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강찬이 8강전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헌책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추강찬은 어머니의 일손을 도우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또다른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강찬아!"
"어, 태오야!"
추강찬의 우승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목격하자마자 바로 헌책방으로 달려온 박태오였다. 추강찬은 숙적 중의 한 명인 전청아도 이겼겠다, 기분이 몹시 들떠있는 상태였다.
"4강 진출 축하해! 패자부활전 가서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했을 때가 엊그제같은데 이렇게 우승후보로 성장하다니..."
"고마워. 이제 우승만 남았지?"
"당연하지. 굳이 효모까지 뽑아가면서 철판볶음하고 있는 걸 보면서 실수하지나 않을 까 조마조마했잖아."
"그건 밥을 넣어야겠자니 오리지널 제육볶음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아무튼 나도 조마조마했지."
"그래도 결국엔 진출했잖아? 나도 떨어지고 임경빈도 떨어졌는데. 어쨌든 이 기세를 몰아 이제 4강 리그전 우승 가즈아!"
박태오가 기합을 넣으며 팔을 힘껏 올리면서 말했다. 추강찬이 고마워했다.
"아무튼 내일은 학교 끝나고 너희 집으로 간다. 이번에도 4강전 대진표 뜨는 거 같이 봐야지?"
"응."
"아, 시간 좀 보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 나 학원가야되니까 먼저 간다?"
"어, 내일 보자!"
박태오가 손짓을 하며 헌책방의 자동문의 개폐와 함께 빠져나갔다. 마지막까지 작별인사를 하던 박태오는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대로 학원을 챙기면서 직행했다.

추강찬의 어머니도 추강찬의 우승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일이 꽤  많다고 하면서 창고정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추강찬은 받아들였다.

추강찬이 창고에 들어섰다. 반들반들하여 새것처럼 보이는 몇 년 전에 나온 책들부터 노랗게 바래서 곧 찢어질것만 같은 책들이 여럿 쌓여있었다. 이 책들을 패자부활전 끝나고 봤을 때는 인생의 쓴맛을 느끼며 허탈해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니 그 때 놓친 책들의 자태가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추강찬이 작업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였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간간히 들리는 책장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는 나름대로 훌륭한 독주를 완성했다.

추강찬이 계속 작업을 하던 도중 눈에 띄는 책이 보였다. 성경마냥 가죽커버로 덮여있는 그 책은 테두리에 노란색 덩굴같은 꾸밈이 있었고 가운데에는 마법진이 그려져있어 화려했다. 페이지 수도 두껍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딱이었다.
추강찬은 이 책을 어디선가 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패자부활전 때 자기 발등에 떨어진 쓸데없이 아름다운 책을 생각해내었다.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는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구나 싶었다. 수심에 담겨 고통도 느끼지 못했던 그 순간이 스쳐지나가자 추강찬이 살짝 웃었다.

추강찬이 표지를 자세히 보았다. 책의 제목은 딱히 없었다. 그래서 한 장 더 넘겨 첫 페이지를 봐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이 책은 세계십력을 발견한 최초의 마법단체 <세계마법위원회>가 찾은 정보들을 담았다.'
추강찬은 놀라면서 첫 페이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믿지 못해 눈을 비볐다가 다시 떠도 글씨는 그대로였다. 추강찬은 경외감에 빠지며 페이지를 넘겼다. 넘길 때마다 세계십력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또 어떻게 발전되었는지가 자세하게 쓰여있었다.
추강찬은 나중에 혼자서 편하게 읽기 위해 그 책을 슬쩍 옆에 챙겨두고 작업을 지속했다. 얼마 뒤 도와주는 것이 끝나자 추강찬은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책을 가지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추강찬이 집에 도달해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가 찾은 바로는 한반도에서 오행을 적용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씨는 부수에 나무 목자가 있어 동쪽 지방이나 봄철과 만나면 시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목은 금과 상극이므로 그에 해당하는 서쪽이나 가을과 만나면 시너지가 깎일 수 있다.'
"호오..."
추강찬이 감탄하면서 글을 읽어나갔다. 추강찬은 자신에게는 뭐가 적용될까 생각해보다가 자신의 성씨 추(秋)자에 불 화 자가 들어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중에 한 번 체크해봐야겠다고 추강찬은 속으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이 다음 페이지는 제팔력에 관한 글이다. 그러나 민간에 공개하면 너무 위험하므로 공개하지 않고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다음 페이지에는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개의 주문만 공개하며 그것으로만 설명하겠다.'
추강찬이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십력들 중 제칠력과 제팔력은 빈칸으로 남아있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숫자에 끼워맞출 단어가 없어서 빈칸으로 남겼다고 생각해왔는데 이걸 보니 그 생각이 깨졌다.

