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이 몸을 이 곳에서 꺼내지 못할까, 인간!"


 박스 안에서는 뭐라뭐라 떠드는 소리가 조그마한 구멍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그래, 그렇게 말로 밖에는 떠들 수 없겠지. 물리적인 저항은 무의미하다. 이불로 구멍을 제외한 모든 면을 돌돌 감싸 놓아서,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가 없게 만들어 놓았으니까. 덕분에 나비의 결사적인 외침은 그저 조그만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만이 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배경음삼아, 리돌과 나는 우아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고.


 "괜찮습니까? 민재?"


 리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포크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이 녀석의 우선순위는 나비보다 식사가 우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렇게 있는 게 괜찮아 보이는 건가?


 나는 된장찌개를 입에 넣으며 손사래를 쳤다.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그런 뉘앙스로. 아까 전후 설명은 대충 해 두었고, 저렇게 있다고 해서 딱히 위험한 것도 아니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단 리돌도 깨웠으니, 모두가 만족할 만한 타이밍, 그러니까 리돌이 밥을 다 먹고, 나비 녀석은 좀 정신을 차리고, 나는 물어볼 것을 다시 정리한 다음에 다시 심문에 들어갈 예정이다.

 밥을 먹는 사이 어느 샌가 모르게 상자 안에서 나는 소리는 잦아들었다. 뭐, 소리가 안 들리면 좋은거지 하면서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밥숟가락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렇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나도, 리돌도, 심지어 갇혀 있던 나비조차도 상자 안의 한 고양이의 존재를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너무나도 평화롭게, 오늘 하루는 그렇게 가고 있었다. 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있는 사이, 리돌은 언제나처럼 TV의 모든 채널을 외워버리겠다는 듯 리모콘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박스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고양이를 가둔 박스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이 저 어딘가로 잠시 떠난 듯 하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이렇게 될 이 방 안의 풍경. 


 일상이라는 녀석은 게으른 게 틀림 없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가려고 했던 것을 보면. 내가 방 안에서 무언가가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밥을 먹기 시작할 때 리돌이 틀어 둔 다큐멘터리가 하나 끝나고 나서였다. 주방 일이 뒷정리까지 모두 끝난 후에, 침대 위에 이불이 이상하게 말려있는 것을 보고서야 오늘 집에 불청객이 들어왔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는 돌돌 말아 둔 이불의 끝자락을 잡고, 먼지를 털듯 한번 공중으로 탁 던져 침대 위를 정리했다. 안에 있는 내용물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로. 덕분에 박스는 공중 3회전 후에, 다시 침대 위에 안착하였다. 


 "캬아앙!"


 다시 한 번 울려퍼지는 날카로운 괴성. 그 째지는 듯한 소리가 상자 안에서 한 차례 울려 퍼지자 다시 동굴에서 갓 울린듯한 중저음 톤의 아저씨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녀석 비명소리하고 왜 이렇게 목소리는 왜 이리 매치가 안 되는 걸까. 


 "이 간악한 인간놈! 이 몸을 회유하기 위해서냐! 이런 육체적인 평안으로 이 몸의 마음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느으으흐으응."


 끝맺음이 이상하다? 나는 의구심 가득한 눈초리로 상자의 구멍으로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 빛이 비추는 그 곳에는 만족감이 넘쳐 흐르는 고양이의 감긴 눈이 보였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골골대는 소리를 덤으로. 아, 맞다. 고양이들은 박스를 좋아하지?

 나는 상자 윗쪽을 두들겨 수감생활에 만족하는 침입자를 깨웠다. 하지만 나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만이 박스 안에서 흘러 나왔다.


 "으음... 5분만 더. 흐으으응."


 이것이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부모님이 겪으셨던 고충인 건가. 나는 마음속으로는 어머님 '그 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를 되뇌면서 손으로는 테이프를 찢어발겼다. 내가 과자부스러기를 털듯 박스를 흔들어 떨구는 동안에도, 나비는 아직 상자의 거부할 수 없는 마력에 홀려 버린 듯 눈을 감은채로 낮게 그르렁 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비?"


