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에 가까이 가고자 발걸음을 떼면 어느 순간 다른 산등성이를 서성이고 있는다.
사잇길을 고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가도 산성을 비정상적으로 지나친다.

 

이미 늦은 시간, 수원 근처의 암갈색 문을 두드린다.
똑똑, 똑똑, 이윽고 마룻바닥이 또각 대는 소리를 낸다.
가만히 문 앞에 서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가만히 있지만 말고 문 좀 열어주세요."
아무 기척도 없이 다시 침묵이 흐른다.
다시금 생각해보니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이러니 의심스러울 만 하다.
"죄송합니다. 말씀 하나만 여쭈어볼께요."
"..."
"산성까지 가는 길이 어디 있나요."
"..."
답답하기만 하였다.
문득,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조금만, 확인만 해보고 가자며 문고리를 돌려본다.

 

매끄럽게 돌아간 뒤에 문은 열렸다.
노란 커튼을 지나친 노란 빛이 감도는 방 안, 그리고 먼지밖에 없었다.
어디까지 비어있었던 걸까.
옛 잔재가 쓰러져 있는 내부, 하나를 들어본다.
'계약 기록'
들추어보니, 화학 물질들의 출납이 적혀있다.
언뜻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기록들.

하지만 결국은 소름이 돋아, 뒤를 돌아 문을 닫는다.

 

다시, 산성에 가까이 가고자 발걸음을 뗀다.
길이 아닌 흙 절벽의 돌멩이에 손바닥을 걸치며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