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서 피가 흘렀다. 따뜻한 방울들이 입술 위에 맺혀갔다. 손에는 작은 앵두를 문댄 듯 붉은 피가 번졌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병원에 처음 다녀왔던 건 6개월 전이다. 술만 먹으면 변에서 피가 나오는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때다. 폭음 때에만 나타나던 증상이 소주 1병. 그러다 맥주 한 컵만 마셔도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단순히 염증이라고만 생각했다. 술 좀 줄이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MRI 사진을 형광판에 끼운 의사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간경화가 심한데요. 수술도 힘들 것 같고요”

간경화라.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서 봤던 사진을 떠올렸다. 검붉은 모습으로 딱딱하게 굳어져가는 간. 끓는 물에 삶으면 저런 비슷한 모양이 나올까 하고 유심히 보던 사진.

의사는 MRI 사진을 가리키며 회색으로 지저분하게 엉켜있는 부분이 괴사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거의 대부분이었다.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담담했다. 언젠가 병으로 죽을 운명임을 알고 있었다. 술 없이 외로움과 우울을 견뎌낼 수 없는 유전자. 밤마다 술에 취한 아버지를 혐오하면서 닮아가는 나 자신. 20대 중반부터 혼자서 폭음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엄마와 여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을 술로 견디려 했다. 어쩌면 술을 먹기 위한 핑계였을 지도 모른다.

 

병을 알기 전부터 자살을 해야겠다고 고민도 해봤다. 사는 게 재미없었으니까. 학교라는 온실에서 키워왔던 꿈과 자존감이 냉혹한 현실에서 모두 시들었다. 꿈을 쫓아 방황하는 이들은 실패자가 됐고, 밤낮없이 현실에 지독하게 적응한 이들은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성공한 사람은 오직 태어날 때부터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차라리 죽게 되었으니 속이 편하다.

 

어두운 방안에서 서럽게 울었다. 병원에선 무섭지 않던 죽음의 칼날이 가슴을 깊게 찔렀다. 가족들이 떠올랐다. 집안 살림만하다 사회에서 서럽게 일하는 엄마. 수천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떠안고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 없는 여동생. 내가 집에서 백수생활 할 때면 둘이 한 편이 되어 바가지를 긁던 모녀. 원수 같은 아들놈이라고 구박하면서도 나를 의지하던 이들.

내가 죽으면 잘들 지낼 수 있으려나. 알고 보면 두 여자 모두 어린애 같은데.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엄마, 예쁘장해서 주변 유혹이 많은 동생도 모두 괜찮으려나. 둘다 자기가 여우인줄 아는 토끼들이다. 내가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살아만 있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나 자신이 잘사는 것까지 바라지도 않는데.

 

나는 베트남에서 죽기로 결심했다. 살면서 해외에 나가본 적도 없었고, 아름다운 해변을 보고 싶었다. 비행기표도 저렴했다.

어느날 내가 갑자기 죽는 것보다 서서히 연락이 끊겨 행방불명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비행기 창가 좌석에 햇빛이 들어왔다. 따뜻했다. 나는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고 하늘 아래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일생이 모두 블랙코미디처럼 스쳐지나갔다. 사이비 종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내 유년시절 필름이 다시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