 그게..."

"자아, 질문이야. 나의 이름은?"

"...지은...선배."


그녀가 갑자기 훅 들어와서,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학생회장. 이름은 지은. 관심이 없어서 성은 나도 모른다. 내 대답을 듣고, 회장은 팔짱을 끼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틈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면서 스리슬쩍 거리를 벌렸다------만.  




툭. 등 뒤에서 묵직한 감촉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레이나씨. 어느샌가 내 뒤에 서서 검갑으로 내 등을 쿡 찌른 거였다. 


'으와. 앞뒤로 포위당했네.'


나는 한걸음 물러섰다. 회장이 앞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레이나씨도 한걸음 내딛어 나는 다시 물러섰다. ...이걸 세번 반복하니 정말 갈 곳이 없어졌다.


"저기... 회장님?"  

"왜?"

"또... 기억을 지우실 건가요...?"


모르고 맞는 것보다는 알고 맞는게 후속 조치가 더 쉽다...라는게 내 마지막 반항이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나보다. 회장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배를 잡고 웃었다. 어린양처럼 벌벌 떨면서 하는 소심한 반항이 그리 웃긴가.





그렇게 잠깐 웃고, 회장은 손으로 새어나온 눈물을 훔쳐 그대로 내게 뻗었다. 


"귀엽네 세열이는." 

"...그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에인. 하지만 밖에서는 서지은, 지은이라고 불러줘."

"회, 회장이라고 부를게요."


너무 다른세계에 있는 사람이라 학교에서 이 사람을 부를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차마 선배를 지은씨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리고 저 아이는 레이나. 바깥 이름은 이예린."

"이름 참 단순하네요..." 


난 무심코 말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촤악하는 검 뽑는 소리가 들렸다. 태클 대신이냐!? 두번 딴지걸었다가는 목이 몸하고 작별인사하겠네!? 나는 황급히 사과했고, 덕분에 다시 검은 넣어졌는데... 




"이렇게 대하는걸 보니, 너는 정말로 기억을 잃지 않았나보네."

"잃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잃었다가 얻었다고 해야할..."//"잠시, 따라와줄 수 있어?" 


이, 이런 마이페이스...! 것보다 이거 협박이잖수!


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네..."


...그러나 몸은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