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붙이가 살갗을 갈랐고, 환부에서는 날카로운 고통이 엄습해왔다. 그때 피가 베어나오기 직전, 아주 잠시동안 드러나는 분홍빛의 피부의 단면이 드러난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그것은 정말로 예쁜색을 띄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보기 위해서 이러고 있는 걸지도 몰라.


어떤 꽃보다도 선명하고 아름다운 분홍빛을 눈으로 아로새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 속을 끝까지 더듬어 올라가도 그저 기쁘거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에는 항상 이래 왔다. 딱히 고통을 즐기는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최고로 즐거울 순간에 가장 예쁜걸 보고 싶을뿐. 다소 독특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 자신은 이런 성향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늘 결과를 낳았고, 사람들은 그 결과물을 납득하지 못했다. 처음에 걱정을 하시던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놓았을때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포용과 이해를 벗어난 공포였으며,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사랑해 마지 않는 부모님의 그런 반응에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이해를 바랬지만 그것을 배반당했다. 머지않아 두 분은 나를 똑같이 대해주셨지만 왠지 모를 소원함이 느껴졌다. 한동안은 부모님과의 그런 관계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 날 이후로 몇 주 정도는 내 몸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는 부모님의 그런 반응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번 뒤틀린 성향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법은 없었다. 사춘기의 풍부한 감성에서 오는 희노애락은 오히려 뒤틀림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오면 커터칼로 팔목을 그었다. 


즐거웠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렀다.


맛있는 것을 먹고나서는 나른한 포만감에 젖으며 조각칼로 손등을 찍었다.


아픔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충실한 나날들이었다. 상처가 생기고 피가 새어나오고 그것을 보며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눈 앞에서 일그러지는 신체 부위와 비릿한 피냄새에 취했었던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여흥거리였다.


상처와 흉터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친구들은 떨어져 나갔고, 어른들은 내 몸을 보고 동정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러한 나의 행동은 현실에서 이상행위로 취급 받았으며, 나 역시도 무엇 하나 선택하지 못한 채 타협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상담사들과의 이야기가 주선 되었는데, 정말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멋대로 나를 규정하고 판단하는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가끔씩은 참을 수가 없어서 욕지기가 목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그때마다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혈육을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는 그 눈길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되새겼다.


그때부터 진정한 의미에서 나는 혼자였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얼굴 몇번 맞대어보지 못한 타인의 말의 무게는 얄팍하고 가볍기 그지 없었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끓어오르던 화는 가라앉았고, 모든 것이 심드렁해졌다. 그리고 상담사의 말은 이미 남의 일처럼 나의 내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