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강찬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긴장과 함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중요한 사항들을 중얼거렸다. 휴대폰 화면은 자꾸 눌려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차에서 마법의 통제를 담당하는 제삼력을 연습하기도 했다.

이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추강찬의 8강 상대가 전청아였던 것이다. 언젠가는 대결해야 했지만 당장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니 너무 초조해졌다.


8강전이 치뤄지는 곳은 광주광역시였다. 광주광역시의 지부도 추강찬이 생각했던 것보다 꽤 컸다. 서울 서초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송시설까지 갖춰져 있는 대형 지부였다.

추강찬은 대기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대기실은 대전의 대기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판기 하나에 기다란 의자 여러 개가 끝이었다. 거리가 비교적 가까워서 일찍 도착했던 추강찬은 벽에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추강찬이 몇 분 쯤 기다렸을까, 주연재가 2번째로 도착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추강찬과 주연재는 잡담을 하면서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다른 3명이 올 때까지 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곧 당도할 누군가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왔다. 추강찬과 주연재의 바로 앞이었다. 그들은 흠칫 놀라서 고개를 앞으로 들었다. 그들은 바로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흐흐거리는 임경빈이었다. 임경빈은 자신을 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흐흐, 나이스 커플."
"이게 뭐하는 거야?"
추강찬과 주연재가 조용히 타박했다. 둘이서만 헤쳐온 시간 때문인지 둘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 이구동성으로 꾸짖으니 임경빈에게는 더없이 보기 좋았다.
"나이스 케미."
"아니, 그보다도 너 왜 자꾸 이러는 거냐?"
"왜, 둘이 사귀잖아?"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리고 그 흐뭇한 눈으로 쳐다보는 건 좀 그만해줄래?"
"오케이 오케이. 그럴 줄 알고 이걸 가져왔지, 흐흐."
임경빈이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그리고 썼다. 패션으로 보면 얼굴과 조화가 영 좋지 않았지만 눈은 확실히 가려졌다.
"그런다고 해결될 것 같..."
"오케이 오케이."
그리고 임경빈은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서 착용했다. 추강찬과 주연재는 할 말을 잃었다.
"아, 그보다도 경기는 잘 준비했냐?"
추강찬이 억지로 화제를 돌렸다.
"당연하지, 내가 204강전 패배 이후로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데. 204강전에서 주제가 자신있는 청력 치료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간 보려고 먹으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심사위원의 논의 끝에 결국은 실격패를 먹었었지. 그 뒤로는 절대 안 먹고 있다고."
임경빈이 회상조로 말했다. 이번에도 임경빈 특유의 실감나는 톤이 한 몫을 하며 나름 애잔한 분위기를 띄웠다.
"흐흐, 아무튼 나중에 보자!"
임경빈이 왠지 모르겠지만 산뜻하게 걸어서 문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공항도둑 같았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온다고 했던가. 임경빈이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면서 김초은과 전청아가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와서 추강찬과 주연재와 눈이 마주쳤다. 추강찬은 엄청난 신경전과 설전이 오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전청아는 싸늘한 비웃음만 남기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김초은은 구석자리에 앉아서 둘을 바라보며 슬쩍 째려보고 있었다. 임경빈은 자기 대결상대인 김초은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시선을 감지한 김초은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자, 8강전 시작합니다. 들어와주세요."
안내자의 말에 대회에 참석하는 8명은 각자 대결장에 들어섰다. 추강찬과 전청아의 대결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사회자가 뽑기기계에서 랜덤으로 주제를 뽑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주제들이 공에 갇혀 떠돌아다녔고 사회자는 방송용 멘트를 내뱉으며 아무거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주제를 말했다.
"알려드립니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탈모 치료입니다!"
그러자 한쪽에 위치한 창고에서 적절한 식재료들이 대거 등장했다. 흑미와 검은콩은 예사요, 물고기에 맥주에 한약 재료에 딱 봐도 쓰면 안 되는 패스트푸드들까지 각의각색의 재료들이 냉장고에 보관된 채로 한 트럭 가득 실려왔다. 선수들에게는 이것은 일상이었다.