추강찬이 제팔력의 진실을 보려던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추강찬은 서둘러 그 책을 책꽂이 한 구석에 꽂아두고 인터폰을 보았다. 화면은 박태오의 얼굴로 가득했다. 추강찬은 바로 현관문을 열어 박태오를 맞이했다.
추강찬의 방에 들어온 박태오는 바로 노트북을 켰다. 대결장의 위치, 대결주제, 대진표 등을 보기 위해 홈페이지를 켰고 바로 클릭했다. 로딩되는 동안에 잡담을 하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로딩이 끝나자 홈페이지에서 글이 떴다. 글은 다음과 같았다.
'제2회 전국학생제육력대회
장소: 서울 서초지부 (자세한 주소는 세부공지 참조)
대결주제: 랜덤, 당일고지
대진표: 1경기 추강찬vs조정수, 2경기 주연재vs김초은, 3경기 김초은vs조정수, 4경기 조정수vs주연재, 5경기 주연재vs추강찬, 6경기 추강찬vs김초은'

박태오가 모니터를 보면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자신이 조사한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얘네들 어떤 애들인지 알려줄까?"
"뭐, 그러던가."
추강찬이 내심 흥미를 보였다.
"일단은 조정수는 강원도 지역예선 3위였어. 그런데 3위인데도 이 중에서는 가장 점수가 낮아. 그러니까 얘는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거지."
박태오가 1경기 글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리고 주연재는 서울 지역예선 1위. 너한테 지고 패자부활전으로 올라온 애야. 너라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박태오가 손가락을 내리면서 5경기를 가리켰다. 추강찬은 속으로 동료애를 느꼈다.
"그리고 김초은은 인천 지역예선 1위. 이 중에서는 유일하게 패자부활전으로 올라오지 않은 사람이니까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추강찬이 속으로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다. 역시 누구나 인정하는 다크호스였고, 그녀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니 더욱 심장이 쪼였다.
"봐, 다들 지역예선에서 1위 아니면 3위잖아? 그래서 내가 몇 개 조사를 해왔지. 예를 들면 대회 장면을 보면 조정수가 가장 필사적이지 않았었더라. 그리고 특기는 제오력이랑 제이력이랑 제일력."
추강찬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조정수 빼고 모두 이 대회의 음모의 주요 인물들이니.
"그리고 주연재의 특기는 제영력이랑 제삼력이랑 제구력이랑 제이력이랑... 그냥 제오력 빼고 다 잘한다고 보면 돼."
추강찬이 감탄했다. 그의 유일한 동료의 실력을 들으니 한 층 의지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초은은 거의 다 잘한다고 보면 돼. 제영력이 처참하지만 나머지는 전부 탑클래스야."
추강찬이 긴장했다. 추강찬의 생각보다 그녀의 스펙은 훨씬 높았다.
"그래도 너는 잘 해쳐 나가겠지. 너는 전라북도 지역예선 1위고 주연재도 꺾었었잖아."
그래도 추강찬은 계속 생각했다. 추강찬은 지역예선 우승자라지만 제육력, 제영력, 제구력, 제이력만 잘했다.  그것들 빼고는 전부 처참한 상황이었다. 제삼력이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그의 제이력 수준으로 올라오긴 했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얼마 뒤 박태오가 나갔다. 추강찬은 아직까지 켜져있는 노트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펼쳐질 6개의 대결이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예정이었다.

추강찬은 꽂아둔 책을 다시 펼쳐 제팔력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 페이지를 폈다. 어쩌면 필살기로 써서 김초은이나 전청아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추강찬은 자신이 영창을 담당하는 제영력에는 자신이 있으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추강찬은 제팔력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페이지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