 나비가 별 이상 없이 숙면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나비가 정상이라는 것을 인지한 듯 리돌은 반갑게 나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무래도 어제 경고했었던 지구의 동물은 이야기를 못 한다는 사실은 리돌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나비는 리돌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앞다리를 쭉 내뻗으며 기지개를 켜고서는 리돌에게 화답하였다.


 "정식으로 문안 인사 올리려 하였습니다만 경황이 경황인지라 이런 빈궁한 모습으로 예를 차릴 수 밖에 없음을 용서하소서. 불민한 모습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주군이시여."


 어느 새 나비는 절을 하는 듯한 모양새로 리돌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밥털어가려 만반의 준비를 다 한 놈이 말은 잘 한다. 내가 뒤에서 띠꺼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은 상관하지도 않고, 나비는 마치 우리 집이 16세기 경복궁이라도 되는 마냥 상고의 예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어제 그러하였듯이, 리돌은 여전히 나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번역기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습니다. 더 쉽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진심이 주군께 통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니 주군이 그 진심을 알아 들을 수가 없다고, 이 사람아... 아니, 고양이야. 리돌은 그저 난감한 듯이 미소를 띄우며 웃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나비를 끌어안고서는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나비는 그 손놀림에 맞추어 가르랑대고 있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존재는 바디랭귀지로 밖에 친밀함을 표현할 수 밖에 없나 보다.


 지금 둘이서 끈끈한 관계를 만방에 과시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심문을 재개해야 할 권리가 있다. 나는 일단 원활한 심리 과정의 첫 번째 단계로, 리돌에게 경계심을 좀 심어 줄 필요성을 느꼈다.


 "야, 리돌. 너가 지금 품에 안고 있는 그 녀석 말이야."


 "네, 민재."


 "그 녀석 도둑놈이라고, 도둑. 알아? 도둑? 어떤 단어인지?"


 "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따위의 나쁜 짓, 또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 이라고 번역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니까. 저 고양이 녀석이 우리 집에서 너가 먹을 밥을 가져가려고 했단 말이야. 그것도 방금 전에."


 리돌은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더니, 입을 죽 늘린 약간 뜨악한 표정으로 나비를 잠깐 내려다 보았다. 그러고서는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버터에 버터를 줄 수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기름기 흐르는 소리다냐. 요새는 이 녀석의 번역기가 학습능력이 좋아서 그런지 번역한 결과에 크게 태클을 걸 만한 구간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가당치도 않은 말이 튀어 나오네. 무슨 말인지조차 유추를 할 수도 없다. 어이없음과 이해불가로 빠져든 침묵을 먼저 깨고 나온 것은 나비였다.


 "자고로 서양에서 버터라 함은 한국의 된장과 같이 맛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식품. 주군께서는 자신의 가신인 이 몸을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몸에게도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을 할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거고."


 꿈보다 해몽이냐? 나는 저 갖다 붙이기 식의 엄청난 해석능력에 급격히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리돌, 넌 왜 끄덕거리고 있는데? 진짜 그런 뜻으로 말한 거냐? 엉? 아니잖아, 임마! 

 앞에 있는 사람, 뒤에있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나비는 계속 입을 놀리고 있었다.


 "주군이시여, 그런 의미에서 저를 불러 주시는 호칭을 나비에서 버터로 바꿔 주시면 어떨까 조심스레 간청해 봅니다."


 갑자기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뭐 하사받은 이름이 어쩌고 하더만 내심 어지간히 싫었나 보구만? 나비는 굉장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주군을 쳐다 보았고, 곧 어명이 떨어졌다.


 "싫습니다. 나비가 좋습니다."


 단호박.


 "네."


 나비는 굉장히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참, 중요한 건 이 녀석의 작명 같은 게 아니지, 지금. 나는 다시 화제를 돌리기로 하였다


 "아니,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저 녀석이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계속 밥을 훔쳐 먹었다니까? 내가 너한테 계속 밥 없어졌다고 뭐라뭐라 한 것도, 다 저 녀석이 가져가서 그런 거라고. 그래도 괜찮아?"


 리돌은 계속 나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방금 전에 말했듯이, 저는 나비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또한 나에게 쌀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나비는 매우 감격한 듯이 골골이를 더욱 더 가열차게 울리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