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노를 저어 강 중간으로 나오자노인은 노를 젓는 것을 그만 두었다배는 저물어 가는 석양을 등지고 강의 흐름을 따라 흘러갔다배가 제대로 가는 것을 확인한 노인은 노래를 그만두고 고물에 설치된 그만의 자리에 앉았다.


“남만의 노래를 하시는군요?”


 청년은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그의 얼굴에서는 아까의 두려움은 많이 걷혀 있었고그 자리는 호기심이 차지하고 있었다노인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청년을 돌아 보았다.


“어떤 뜻인지도 아시오?”


“천자를 능멸하고 위정자들을 목매다는 내용... 으로 들립니다지금같은 시국이 아니라면 저잣거리에서 불렀다가는 바로 거열(車裂)당할 노래로군요.”


“정확하게 아시는구려일전에 뱃일을 돕던 남만에서 온 친구에게서 배운 거요그 친구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지어차피 세상 일은 모두 거지같은 거고욕지거리라도 실컷 하다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오틀린 말은 아니잖소.”


 그렇게 이야기하며 노인은 자신의 뒤에 있는 살림망을 끌어 올려 보였다그 안에는 다시 물을 머금고 생생해진 잉어가 펄떡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이렇게 물고기나 좀 잘 잡히면 좋은 것이오내가 먹고 살기 힘든데 황제가 다 뭐고종묘사직이 다 뭐란 말이오.”


“어르신제 복색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도 나랏일 비슷한 걸 하고 있습니다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시다니요.”


 장 노인은 '!' 하고 비웃음 비슷한 장탄식을 털어 냈다.


“제대로 된 관리가 연락선 타는 곳도 모르고 이런 곳에서 촌부의 배를 탄단 말이오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 말을 듣자 청년은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제대로 된 관리는 아니지요.”


어디서 술 마시고 면직이라도 된 모양이구려아니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길래?”


 청년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대신에아까와는 또 다른 표정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마치 납으로 만든 가면을 씌워 놓은 것처럼.


굳이 따지자면... 어르신과 같은 일을 한다고 해야 겠군요.”


 노인은 갑자기 늘어지는 그의 목소리에 의아한 얼굴로 청년을 바라 보았다눈썹 사이에는 지워내기 어려워 보이는 수심이 가득했다.


나와 같은 일을 한다고?”


 청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리던 채로 고개를 숙여 배의 바닥을 내려다 본 채로 말을 이어 갔다.


아까 어르신이 말씀하신 대로현재 중화의 날고 긴다는 인물들은 모두 황제를 따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제실(帝室)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졌고웬갖 야심가들이 약육강식이 하나의 기치인 것처럼 세력을 불려 나가고 있습니다.”


 청년은 잠시 말을 멈추고서는 격하게 기침을 해 대기 시작했다무언가 내뱉지 못할 것 같은 말을 하려는 마냥노인은 청년의 기침이 잦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걱정스레 그의 안위를 물었다.


괜찮소?”


 청년은 입으로는 기침을 계속 하면서도손을 앞으로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었다잠시 후 기침이 멎고 나서야 그는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제가 모시는 주군은 지금 난립하는 권력자들 모두 하찮은 물고기떼 처럼 보고 있습니다그들을 모두 한번에 낚아 챌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요그리고 그 분이 이용하실 그물이바로 저입니다.”


원 참사람이 어떻게 그물이 된단 말이오그런데... 몸이 괜찮은 것 맞소강바람에 오한이라도 든 것 아니오?”


 자신을 감싸쥔 청년의 몸이 아까보다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마치 배를 뒤흔들 마냥.


아닙니다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오?”


... 저는 그 분이 두렵습니다제가 모시는 그 분이 말입니다입으로는 인의를 외치면서 정작 직접 피흘리는 병사들의 목숨은 오로지 숫자로만 판단합니다방금 전... 방금 전에... 물론 제가 가능성을 말했지만... 어떻게 수십만의 목숨이 아무렇지도 않게 없어질 그런 계책을 실행하라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훤히 아는데저는 또 그걸 했단 말입니다이 강에서 죽어갈 원혼들에게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청년은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서는 그대로 더 이상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지껄이기 시작했다노인은 이 남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다만 다행인 것은저 멀리 이제 선착장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노인은 재빨리 노에 손을 올렸다빠르게 이 광인(狂人)을 내려주고 집으로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선착장을 1리 쯤 남겨 두고 강가에 정박했다노인은 그 때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선착장이오마침 배가 바로 출발하려는 것 같은데빨리 가 보시오.”


 청년은 숫제 울기까지 한 듯두 눈이 부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노인을 쳐다 보았다.


고맙습니다어르신.”



 청년을 내려주고서는 노인은 강바닥에 노를 찍어 빠르게 배를 강 위로 띄워 내었다어서 빨리 저 미친놈과 멀어져야 겠다는 생각에.


어르신오늘 적벽 쪽으로는 가지 마십시오!”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지금집에 돌아가지 말라는 거야 뭐야노인은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배의 이물에는 완전히 저물어 버린 석양의 파편만이 남아 있었다집에 돌아갈 때 쯤이면 완전히 어둑해 질 것이었다노인은 세상을 조리밟는 예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노를 저어 강물을 거슬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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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삼국지를 베이스로 한 장편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자료를 수집하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이렇게 단편으로 간간이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