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옥상 문 옆에 나 있는 환풍구 쪽으로 향해 사라지고 있었다. 원래 전기로 돌아가는 환풍기가 설치되어 있던 구멍인데, 틀기만 하면 우리 집에 너무나 소음이 심해 집주인이 다른 걸로 바꿔준다고 하고서는 해체해 갔다. 그러고서 한 세네달 째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구멍이 뚫린 채로 방치되어 있던 상황이다. 그리고 내가 나갈 때 옥상 문을 닫아 두었기에 나비는 저 구멍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나는 저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잠깐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집쪽을 훑어 보았다.

 벽이나 옥상 바닥에서 나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두지는 않았으니 그 쪽으로 들어 갔을리는 만무하고, 위로 올라갔나 싶어 옥상 쪽을 바라보자, 나비 녀석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 녀석이 처음 말을 했을 때 마냥,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그 누구라도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옥상 위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날아 오르는 고양이를 본다면.


 ...이 비슷한 이야기를 언젠가 했던 것 같은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 내가 알고 있는 놈들은 모두 날아다니는 거지? 왜 자꾸 나는 놀라야 하는가 말이다. 뒤로 넘어질 뻔 하게 주저앉기는 했지만, 다행히 미행중이라는 자각이 그나마 남아 있었기에 비명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아직은 들키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날아 오르는 나비를 지켜볼 수 있었다.


 다시 보니, 하늘을 난다... 라고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일단, 속도가 너무 느리다. 마치 어딘가에 착 달라붙어 있는 모양으로 발을 신중하게 허공으로 내딛고 있었다. 그리고 앞발의 안전이 확보었다 생각되면, 몸을 끌어올리고 있었고. 다시 보니 저건... 벽을 타는 모양새다.

 

 아, 맞다. 리돌 녀석 방이 원래 저 자리에 있었지. 예전에 안 들키게 한답시고 스텔스를 벽면에 깔아 두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저 녀석은 그걸 어떻게 알고 벽을 타고 있는 거구만. 내 예상대로, 어느 정도의 높이에 올라가자 나비는 허공에 서 있는 품새가 되었고, 그리고 곧 폴짝 뛰어 보이지 않는 벽 안으로 들어가자, 나비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아, 저렇게 들어간 건가.


 ...잠깐, 


 어제 처음 온 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


 ...만약 처음 온 게 아니라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행동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나는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잽싸게 번호키를 따고서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본 것은, 전기밥솥의 뚜껑을 두 발로 힘겹게 돌리고 있는 나비의 모습이었다.


 "너였냐."


 제대로 상황이 이해가 되지도 않고 있었기에, 일단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굉장히 단순했다. 나조차도 어떤 뜻을 담아서 이야기한 건지 알지 못한 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비는, 뚜껑을 붙들고 있던 두 앞발을 풀고서는, 밥상 아래로 폴짝 뛰어 내리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후...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인가."


 나비는 그 조그만 얼굴에 수심을 가득 담고서는 패배를 선언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 애어른 탐정이 마지막 추리를 끝내면 범인이 떠벌떠벌 거리는 시간이 떠오른다. 차이가 있다면, 이 녀석은 말 끝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는 것.


 "나는 아직 꼬리가 짧지만 말이지."




 "...네, 네. 죄송해요, 민아 씨. 조금 일이 생겨서 오늘 스터디는 가지 못할 것 같아요. 네. 다음 번 스터디때 뵐게요. 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지 않는 송구스러운 표정과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오늘 오전은 아무래도 이 녀석을 심문하는 데다가 써야 할 듯 싶어, 스터디를 같이 하는 민아 씨에게 대신 이야기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나는 전화를 끊으며 다시 나비를 노려 보았다. 나비는 그거 뭐 대수라는 마냥 뚱하니 내 눈을 같이 쳐다보고 있고. 이놈 보게?


 언제나 협상 테이블로 쓰이는 우리집의 식탁을 앞에 놓고서, 나비와 나는 마주 앉아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천장 위로 잠자는 리돌의 새근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두고서. ...저 녀석 진짜 잘 자네. 자기 위로 고양이가 떨어지고 밥을 훔치는 범인이 검거되는 소란에도 일어나지를 않으니. 


 "그럼, 이야기해봐. 이 도둑고양이 녀석아."