타이머가 가동되었고 추강찬과 전청아는 동시에 탈모치료제 개발에 집중했다. 추강찬은 하도 많은 재료들 중 탈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음식들을 죄다 골라모았다. 검은콩, 현미, 다시마, 계란, 호두, 아몬드, 땅콩, 당근, 연어, 녹차 등등... 도박성으로 맥주 여러 병도 꺼내들었다. 비록 맛은 이상하겠지만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추강찬은 복잡하고 도전적인 길을 선택했다. 리스크도 컸지만 이기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첫번째로 추강찬은 검은 콩을 넣은 현미밥을 지었다. 재료 하나하나에 일일이 마법을 다 걸어준 다음에 물에 씻고 압력밥솥에 넣은 다음 적절히 익힐 준비를 했다. 솥에 넣은 물에도 마법을 걸었다. 압력밥솥은 전기밥솥보다 어렵지만 잘만 만들면 그보다 훨씬 뛰어난 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고인물 전용 아이템이라고도 불린다.

아무튼 두번째로 추강찬은 다시마를 물에 불렸다. 그리고 고기를 재우고 연어를 손질하고 호두와 아몬드와 견과류를 까고 당근과 양파와 대파를 자르고 양념장을 만들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추강찬은 바로 맥주 여러 병을 꺼내들어 효모 추출작업에 돌입했다. 매우 어려운 작업이겠지만 제이력은 추강찬이 두번째로 잘하는 마법이었다. 바로 효모인 사라코미세스 세레비시아를 냉동건조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지만 제육력을 제외한 다른 마법으로 제육력을 서포트해도 규정위반이 아니다.

그리고 압력밥솥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밥을 지었다. 대충 10분~15분이면 완성될 것이다. 그 안에 다른 것들을 손질하고 데우는 것을 완성해야 했다.

다시마를 불리는 게 끝났으면 작게 잘라준다. 그리고 맥주효모의 냉동건조가 끝나면 제이력으로 신나게 빻아주자. 미세한 가루가 될수록 효능이 더 좋다.

여기서 말하지만 제육력의 원리는 특정 영양소의 특정 성분을 엄청나게 강화시켜서 고온에도 버틸 정도 이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맥주효모를 영양소 파괴 없이 굽기 위해서는 제육력을 건 다음에 구워야 했다. 그러므로 바로 제육력을 걸었다. 다른 식재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마의 비타민, 계란 노른자의 단백질과 비오틴, 견과류의 단백질과 비타민 등등... 연어, 녹차, 당근, 견과류도 지금 마법을 걸어주어야 했다. 양파와 마늘에도 탈모방지기능이 아주 조금 들어있는데 이것도 활성화시켜야 했다.

정석대로라면 이것들을 모두 제육볶음에 담겠지만 지금은 밥까지 빠른 시간 안에 커버해야 했다. 그래서 추강찬은 철판볶음밥에 도전했다.

추강찬이 식용유와 설탕을 두른 다음 돼지고기와 연어를 철판에 놓고 구웠다. 센불이어서 추강찬이 프라이팬으로 하던 방식이랑 일치했다. 그 다음은 채소들을 넣자. 당근, 양파, 대파, 견과류, 다시마 등 채소가 아닌 것들도 잔뜩 들어갔다. 녹차티백을 뜯어 마법을 걸고 녹차가루를 넣었고 맥주효모도 집어넣었다.

압력밥솥으로 밥이 완성되었다. 다행히 밥은 예술이었다. 바로 밥을 철판에 부었다. 검은콩과 현미 등 탈모에 좋은 음식들이 대거 투하되었다. 이 때 양념장과 마법을 건 날달걀을 같이 넣어주고 마구 섞었다. 추강찬은 팔이 빠질 것 같았지만 우승을 위해서라면 어찌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희귀한 방식의 등장에 해설위원들은 흥분했다. 전청아의 요리가 끝나고 추강찬을 노리던 해설위원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렇게 추강찬은 원샷을 받았다.

추강찬은 결국 제육철판볶음밥을 완성해내었다. 볶음밥이긴 하지만 제육볶음의 일종이라 문제는 전혀 없었다. 추강찬은 바로 벨을 눌러 요리의 끝을 알렸다. 전청아는 이미 끝났으므로 추강찬의 벨과 함께 타이머가 종료되었다.


