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저씨를 보았다. 아저씨는 평범하게 길을 걸었지만 평범하지 않아 보였다. 

 

가을이었다. 낙엽은 지고, 바람은 쌀쌀해지는 때. 사람들은 제각각 옷을 여미고 제갈길을 서둘러 떠난다.

그렇게 지나침만이 감도는 거리에서, 지나칠 수 없는 아저씨, 나는 그 아저씨를 따라간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산성에서 아저씨의 거취가 끊어져버린다.

미리 올라와 있어도,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혹여나 아실까 싶어, 외딴 정자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께 여쭙는다. 

"아저씨, 군청색의 등산 점퍼를 입은 아저씨를 보셨어요?"

"할아버지는 많이 봤는데, 아저씨는 못 봤는걸."

맞는 말이었다. 이런 날에 이런 산을 타고 올라오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초코 맛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면서 산성에 걸터앉아, 돌을 하나 던진다.

돌은 아저씨의 발가에 떨어진다.

 

 

어느 가을이었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변함 없이 바삐 움직이지만, 나 또한 서두르게 되었다.

이 일상 속에서 추억을 부르는 가을 아저씨.

다시, 어찌 할 수 없는 마력은 아저씨를 따르게 하고 나는 더 빠른 보폭으로 그를 뒤쫓는다.

많이 변해버린 산길 속에서, 아저씨는 어느 건물로 들어간다.
벅찬 마음에 들어간 건물, 그 안에 응대원이 앉아 있다.
"아까 그 아저씨, 어디 가셨나요?"
"아까? 아까 누가 왔었어요?"

"짙은 파랑 점퍼 입은 분이요."
"몰라요. 잘못 보셨나 보지."

 

참담한 결과에 실망하며, 무의식적인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은 한참 지나있었다.
나는 일은 내일로 미루기로 한다.

마침 들어온 숙박집의 응대원에게 키를 부탁한다.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올라 방으로 향한다.

그리고서 복도 끝 하나 놓인 화분에 가까이 다가간다.
어두침침한 복도, 창문 하나 없는 곳의 화분이 신기하여 꽃잎을 만져본다.
꽃잎은 맥 없이 뚝 떨어지고, 마른 잎 하나가 흔들거린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놀라며, 나는 키를 구멍에 꽂고 연신 흔들어댄다.
꽂은 곳에서 연이어 덜컹대는 소리가 난다.

 

열린 문에서는 빗소리가 들린다.
베란다 창으로 회색 구름이 보인다.
나는 언제 비가 내렸나, 의심한다.
불을 켜려 스위치를 움직인다.
불빛은 나지 않았다. 

후레시를 켜보니 물바닥.
베란다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는 베란다로 가려고 하였다.


그 순간, 물을 매개체로 감전이 시작되었다.
발이 쥐가 난 것처럼 따끔거렸고, 이후 석화되어 쪼개지는 것 같이 아팠다.
다리 근육의 위치를 상세히 알게 되고서, 쪼개지는 것 같이 아팠다.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엔 나의 다리가 아니었다.

 

온 몸의 감각이 마지막 잔치를 벌이고 사그라든다.
이내, 마지막 부위가 감흥을 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