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작전을 벌이는 조건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망자를 최소로 할 것, 둘째는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대비할 것, 그리고 셋째는 내가 하는 일들로 인해 내가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 그 조건을 모두 맞춰서 작전을 짜느라 많은 계획들이 공중분해 되거나 수정되어져버렸다.

 

그 결과 다시 생각해봐도 작전은 창의적이면서도 간단했다. 너무 단순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시즈오카 씨, 그러니까 진짜 이게 되는 거 맞죠? 갑자기 불안해지는데..."

"이런 것들로도 충분히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시즈오카 씨가 여유 있게 말하더니 횡단보도를 지나 인도를 따라 걸었다. 신호등의 초록색 불빛은 밤거리에서 반짝반짝하면서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횡단보도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반투명한 유리로 뒤덮혀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렇다. 공중전화다.

 

"생각보다 가깝네요. 그나저나 이런 곳에 공중전화가 다 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것도 2개나 있습니다. 이것도 미래에는 기술발전에 따라 사라진 거라 저희 기준에서는 구시대적이긴 합니다만... 아, 그 가방 속에서 지갑 좀 꺼내주십시오."

시즈오카 씨가 내가 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따라 순순히 가방을 열어 지갑을 꺼냈다. 참고로 총기류 같은 무기들은 내가 오해받으면 안 되니까 모두 시즈오카 씨가 가지고 있다.

"작전이 끝날 때까지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시즈오카 씨가 지갑에서 백원짜리 동전을 꺼내 공중전화에 넣었다. 참고로 공중전화에서의 작전도 -작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애매하긴 하지만- 다 시즈오카 씨가 맡기로 했다. 나는 그냥 보조 역할이다.

 

공중전화에서 동전을 넣은 금액이 뜨자 시즈오카 씨가 버튼을 몇 개 누르더니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시즈오카 씨의 표정에 긴장이 역력했다.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시즈오카 씨가 차분히 말을 꺼냈다.

"네, 경찰서입니까? 제가 사실은 롯데타워에서 폭탄을 발견했습니다. 네. 네. 스마트폰 말입니까? 스마트폰은 지금 잃어버려서 공중전화로 걸고 있습니다. 네. 너무 급하게 나와서 위치는 까먹었는데, 아마 1층이었던 것 같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시즈오카 씨가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따라서 한숨이 나왔다. 공중전화도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거스름돈 30원을 타이밍에 딱 맞게 내뱉었다.

 

 

*

 

사실 다른 분들도 같은 일을 했다. 공중전화를 찾아다니며 가짜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분들은 그나마 사망자가 덜 나오는 -물론 이곳의 사망자가 상상을 초월해서 그렇지 그쪽도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1호선과 4호선 부분에서 폭탄을 발견했다고 가짜신고를 했다. 물론 위치 추적하면 바로 들키니까 일시적으로나마 미야자키 씨가 작전지로 뽑힌 롯데백화점에서 해킹을 해주었다.

 

조금 기다리니 진짜로 경찰들이랑 폭발물 처리반이 왔다. 그들은 사람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모든 고객들을 대피시켰다. 생각보다 일이 아주 잘 풀리고 있었다.

 

나랑 시즈오카 씨는 3번출구 근처 공터로 자리를 옮겨 그 일들을 계속 지켜보았다. 잠실역 지하상가와 롯데타워 일대는 출입이 통제되었으며 폴리스라인이 쳐졌다. 

 

시즈오카 씨가 스마트워치로 미야자키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정부 지진 10분 전인 오후 8시 37분이었다. 미야자키 씨는 시즈오카 씨로부터 2번째 작전 시작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사실 이것도 별 건 없다. 장난전화였다는 것을 밝힌 뒤 경찰들이랑 폭발물 처리반을 롯데타워 바깥으로 나가게 하면 되니까.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진까지 남은 시간은 2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진이 나면 트래픽이 몰려서 모든 통신망이 일시적으로 마비된다고 했지. 그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 전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은 어제 했고 친구는... 아, 맞다. 까먹고 있었다. 지금쯤 김주안은 뭘 하려나.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김주안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주안이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오, 빨리 받네?"

"뭐, 지금 퇴근하는 길이니까. 마침 심심했거든."

"어, 그래? 그건 그렇고 뭐 말할 거 있어서."