심사위원들이 차례차례 심사숙고하며 평가했다. 대결장에는 펜이 왔다갔다하는 소리만 가득했다. 추강찬은 힘들었던 나머지 의자에 뻗어버렸다. 맥주에서 효모를 추출하는 것과 압력밥솥에 밥을 안치는 것 등을 동시에 해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심사위원들이 결과를 발표했다. 추강찬의 운명은 여기에 달려있었다.
"추강찬 선수와 전청아 선수 모두 4강전의 문턱답게 훌륭한 예술을 선보였습니다. 1시간 안에 맥주의 효모를 추출하고 밥을 짓고 아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함정에 걸리신 분이 있더군요."
추강찬은 뭔가 잘못했나 하면서 긴장했다. 전청아는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는 자만한 마인드를 취하고 있었다.
"일단 미역은 확실히 탈모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다만 미역과 파는 성능이 상극입니다. 그러므로 미역이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또한 어성초를 넣었는데 어성초는 기관지 치료에나 쓰이지 탈모치료에는 쓰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낚인 부분이었죠."
추강찬은 화색했다. 미역과 어성초는 그가 쓴 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전청아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므로 이번 대결은 추강찬의 승리입니다!"
전청아가 눈치챌 틈도 없이 그녀의 패배가 선포되었다. 이번의 패배는 그녀가 추강찬을 패자부활전으로 진출했기에 그를 경계하지 않았던 것이 그 원인이었다. 심지어 그 방심 때문에 승패조작도 하지 않았다.
추강찬은 환호했다. 음모를 꾸미고 있는 2명 중 한 명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추강찬은 승리를 알리기 위해 바로 대결장을 나가려고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4강전 진출 선수들은 우승소감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그에게 건넸다. 추강찬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래도 머리가 아프면 안 되니까 속내를 말하지 않는 것도 잊이 않았다.
"4강전에 가게 되어 정말 황홀합니다. 패자부활전까지 겪으면서 멘탈이 크게 흔들렸지만 이제 우승을 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우승을 거머쥐고 이 사회에 공 헌하겠습니다!"


한바탕의 우승소감이 끝나고 추강찬은 신나게 대결장을 나서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추강찬은 가슴에 통증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닌 뭔데 나를 막고 지랄이야!"
전청아가 분노와 함께 추강찬의 멱살을 잡아 벽에 밀쳤다. 벽에 머리가 부딪히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와... 얘 힘 진짜 세네.'
추강찬이 은연리에 생각했다.
"왜 내가 패자부활전 출신한테 꿇어야 되는데! 애초에 너를 살려주는 게 아니었어.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전청아가 어퍼컷으로 추강찬을 강타했다. 추강찬은 매우 아팠다. 그리고 두 대 더 때릴 즈음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흐흐, 나이스 격정로맨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임경빈이었다. 마스크는 벗은 채였지만 선글라스는 쓰고 있었다. 임경빈은 이 말을 하더니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고 했다. 추강찬과 전청아 둘 다 막으려고 했고 결국 전청아가 제일력으로 휴대폰을 잠시 가둬두었다.
"닌 또 뭐야?"
"흐흐, 지나가던 패배자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아, 됐어. 안 해!"
전청아가 신경질나게 발을 구르면서 대기실로 이동했다. 이와중에 가는 길에 쓰레기통을 힘껏 차고 가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 뒤로 우승소감을 마치고 나오다가 추강찬과 임경빈과 전청아의 조우를 본 주연재가 합류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다가 추강찬의 상처를 보고 걱정했다.
"이거 뭐야? 치료해줄게."
그리고 빠르게 제일력으로 만든 수납공간에서 재료들을 꺼내 임시적인 제육력 치료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응급처치용이라 필수재료가 다 안들어가도 되고 굽지도 않아도 되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걸 보면서 임경빈이 말했다.
"역시 이 그림은 아름답다니까."
주연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추강찬은 주연재에게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임경빈은 그 뒤로 몇 번 더 놀리다가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