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녀석이 행거 밑으로 들어간 다음, 어제 박스에 넣었을 때도 그러하였듯이 이 녀석의 존재감은 한도 끝도 없이 희박해져 있었다. 어제까지 거대한 위용을 뽐내던 말하는 고양이라는 희소성은 침묵이라는 벽 아래에선 티끌과도 같았다. 리돌은 TV를 보다 마치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어간 상태였고, 나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까 간헐적으로 들리던 신음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나는 우리 집에 들어왔던 고양이의 존재를 또 한번 잊어버렸다. 책장을 덮고, 기지개를 펴고, 불을 끄고 나서야 나비의 존재는 다시 한 번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오늘 하루 종일 그러했듯, 엄청난 비명소리로.


 "끄지 마아아아!!!"


 "어이구, 깜짝이야."


 나는 마치 아저씨와 같은 감탄사와 함께, 반사적으로 불을 키고서는 나비가 있던 행거 밑을 쳐다보았다. 아, 맞다. 이 녀석 아직 이 안에 있었지? 나비는 아직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듯 하다. 모습이 보이지는 않으니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마치 고장난 녹음기마냥 '불을 끄면 안돼' 만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아직도 안 나갔었어? 


 "불 끄지 말라고?"


 "어두, 우면, 그 여자가 나타날 거야. 나타날 거야."


 어이가 없네? 거의 이 정도면 전쟁터 병사가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동급이다. 예전에 보았던 베트남 전쟁을 다뤘던 우리나라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 녀석이 나가야 내가 잘 수 있다. 나는 나비 일병에게 넌지시 퇴거를 요청했다.


 "야, 안 나가냐? 잘 시간이다."


 "아, 안돼!"


 "왜?"


 "나가면 그, 그 여자가 있을 거야. 문 밖에 그 여자가 날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다고오오오."


 무슨 동굴아저씨냐? 공포에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덕분에 늘어진 테이프처럼 말 끝이 주욱 늘어지고 있다. ...분명히 목소리 자체는 걱정말라며 앞장설 것 같은 남자중의 남자의 목소리인데 말이지. 어쨌든 이 녀석이 지금 내 방 안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내 심기를 계속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어제부터의 대화를 곱씹어 보았을 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다. 나는 더 말을 하지 않고, 내 옷장 밑으로 손을 넣어 두려움에 떠는 새끼고양이를 강제로 꺼냈다. 그리고서는, 그대로 대문을 열고 문 밖에 던졌다. 나비는 내 손에 실려 나오는 그 순간에는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던 듯하다. 잠시간의 정적이 지난 후에, 강제로 퇴출된 새끼고양이는 그 작은 발로 문을 계속해서 두들기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아, 안 돼! 열어줘! 열어달라고!"


 "안 되긴 뭐가 안 돼, 임마! 가족도 있다면서! 집에 가서 발닦고 자!"


 고양이도 발을 닦는다면 말이지. 그런데 의외로, 나비가 난리를 피운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나는 장기전을 할 각오로, 나비를 집어 던지자 마자 잡동사니를 담아 둔 상자에서 귀마개를 꺼내러 갔다. 그런데 귀마개를 꺼내어 귀에 장착을 하려고 한 순간 나비의 애걸하는 소리가 멈추었고, 문을 두들기지도 않았다. 뭐야, 이 녀석. 생각보다 포기가 빠른데? 

 아무리 소리가 멈추었다지만, 썩 감이 좋지는 않았다. 만일 내가 이 녀석이 진짜 갔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을 열게 된다면, 마치 공포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급작스레 내 얼굴로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잠을 청했다. 



 "...야."


 "왜 부릅니까?"


 "무엇이냐, 인간이여."


 다음 날, 언제나 즐거운, 아니, 정정한다. 즐거워야 할 아침 식사 시간이다. 근데 나는 전혀 즐겁지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밥상 위에는 두 명과 한 마리가 있다. 분명히 어제 내쫓듯이 우리 집에서 나간 그 한 마리가 내 눈 앞에서, 버젓이 같이 겸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주군인 리돌은, 말만 대답을 하고 아무래도 좋다는 양 어제 성희 씨가 갖고 온 소고기 와인찜에 포크를 찔러대고 있다. 그래, 니 눈에는 이게 당연하다 이거지? 넌 일단 내비 두고. 문제는 저 고양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비를 지그시 노려 보았고, 이 녀석은 어제의 두려움에 찬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뻔히 나를 마주보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아무 말 없이 사료에 입을 대고 있다. 아무래도 어제 리돌이 받아온 검은 봉투는 이 녀석의 사료였던 모양이다.

 어째서? 어제 그렇게 벌벌 떨던 놈이 지금은 왜? 어떻게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거지? 어째서? 왜?


 “왜?”


 ‘어제 너가 그렇게 경기를 일으켰으니까, 캐롤라인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지금 너가 지금 너무나 변고 없이 있어서 내 어이가 없어진 것 같으니 그 이유를 설명해라’ 라는 취지의 문장을 급한 마음에 한도 끝도 없이 축약하다 보니 그냥 딱 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누가 들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단어 하나에, 나비도, 심지어 리돌조차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는 이 밥상 위에 앉은 세 생명체가 모두 어이가 없어졌다.


 “무슨 말인가, 인간.”


 “그러니까, 그, 너, 지금 괜찮아?”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것인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군.”


 나비는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고양이가 혀도 찰 수 있어?


 “너, 어제 그렇게 벌벌 떨면서 나갔잖아?”


 “내가 떨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 몸은 긍지 높은 고양이. 공포라는 것은 나에게서 배제된 감정일 뿐이다.”


 “그렇습니까.”


 도대체 왜 이 단락에서 리돌이 고개를 끄덕거리는지는 모르겠다. 너도 어제 봤던 걸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거냐? 응? 나는 이 녀석이 잊고 있던 진실을 들춰 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위증을 방지하기 위해서.


 “너 어저께 그, 갈색머리 아줌마가 오니까 벌벌 떨다가 기절하고, 저기 옷장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내가 들고 쫓아냈잖아. 기억 안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인간. 이 몸이 어제 이 집에서 보았던 사람은 그 금발의 마음이 아리따운 아가씨 외에는 없다.”


 아아, 그건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으면 자기방어를 위해서 기억이 지워진다더니만. 내 얼굴 위로 연민의 표정이 잠시 떠올랐다.

 “그렇게 진짜로 기억합니까, 나비?”


 여기까지 듣고 나니, 리돌도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리돌은 입안 한 가득 음식을 욱여넣고서 우물우물 쩝쩝거리며 말을 하고 있지만, 번역기의 도움으로 깔끔한 발음을 자랑하며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일단 이 기억상실 고양이의 일이 더 중하니, 식사예절에 관한 훈계는 나중으로 미뤄 두겠다.


 “그렇습니다. 주군. 다른 문제라도 있는지요.”


 “없습니다.”


 결론 한번 깔끔해서 좋다. 그거면 된 거냐, 진짜로?!


 “그대의 그 얼굴, 참으로 우스워 보이는군.”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표정으로 드러났나 보다. 나비는 뭐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 조용히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아까와 같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때, 갑자기 깨달았다.


 나비도 리돌과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내 일상에 녹아들었다는 사실을.


 그래, 뭐 이미 하나가 있는데,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서 달라질게...  많나? 그런가?


 모르겠다. 이젠. 너무나도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인사를 하며 내 옆을 지나간다. 이제는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조용히 식사에 동참했다. 고요히, 오로지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방 안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