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팔력은 악마를 소환하거나 악마의 힘을 빌리는 주문이다. 그래서 웬만한 제구력과 제삼력으로는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소환 자체가 불가능하다. 소환 실패로 인한 리스크는 없지만 소환 시에는 큰 리스크가 따른다.'

악마소환술. 추강찬은 그것을 보고 섬뜩해졌다. 만약 제팔력이 세상에 공개되었으면 김초은이나 전청아처럼 야망있는 자들은 벌써부터 악용했을 것이었다.
추강찬은 다음 문단을 읽었다. 문단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한 문장만 있을 뿐이었다.

'리베다무카 사무한 소로모이스유에'

추강찬이 보고 있는 페이지에 신비스럽고 훌륭한 마법주문이 적혀있었다. 마법주문의 규칙 상 첫번째 단어인 리베다무카는 제팔력을 시작한다는 말일 것이고, 두번째 단어는 동사, 세번째 단어는 주어일 것이었다.

추강찬은 다음 문단을 읽어 이 주문이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사무한이라는 단어는 '소환하다'라는 동사였고, 소로모이스유에는 악마의 코드네임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뭐야, 쓸데없네."
추강찬이 제팔력에 대해서는 별 소득 없이 기밀을 위해 개요와 주문과 설명의 오직 3문단밖에 없었던 책을 덮었다. 책에 나온 제팔력 마법은 추강찬이 쓸 수 없었고 리스크도 컸으며 쓸모도 없었다. 제영력으로 분석하면 다른 주문이 나오긴 할 텐데 추강찬은 제삼력이 평균 전후밖에 되지 않아 그럴 가망은 없었다.
추강찬이 기숙사에 가져갈 캐리어에 책을 넣었다. 주연재랑 같이 본다면 뭔가 더 좋은 해결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

추강찬이 서초지부에 도착했다. 패자부활전을 치루었던 곳이라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대기실은 6층이었지만 187명의 사람들로 북적했던 그 때와 비교하자면 확실히 한산했다. 그러나 제영력부터 제구력까지 모든 학생대회들의 4강 진출자가 한꺼번에 오기 때문에 32명이 모여있었다. 덕분에 패자부활전만큼은 아니었지만 6층의 방들 중 8개 방이 대기실 용도로 사용되었다.

추강찬은 전국학생제육력대회 대기실로 들어갔다. 추강찬은 거기서 맨 뒷줄에 앉아 기세등등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보기 불편한 얼굴을 마주했다. 김초은이었다.
김초은과 추강찬의 눈이 마주치면서 묘한 신경전이 감돌았다. 분위기는 싸늘해졌고 당장이라도 언쟁이 오갈 것 같았으나 둘 다 그러지는 않았다. 옆에 조정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강찬은 여기서 말을 꺼내면 바로 열렬한 두통이 시작됨을 알고 있었고 김초은은 여기서 말을 꺼내면 바로 계획이 틀어질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추강찬은 묵언의 전쟁 끝에 한쪽에 자리잡아 앉았다. 추강찬은 한숨을 쉬면서 그의 캐리어를 힐끔거렸다. 추강찬은 캐리어 안에 든 책을 생각했다. 주연재랑 상의하면 뭔가 타개책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졌다.

얼마 뒤 주연재가 왔고 추강찬과 주연재는 언제나처럼 대화 삼매경을 거쳤다. 평소라면 김초은에 대해 이야기했겠지만 옆에는 그들의 적수인 김초은과, 아무 상관 없어보이는 조정수가 있었다. 그 때문에 대화가 샐 위험이 있어서 그들은 지금까지의 고생담과 무용담과 쓸데없는 잡담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같은 이유로 추강찬은 헌책방에서 공수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회의 시작은 여느 때와 같이 한순간이었다. 이번에도 세트장은 8층이었다. 모두들 세트장의 규모는 패자부활전 때랑 비슷하게 웅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