"뭔데? 뭐 고민같은 거 있냐? 아니면 C형 독감에 걸리기라도 했냐?"

"넌 요즘 C형 독감에 매달리더라. 약 만드는 사람 답게. 고민 같은 거는 아니고, 그냥 전화 한 번 해보고 싶어서."

"그러냐? 너도 외로웠나보구나. 그러니까 여자 좀 만나라니까."

만나고는 있다. 다른 의미로. 그것도 미래를 바꾸기 위해.

"야, 알겠다. 알겠어.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할게."

"뭔데?"

"몇 분 뒤에 의정부에서 지진 하나 일어난다. 그러니까 몸조심해라."

"아, 난 또 뭐 심각한 건 ㅈ..... 자, 잠깐만. 뭐? 네가 안드로이드에만 묻혀 살더니 드디어 머리가 가버렸구나. 아이고."

"하핫. 그런가?"

예상했던 대답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들의 미래가 더 돌긴 했지만.

"알겠다, 알겠어. 너도 건강해야 한다?"

"오케이 오케이. 끊어."

 스마트폰의 전화 창이 꺼지고 다시 키패드로 되돌아갔다. 김주안의 말이 머리 속에 남아돌았다. '너도 건강해야 한다?'. 글쎄다. 안드로이드만 안 오면 반드시 지키겠지만.

 

"전화 맞죠? 되게 신기합니다."

스마트폰을 보고 눈이 초롱초롱해진 시즈오카 씨였다.

"그리고 지금 분진마스크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30초 전입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앞을 바라보니 경찰들이 하나둘씩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짜증이 가득했다.

나는 방탄, 방검 기능이 있는 신소재 성분의 분진마스크를 끼고 시위용 헬멧같이 생긴 안전모를 쓰고 그 위에 헤드라이트를 꼈다. 둘 다 방탄 방검이고 헤드라이트는 방수 소재이다. 안전모의 모양이 뭔가 이상하지만 자원봉사자 차림으로 보일 것이다.

또, 칼같이 추운 한겨울인지라 간단한 패딩 차림을 입고 있는데 이 안에는 얇고 편하면서도 방탄, 방검 기능이 있는 생활복을 입고 있다. 이거라면 안드로이드가 공격해도 그나마 세이프였다. 그리고 그 위에 재난구조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자원봉사자 같이 보이는 옷을 입어서 자연스럽게 들어갈 예정이다.

린장 시에서 조종했던 구조용 로봇들은 지금 롯데호텔 지상 주차장에 있는 트럭에 들어가있다. 나중에 꺼내서 쓸 것이다. 물론 화제거리가 되어 뉴스에 찍혀도 상관없다. 지금은 널리 퍼질 수록 좋을 것이니까. 그리고 아직 일본 대지진도 남아있고.

 

"그나저나 EMP면 충분할 것 같은데 전자석까지 챙겨오신 걸 보니까 여간 긴장하신 게 아니신 것 같습니다."

시즈오카 씨가 긴장을 풀기 위해 농담을 툭 던졌다.

"아, 뭐 안드로이드와의 대결은 거의 초보니까 그렇죠."

"그런데 린장 시에서는 되게 고수같으셨습니다. 게다가 저희의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하셨으니까요."

"하하. 별말씀을요."

아무리 들어도 멋쩍은 말이었다.

 

"지금이 몇 시입니까?"

"오후 8시 37분. 몇 초 안 남았네요."

"자, 이제 슬슬 출발해봅시다. 안전모도 제대로 썼으니 말입니다."

시즈오카 씨가 긴장했는지 가방을 꽉 쥐고 자원봉사자로 위장해 투입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시즈오카 씨가 숫자를 세어 시간을 쟀다. 긴장했는지 일본어였다.

"五、四、三......"

그 순간, 어디선가 경보가 울렸다. 일주일 전 쯤에 최은준 씨가 준 안드로이드 탐지기였다.

신경이 예민해져있었던 시즈오카 씨가 화들짝 놀라며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 찰나 시즈오카 씨의 헬멧에 총알이 맞아 청명한 소리를 내며 튕겨져나갔다.

안드로이드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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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자, 이제 본격적으로 액션 들어갑니다. 2부의 액션은 아주 자세하고 차후 스토리에 중요해서 (3부보다 더 중요함) 잘 묘사할 수 있을 지 걱정되네요. 적어도 4화는 쏟아붇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