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잘 알고 계시는 사실 하나. 고시생들은 돈이 없다. 노력하면 언젠가 그 보상이 온다는 믿음을 갖고 이 곳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현재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다. 그저 공부하는 데 필요한 열량과, 추위를 막아줄 방 한 칸이면 된다고 그렇게들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싼 것을 선호한다. 물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간이기에, 저렴할 뿐만 아니라 가까운 것도 우선 순위에 들어간다. 그래서 전에 말했던 것 처럼, 음식점과 상점들은 매우 저렴한 편이다. 그래서 이 곳에 사는 나도 조금 그 덕을 본다. 처음에는 취업을 위한 스터디룸이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이 쪽으로 오게 되었지만, 지금은 이 곳에서 싸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메리트가 더 큰 것 같다.

 

 "민재, 너는 무엇을 먹습니까?"

 

 "모르겠다."

 

 노량진의 밤거리에 하나, 둘 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런 추적추적한 날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인파가 거리를 뒤덮고 있다. 비가 오고는 있지만, 우산을 쓸 만큼 많이 오지는 않고 있기에, 리돌에게 우산을 주고 나는 우산 없이 거리를 걸어 가고 있다.  지금 리돌은 팔짱만 끼지 않았을 뿐이지 내 옆에 딱 붙어서, 거의 애인과 다름 없는 밀착도를 자랑하고 있다. 자기가 나오자고 했으면서도, 사람이 많은 골목을 다니게 되면 많이 불안한 모양이다. 계속해서 지나다니는 다른 사람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눈이 마주치면 급하게 고개를 돌린다. 그러다가 어디 시선 돌릴 곳이 없으면 다시 나를 쳐다보면서, 그렇게 계속 걷고 있다. 이 검은머리의 처자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모두 적이라는, 굉장한 흑백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듯 하다. 근데, 이건 너무 가깝잖아, 이거. 요새 사람들이 길바닥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애정행각에 대해서 꽤나 관대하다 하지만, 이 녀석 정도의 얼굴이면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수가 없다. 그 옆에 있는 나에게도 역시.
 아, 왜 리돌의 머리가 검은 색이냐고?
 

 

 

 "어디 갑니까?"

 

 먹을 것을 사러 간다는 말을 들은 리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번쩍 손을 들고서는 내게 말했다.

 

 "나도 당신과 가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처음 이 녀석을 끌고 다녔을 때도 밤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곡마단 원숭이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 이런 대낮에, 그것도 사람들 많은 대로를 활보하게 시킨다고? 이쪽에 스터디 들어놓은 것도 있어서 이쪽에서 아는 사람이 다닐지도 모르는 이 판국에?

 

 나는 다시 한 번, 리돌을 내쫓기 위해 말했던 것과 비슷한 어조로 간곡하디 간곡하게 그녀에게 외출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검은머리만 잔뜩 다니는 이 대한민국 길바닥에서 찹쌀떡마냥 하얀 네 외모는 너무나도 눈에 띄고, 지금 나와 같이 나오는 것은 나한테도 이롭지 않고, 너한테도 별로일 것이라고.

 

 그러자 그녀는 '그렇습니까' 라고 짧게 대답하고서는 갑자기 그 예의 원자분해기를 앞섶에서 꺼내더니, 러시안 룰렛을 하듯이 다이얼을 한번 휙 돌리고서는 자신의 관자놀이쪽을 조준하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깜짝 놀라서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그녀를 저지하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이 녀석이 안 데려가 준다고 목숨걸고 땡깡을 부리는 거야, 뭐야?

 

 당연히 눈으로 확인하고 말리려는 사람 보다는, 생각하고 즉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빠르다. 손 쓸 새도 없이 그녀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예의 녹색 광선이 종이를 찢는 듯한 소음과 함께 리돌의 머리를 감싸기 시작하였다. 이 총의 위력은 며칠간 계속해서 보아 왔던 지라, 그 광선이 나오는 것을 보자 마자 나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부쉈다, 만들었다 하는 그 녹색 광선은, 지금은 전혀 무언가를 부수지도, 만들지도 않았다. 다만 마치 막대기에 고정시켜 놓은 솜사탕처럼 총구 끝에 맺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초록색 솜사탕은 리돌의 손이 움직임에 따라 머리를 타고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궤적을 검은 색으로 물들여 가기 시작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실은 언제나 놀랍기만 하다. 뭐여, 이런 무지막지한 도구에 염색 기능은 왜 있는 거야?!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놀라야 하는걸까 같은 생각을 하며 그녀를 쳐다보다 보고 있자니, 어느 새 그녀는 고스족 마냥 옷까지 검은 색으로 모두 물들여 놓았다. 그리고서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갑시다, 민재."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문을 열 수 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그 빨간 눈으로 (눈동자 색깔은 어떻게 바꿀 수가 없었던듯 하다) 유심히 주위를 살펴 보며 첫 외출을 즐기고 있는 듯 해 보였다. 방금 말한 것 처럼 지나다니는 행인에 대한 사주경계가 거의 80%에 육박하고 있지만, 집을 지은 양식과 먹을 것을 파는 가게들에 대해서도 끊임 없이 관심을 주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골목 중간에 딱 멈춰 섰다. 마치 무언가 대단한 것을 보았다는 마냥, 홀린듯이 어떤 가게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일식 돈까스 집이 있었다.
 그녀는 가게 앞에 있는 모조 메뉴들 앞에서 나에게 말했다.

