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무 보고서 -


이름 :


면허번호 : 001-0001-51349778-377


업무지 : 1우주 유인행성 1


업무소요시간 : 213시간 230[업무지의 시간 계산법 기준으로 작성할 것]


실시사항 : 전사자 계약 체결


개요 및 경과 : 해당 시간동안 총 3번 접선 시도

3번 모두 실패. 그 외 기록 없음.



이거 보여?”


적막을 깬 것은 그녀의 상사 도다라였다.


"보고서에 빈 공간이 더 많구만 그래."


그녀는 숙인 고개를 잠깐 들어 표정을 살피려 하다 금세 식겁하여 눈을 내렸다. 그녀에게는 아무리 해도 도다라의 모습이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천계와 심연 사이에 있는 수많은 우주. 그 안에는 지성을 가진 종족들이 무수히 많이 있었다. 재미있게도 지성을 가진 대부분의 종족들은 머리 부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몸통에 팔다리를 가진 일명 '사지형' 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 그녀와 같은. 하지만 예외는 언제나 있는 법이었다. 다른 우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진 지성체 종족들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그래서 현세에서 심연으로 영혼을 데려 오는 사신 교육을 할 때에는, 익숙하지 않은 외모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을 줄이는 교육이 필수로 들어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다라가 있던 제 52 우주는 사지형 종족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좋게 말해서 개성 넘치게 생긴 종족들이 많은 거고, 보통 세간에서는 그저 괴물들이 넘쳐나는 곳이라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철저한 교육의 성과로 본인 눈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지만 지성하고 본능은 별개의 문제였다. 머릿속으로는 똑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라 인식은 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 도다라는 그저 깊은 바닷속의 괴물일 뿐이었다. 그녀의 앞에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스멀거리는 촉수들과 점액이 온 몸에 빼곡이 달려 있는 연두색 구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앉아 있는지, 아니면 그저 놓여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도다라의 몸통 구체의 크기만 해도 그녀의 키를 훨씬 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중에 몇몇 개의 촉수에 눈, 입과 같은 감각기관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리 봐도 뭐가 몇 개 달려있는 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도다라는 분노로 벌벌 떨리는 몇몇 촉수들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이야기를 꺼냈다.


너도 입이 달린 종족잖아. 달린 입으로 얘기나 해 봐. 어떻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나, ?”


사무실의 창 밖에는 심연을 밝히는 끊임 없이 흘러내리는 용암이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 역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꼭 용암 탓은 아니었다. 부끄러움,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두려움.

대답이 없는 그녀를 보며 도다라는 윗부분에 달린 발성판을 울렸다.


아니, 하던 일이나 잘 하란 말이야. 전쟁 지역이면 계약 업무 중에서도 가장 쉬운 곳인 거 몰라? 세 번 그런데, 한 명도 계약해 오지 못하면 어쩌자는 거야?”


.. 사람을 상대로는 영계 치환을 한 번도 써 본적이 없어서 정확한 때를 맞추기 어려워서... 죄송합니... 꺄악!”


그녀는 사과를 하며 다시 도다라를 바라보다 질겁하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도다라는 자신의 공 같은 몸을 방의 반절 가까이 부풀리며 온 몸의 촉수를 떨었다. 화를 낼 때의 동작이었다. 책상의 길이가 꽤나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그녀의 코앞에까지 촉수가 스물거렸다. 마치 핏줄이 돋듯이 촉수 이곳저곳이 불뚝거렸다. 그녀는 이 동작을 무척이나 무서워 했다. 그리고 도다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하면 다야?!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이 곳이 건물 안만 아니라면, 흡사 맹수에게 쫓기는 듯한 모양새였다. 도다라는 벌벌 떠는 그녀의 모습에 그제서야 기분이 조금 풀어진 듯, 다시 몸을 원상태로 돌렸다. 그리고 조금 더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건넸다.


자기 말야. 자기 업무가 뭐야. 곡물 수확 아냐? 내가 전에 그 지역 관리자쪽 보고서에서도 봤는데, 그 가장 쉬운 업무인 곡물들 수확하는 것도 제대로 못할 때가 있다면서? 그런데 그것보다 상위 업무인 계약 영업은 어떻게 하려고 지원한거야? 아니, 그거보다 현장 담당자 누구야? 왜 곡물 수확하는 사람이 영혼 계약을 해?”


"... 제가 자원했어요. 그쪽 현장에서 전쟁이 장기화되서 인력이 모자란다고 해서..."


"그러니까 현장 담당자가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