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참으로 마음씨가 아름다운 여성분을 알고 있구나, 인간이여."


 "그렇지. 저렇게 마음도 예쁘고 외모도 예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나의 대답에 나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인간들은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외모를 아름답다고 하는가?" 


 "아니, 뭐... 음. 관두자."


 인간의 기준에 아름다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하려다,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도대체 고양이는 어떤 부분에서 아름답다 느끼는지에 대해서, 도저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녀석에게 다시 물어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길게 설명해야 되는 부분인가 싶다. 나비는 잠시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가, 리돌을 한 번 쳐다보고서는 내게 다시 질문하였다.


 "그러면 인간이여, 그대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이 몸의 주군도 아름다우신 편인가?"


 "그럼."


 갑자기 옆에서 간헐천 터지는 소리가 난다. 리돌이 아까 성희 씨를 대접하려고 한 사람당 하나씩 두었던 핫초코를 마시다가, 내 즉답을 듣고 뿜어버린 모양이다. 왜 놀래? 예쁜 건 예쁜거지. 리돌은 무어라 이야기하려는 듯 허둥대다가, 자신이 식탁 위에 저지른 짓을 확인하고서는 휴지를 찾아 식탁 위를 닦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경황이 없는 모양새로. 그 모습을 본 나비는 리돌에게 달려들 듯이 뛰어가더니, 휴지 두루마리를 낚아채었다.


 "그만 두십시오! 주군! 이런 건 소인이 할 일입니다!"


 나비는 그렇게 말하면서 두루마리를 둘둘둘둘 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풀기만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동작에 심취한 듯이, 계속해서 휴지를 풀어 식탁 위에 늘어트리고 있었다. 니가 할 일이 청소가 아니고 그거냐, 엉?! 나는 노호성을 질러 둘 다 식탁 옆에서 내쫓고서는 직접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앓느니 죽지, 내가. 

 


 그리고 그 날 저녁에는 캐롤라인이 찾아왔다. 그리고 리돌의 품에 안겨 있는 나비를 한 번 흘끗 보고서는, 표정에 별다른 변화도 주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는 고양이입니까. 민재 씨는 역시 무언가를 기르는 취미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저기요. 저 아가씨는 당신이 우리 집에 맡겨 놓은 거 아니에요. 그리고, 왜 사람을 자꾸 애완동물의 영역에 두려고 하십니까?"


 "어차피 리돌 양은 한국 영토 내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생명체의 의식주에 돈을 대주는 사람은 두 종류밖에 없지요. 부모님, 혹은 반려동물의 주인."


 ...갑자기 할말이 콱 막힌다. 틀린 말은 아닌데... 내가 리돌이 아닌데도 기분이 무지하게 나빠지는 것 같다. 진짜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나저나, 나비의 반응이 의외다. 아까 성희 씨를 보고서는 한 달음에 뛰어가서 엉기던 녀석이, 지금은 리돌의 품 안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보다, 지금 캐롤라인을 쳐다보는 이 녀석의 눈빛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마치 사자를 앞에 둔 것과 같은.

 그런 나비의 상태를 가장 먼저 포착해 낸 것은 리돌이었다. 나와 캐롤라인이 리돌의 생활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리돌은 갑자기 화들짝 놀란 듯 나비에서 손을 떼었다.


 "나비, 왜 머리가 너무 빡빡해졌습니까?"


 털이 설 정도로 긴장한건가? 캐롤라인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웠다. 웃음 본연의 목적보다는, 다른 의미를 많이 내포한 듯한 그런 미소를. 


 "리돌, 잠시 나비를 건네 주지 않겠습니까?"


 "어째서죠?"


 "이유라면... 그냥 잠깐 쓰다듬고 싶어서 라고 해두죠."


  나비한테는 지금 저 말이 '쓰다듬고 싶어서' 가 아니라 '고양이탕이 허리에 좋다지' 정도로 들리는 모양이다. 건네 주는 손에 담겨 있는 작은 몸뚱아리가 바들바들 떨리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마치 난민 강제 이주처럼 보이는 전달 의식 후, 캐롤라인은 나비를 쓰다듬으면서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내 질문에 캐롤라인은 뒤를 돌아보며 짧게 대답하고는 문을 닫았다.


 "단 둘만의 시간으로 친목을 다지러 갑니다."


 여고생들이 화장실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하고 무슨 일을 하려고? ...라고 생각하자 마자, 현관문은 다시 열렸다. 무슨 친목을 다진다더니 너무 단기 속성과외잖아, 이건. 10초도 안 걸린 것 같은데? 

 캐롤라인은 딱히 변한 것 없는 표정으로 나비를 땅바닥에 내려 놓았다. 효과는 굉장했다. 나비는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걸음걸이로 리돌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서는, 약간 풀린 듯한 눈으로 리돌을 응시하더니, 마치 전기충격기에 맞은 듯이 리돌의 옆에 고꾸라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리돌은 놀란 목소리로 캐롤라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동물들에게는 동물에 맞는 훈육법이 따로 있는 법이죠. 전 그저 단순하고 쉽게 몸에 익힐 수 있는 사람과의 교감 방법을 알려 주었을 뿐입니다."


 "아니, 교감 맞아요? 어떤 방식으로 교감을 했길래 그 짧은 순간에 고양이가 저렇게 녹초가 되는 겁니까?"


 리돌의 뒤를 이은 나의 질문에 캐롤라인은 안경을 고쳐쓰며 대답하였다.


 "알고 싶습니까? 방금 이용한 방법은 사람한테도 통합니다만."


 ...왠지 이야기를 들은 후 나도 저 꼬라지가 날 것 같아서 더 물어보지 못했다.



  캐롤라인은 별로 오래 있지 않았다.  리돌의 생활비에 대한 조정을 잠시 더 거친 후(결론적으로 리돌의 생활비는 최저임금 인상율 정도로 올라갔다), 캐롤라인은 현관 밖에서 리돌과 소위 ‘여자들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 때 잠깐, 리돌이 나비와 같은 꼴이 되는 것이 아닌지 살짝 염려했었다. 집으로 돌아온 리돌은 언제 받았는지 모를 검은 봉투를 들고 자신의 방 안에 넣어 두었고, 그 즉시 캐롤라인은 짧은 인사와 함께 집에서 나갔다.

  나비가 깨어난 것은 캐롤라인이 가고서 대략 일 분쯤 지난 후였다. 그 사실을 알아챈 것은 리돌과 나비의 비명소리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괴성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분명히 내가 돌아볼 때 쯤이면 일말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일텐데도, 나비는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일어나자 마자 그 자리에서 서전트 점프를 시전한 모양이다.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나비는 엄청난 속도로 옷행거 밑으로 기어들어가더니, 벌벌 떠는 목소리로 리돌에게 물어보았다.


 "주, 주주주 주군, 그그, 그 여자는 가, 갔습니까?"


 "갔습니다. 나비."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비는 행거 밑에서 모습을 드러 내었다. 코끝만. 이 불쌍한 고양이는여전히 공포감이 가시지 않은 듯, 떨림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방언을 터트렸다.


 "무,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비에게 물었다.


 "야, 도대체 아까..."


 "캬아아앙!"


 말 그대로, ‘아까’라는 단어 하나에 나비는 공포에 질린 울부짖음을 뿌리며 다시 행거 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도저히 물어볼 수가 없지 싶다. 당사자에게나, 피해자에게나. 나비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우리 집을 나선 것은 나와 리돌이 잘 때 쯤이었다. 정확하게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도 못했고 집 문 밖을 제 발로 나선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