 이 녀석 자체가 지금 단어 뜻 그대로의 '도둑고양이' 니까 딱히 욕은 아니겠지. 나비 본인... 아니, 본묘라고 해야되나? 하여튼, 나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딱히 반론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추가적인 질문을 덧붙였을 뿐.


 "무엇을 이야기하라는 건가, 인간이여."


 "너가 지금 왜 우리 집에 왔는지, 그리고 집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 왜 밥솥을 뒤지는 건지부터."


 그 다음에는 이 녀석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왜 리돌한테 추근대는 건지에 대해서 물어볼 예정이고. 나비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그대의 집에서 식량을 가져가려 하였다."


 "어째서?"


 "인간들은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 하지만, 우리같은 고양이들에게는 지금 같이 날이 쌀쌀해 지기 시작하면 먹을 것이 줄어든다. 특히 우리같은 몸집 작은, 어린 고양이들한테는 더더욱 말이지."


 "아니, 아니."


 눈을 감고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던 나비는 눈을 뜨고서는,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나의 말끊음에 대답하였다. 


 "뭐냐, 인간."


 "내가 듣고 싶은 건 너가 고양이라 어쩔  수 없이 훔쳐야 하는 상황 같은 게 아니야. 왜 그게 우리집이었냐는 거지."


 "그것은, 여기에 먹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말의 틈도 두지 않은 즉답. 그리고 내 이성도 한치의 틈을 두지 않고 사라지고 있었다. 분명히 누군가 그런 얘기를 했었지. 그 곳에 산이 있기에 오른다고. 우리 집에 음식을 훔치는 것이 평생의 숙원 사업이라도 되는 거야, 뭐야?

 내 표정에서 어이가 털려 나가는 것을 알았는지, 나비는 앞발을 내저으며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그런 게 아니다. 인간."


 "뭐가 그런 게 아닌데?"


 "내가 말한 것은, 이 집이 가장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쉬웠다는 거다. 이 건물은 예전부터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 옥상에 갑자기 이상한 투명한 벽과 함께 그대의 집으로 통하는 구멍이 생겼다는 것은 내가 리돌 님을 주군으로 섬기기 전 부터 알고 있었다."


 나비는 고개를 돌려 잠시 창 밖을 내다보고서는 말을 이어 갔다.


 "아마도 이렇게 되묻고 싶을 것이다. 그게 그대의 집에서 음식을 훔쳐가야 할 이유가 될 수 있냐고 말이지."


 일전에 보았던 만화에서 '다음에 네가 할 말은 무엇무엇이다!' 라는 말버릇의 주인공을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당해보니까 꽤나 짜증나네, 이거?! 내가 반박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생각해 내려 하는 찰나에, 나비는 나의 생각을 앞서서 잘라 들어왔다. 진짜 이거 고양이 맞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 역시 그것이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해야 할 말을 빼앗겨서 잠시 패닉에 빠져 있던 중, 아예 결정타까지 먹인다. 지금 병주고 약주는 거냐?! 나는 간신히 정신을 추스리고서는 힘겹게 반문했다.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왜 그러는데?"


 나비는 마치 칠십 먹은 영감의 그것처럼, 눈꺼풀을 아주 느린 속도로 감아 내렸다. 무언가를 굳이 시야와 함께 덮으려는 것 처럼.

 

 "나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가족, 형제자매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대의 식량을 훔친 것이다. 나의 형제자매는 지금은 나까지 도합 셋. 그 중에 유일하게 나만이 인간의 생활 양식을 알고, 너희들이 어떤 식으로 식량을 보존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 동족들은 거의 대부분 길거리에 늘어져 있는 먹고 남은 쓰레기들이 그들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고양이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잠시 동공을 좁히며 눈을 감았다. 무언가 쓰라린 기억이라도 되짚는 듯, 고개를 잠시 아래로 떨구면서. 


 "내가 이러한 지성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우리 형제도 그렇게 살아 왔다. 안타까운 시절이었다.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며칠을 추위 속에 떨었고, 어떤 마음 나쁜 인간들이 놓아 둔 독약에 의해서 내 형제 하나가 눈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누군가는 우리를 가엽게 여겨 먹을 것을 놓아 두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우리를 쫓아내기 바빴다." 


 먹을 걸 훔쳐가는 고양이를 두고 보는 가게 주인은 별로 없으니까. 인터넷에 보면 캣맘이라고 길고양이들을 보살펴주는 사람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이 고양이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마구 학대하고 괴롭히는 기사 역시 심심치 않게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