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한 손길에 격자모양으로 엮인 밧줄더미가 순식간에 펼쳐지며 하늘을 가린다. 추 끝에 달린 물방울들이 이리저리 흩날리며 저물어 가는 석양빛을 튕겨낸다. 비산하는 황금색은 그물을 던진 노인의 웃옷과 삿갓에도 번져 나갔다. 삿갓 뒤로 날리는 산발한 흰머리 사이에 거뭇거뭇한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노인은 귀찮다는 듯 옷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 내었다. 그는 흐린 강물 사이로 천천히 가라앉는 그물의 모양을 지친 눈으로 바라보았다. 구름이 쪼개지는 파도의 갯수만큼 나뉘어져 장강의 한 조각을 수놓았다.

 장()씨 노인이 지금까지 세지도 못할 정도의 첫눈을 보는 동안 많은 것들이 그의 옆을 지나갔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자연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돌려준다는 믿음. 적어도 저번 달까지는 그랬다. 딱 저번달, 저번달부터 강 상류 양측 기슭에 군대가 대치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먹을 것들의 값을 두 배 이상 쳐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생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값이 오른들 팔 것이 없으면 말짱 황일 뿐이다. 노인은 혀를 차며 강 위를 둘러 보았다. 저번 주까지는 강 위에 많아 봐야 서 너대 정도였는데, 지금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어선들이 자신들의 구역을 제멋대로 주장하고 있었다. 그나마 노인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그들 역시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 보고 있다는 것 정도였을까.


“염병할 놈들. 니네도 다 같이 굶어 죽어 봐야지.”


 하늘을 향한 노인의 입에서는 게거품처럼 저주 섞인 넋두리가 흘러 나왔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 그 날 먹을 물고기도 없었다. 딱히 고물에 달려 있는 살림망을 바라 볼 필요도 없었다. 집에 가서 먹을 한 마리만이라도 낚인다면. 제발 그러면 좋겠는데.


 그 때, 노인의 귀에 선창에 물결이 부딪히는 소리 외에 다른 것이 들려 왔다. 남쪽 강가에서 사람이 부르는 소리였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 보았다. 그 곳에는 흰 두루마기를 입은 누군가가 강에 떠 있는 배들 전체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노인은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자신을 강 건너로 태워달라 하고 있었다.

노인은 다 가라앉지도 않은 그물을 서둘러 거뒀다. 해도 거의 저물어가는 지금, 어차피 오늘은 뭘 더 낚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저 뜻모를 이라도 태우고 뱃삯이라도 받으면, 돌아가는 길에 뭐라도 먹을 건 사 갈 수 있지 싶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될까, 나쁘다고 해야 할까. 그물 안에는 오늘 전혀 보이지 않았던 잉어 한 마리가 걸려 있었다. 배 위로 올라온 팔뚝만한 잉어는 마치 그물을 찢을 것처럼 심하게 펄떡이고 있었다. 노인은 당황한 듯이 눈으로만 잉어와 강 건너의 남자를 빠르게 번갈아 보았다. 잉어는 살아 있는 채로 넘겨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그물을 갈무리하게 되면 저 남자를 잡을 수가 없다. 잠깐 눈으로 저울질을 하던 노인은, 혀를 한 번 차고서 그물을 내팽개쳤다. 그리고서는 노를 저을 때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뱃전의 방향을 백의의 남자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저 쪽이 더 큰 돈이 될 것 같다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단순히 강을 건너기만 할 요량이었으면 이런 곳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저 물고기가 더 클 것이다. 노인의 결론은 그러했다.


“이쪽입니다!”


 배가 기슭에 가까워질 수록, 노인을 부른 자의 모습은 뚜렷해 지기 시작했다. 흰 두루마기 안에는 앳되어 보이는 청년이 있었다. 갓 입신의 길에 들어 선 듯, 그의 머리에는 벼슬아치들이 쓰는 관()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한평생을 강 위에서만 보낸 노인은 지금껏 현령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었기에, 저 관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돈푼 깨나 있어 보이는 행색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배의 이물이 강기슭에 미끄러져 들어가기가 무섭게, 백의의 청년은 급하게 배 위로 뛰어 올랐다. 노인은 경우 없는 그의 행동에 짐짓 당황하였으나, 이내 표정을 추스르고서는 배 주인으로서의 응당한 주의를 주었다.


“배 가라앉겠소.”


“요, 용서하십시오, 어르신. 제가 조금 서둘러야 해서 그랬습니다.”


 청년은 당황한, 그리고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노인은 그의 얼굴을 바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바라볼 수 없었다. 노인은 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노를 젓고 있었고, 청년은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이 건너 온 강변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청년이 배에 오르자 마자 노인은 배를 출항시켰다. 이 철모르는 청년이 값을 흥정하기 전에, 자신에게 유리한 곳으로 협상의 장을 옮긴 것이다.


“어디까지 가시우? 강 건너까지만 바래다 드리면 되는 거요?”


 배가 멀어짐에 따라, 청년의 표정에서는 아까의 조급함은 조금 가신 듯했다. 하지만 양 팔을 껴안은 몸은 계속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청년은 그래도 방금 전보다는 차분한 어조로 행선지를 대답했다.


“번구까지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그제서야 청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번구? 여보쇼. 배라는 게 강 위에 있다고 아무데나 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오. 돛도 달리지 않은 배로 지금 여기서 백리도 넘는 거리를 내 팔 하나로 왔다갔다 하라는 거요? 지금 말한 건 백만금을 줘도 불가능한 일이외다.”


“그렇...습니까.”


 장 노인의 말을 들은 청년은 절망에 찬 낯빛을 슬쩍 비추고서는 고개를 떨구었다. 노인은 그런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친구가 있다니.

그는 다시 강 건너편을 가리키며 다른 선택지를 이야기하였다.


“차라리 동쪽 나루터에 가면 연락선이 있을 거요. 아마 중간에 강릉에서 멈추기도 할거고. 좀 멀긴 하지만, 거기 까지는 태워다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강 상류 쪽으로 가는 것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그 쪽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말이지,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노 젓는 배로 그 거리를 간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 말이오. 뱃삯은 생각한 것보다는 많이 비쌀 거요. 그런데, 뭘 줄 수 있으신가? 갖고 있는 건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


 뱃삯의 이야기가 나오자, 청년은 황망히 자신의 앞섶을 더듬기 시작했다. 떨리는 그의 두 손 안에는 대천오백(大泉五百) 몇 닢이 쥐어져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노인은 청년의 손 안에 든 동전을 보고서는 미간을 찌뿌렸다. 푸줏간 이씨가 저 장난감같은 동전을 받아주던가? 차라리 지금 청년이 입고 있는 두루마기가 더 식량으로 바꾸기 쉬워 보였다.


“가진 게 이거밖에 없소?”


“면구스럽습니다.”


 청년은 빨개진 얼굴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바닥에 있는 잉어를 우선 집어 들었다. 다행히 잉어는 아직 살아 있었다. 노인은 잉어에 얽힌 그물을 빠른 손놀림으로 갈무리하고선, 살림망에 잉어를 넣어 두었다. 그리고 다시 노를 쥐고서는 언제나 배를 몰 때 흥얼거리는 노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