 

 "민재, 이 사람은 먹을 것을 팔고 있습니다. 왜 여기서 음식을 사지 않는 것입니까?"

 

 사실 모양만 놓고 보자면 썩 잘 만든 모조품들은 아니었다. '돈까스를 처음 본다'라는 전제 하에, 메뉴 모양만 보면 먹을 것인지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조악한 수준이다.

 

 "이게 먹을 건지는 어떻게 알았어?"

 

 그녀는 손가락으로 모조 돈까스 그릇 옆에 있는 모조 밥공기를 가리켰다. 아, 집에서 밥먹는 법을 알려줬더니 그걸로 유추를 한 모양이구만.

 

 "여기는 들어가서 먹고 나오는 곳이고, 우리는 마트에서 집에서 먹을 음식을 사 가야 되는거야. 달에는 식당이 없어?"

 

 "식당은 무엇입니까?"

 

 "식당이 식당이지 뭐. 방금 말한 것처럼 들어가서, 돈을 주고, 먹고, 나오는 곳이야. 따로 싸 갈수도 있기는 한데, 지금 우리는 나중에 먹을 것 까지 모두 사야 되기 때문에 굳이 이 곳에서 먹을 필요는 없는 거고."

 

 리돌은 나의 이 설명을 듣고서는 고개를 갸웃 하였다.

 

 "돈이란 말입니까? 캐롤라인과 얘기하곤 했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입니까?"

 

 "잠깐만, 돈도 모르는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러면 달에서는 어떻게 먹을 걸 사? 물물교환이라도 하나?"

 

 내가 수학을 포기해서 문과로 온 놈이기는 하지만, 경제가 돌아가는 최소한의 원리에 대해서는 안다. 인간들은 모두 욕심을 갖고 있기에 서로간의 필요성에 의해서 물건을 교환하게 되고, 그 편의를 추구하다 보니 화폐의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지금 달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초문명인이 물물교환도 하지 않는 상태의 경제개념을 갖고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코미디일 것 같은데.

 리돌은 말 없이 만능권총을 꺼내어 또 무언가를 조정하고서는, 손바닥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없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하얀색 치즈 덩어리 같이 생긴 무언가가 리돌의 손바닥 위에 툭 하고 떨어졌다. 리돌은 그대로 손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그것을 창조해 오세요."

 

 무슨 방학숙제냐? 리돌은 얼떨떨해하는 내 표정을 똑같이 멀뚱히 쳐다 보다, 다시 말을 꺼냈다.

 

 "먹어봐."

 

 얼떨떨한 나는 얼떨떨하게 그 하얀 큐브를 집어 들었다. 만지는 촉감은 약간 사람의 살 같다고 해야 되나? 상당히 부드럽고 몰캉몰캉하다. 이거 진짜 먹어도 되는 거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리돌을 쳐다보자, 그녀는 어서 먹어 보라는 듯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에라, 모르겠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의 감촉은 마치 두부같이 부드러웠다. 그런데 이빨로 씹기 위해서 혀로 굴리니, 생각보다는 탱탱하다. 조금 두꺼운 목살같은 감촉? 생각보다는 씹는 맛이 퍽이나 찰지다. 그리고 맛은,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맛을 느끼지 못할 만큼, 소금간이 옅게 배여 있다. 일말의 고기냄새와 무언가 연기를 쐬인 듯 한 훈연향이 살짝 배여 있기는 한데, 맛이라고 느끼기에는 그 양이 너무나도 적었다.

 

 "맛이 없습니까?"

 

 무척이나 진중하게 맛을 보고 있는 내 표정을 보며, 리돌은 약간 걱정된다는 얼굴로 나의 반응을 살폈다. 사실 지금 엄밀하게 말하자면, 맛없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반응이긴 할것이다.  지금 분명 내 두 눈 위로는 '맛없다' 라는 세 글자가 네온사인처럼 지나 가고 있기에. 그건 그렇고 정말 이것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생존을 위해서 뱃사람들이 먹었다는 선상용 건빵이 이런 맛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먹습니다. 지구에 있는 음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자극적입니다."

 

 "왠지 그럴 것 같더라니. 너 처음에 라면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네, 나는 매운 음식과 짠 음식을 결코 먹어 본 적이 없다. 솔직히, 내가 최근에 먹은 모든 것들.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먹을 수 있습니까?"

 

 "물론 우리나라 음식이 좀 다른 데에 비해서 맵고 짠 편이긴 하지만. 외국인들 중에서도 못 먹는 사람이 있긴 있지. 근데, 이건 니네 음식이 간이 안 되어 있는 거야." 

 

 리돌은 그렇습니까 라고 대답하고서는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더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조용히 있어라. 더 생각할 것이 없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