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그대가 이해해야 할 사항이 있다. 내가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 그대들의 윤리관이 내 머리속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갖고 가던, 가게 밖에 내어 둔 생선들도, 지금은 발톱조차 대기가 꺼려진다. 이걸 훔치면 가게 주인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게 아닐까, 훔치다 놓치게 되면 그 뒤는 어떻게 되나 하는, 소위 인간들이 말하는 '양심'이라는 것이 나의 행동을 지배한 것이다."


 "그거 참 바람직한 변화네. 그런 녀석이 남의 집을..."


 "그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기준이라는 것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를 쳐다보는 나비의 눈에는, 측은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인간과 고양이라는 종족의 차이도 까맣게 잊은 채, 마치 시험 답안에 대해서 지적을 받은 학생처럼 입을 꽉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전, 갑자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짐을 깨닫고, 그대들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끝없이 들어오는 지식의 양에 놀라고, 그것을 내가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쥐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멈칫하는 나 자신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연한 듯이 잡아먹었던 쥐들의 움직임에서 측은함이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날부터, 식사를 전폐하고 삼 일 동안 번뇌에 빠졌다. 어떻게 나는 저 작은 생명체를 먹을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까지 그래오지 않았던가, 왜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계속하여 고민했다."


 나비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존재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해 왔고, 현재 내가 낸 결론은 이러하다. 내가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나에게 지성이 생긴 이후. 하지만 내가 고양이들 중에 정말 특별한 존재이기에 내 스스로 지성이 발현한 것이라면, 내가 내 스스로의 본성을 부정해서는 아니된다. 나에게는 버려진 음식을 주워먹고, 살아있는 생명체로 포식을 하던 그 이전의 기억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으니까. 그러므로, 나의 이 동족들과 다른 지적 수준은 누군가에 의해서 덧씌워진 것이고, 그것이 내 행동과 생각에 족쇄를 달아놓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그대에게 고한다. 내가 어떤 실험에 의해서, 혹은 어떤 다른 이유로 이렇게 되었다 한들 나는 고양이다. 절대로, 나 자신을 인간과 동일한 존재라 자처하지 않겠다. 그대들, 인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내가 고양이라는 본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흐릴까 걱정하고 있지.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나는 고양이다. 그대와 주군의 앞에서만 사람의 말을 꺼내겠지만, 나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다. 고로, 고양이로서 나를 대해 줬으면 한다."


 긴 연설 뒤에 찾아온 것은 예정된 침묵이었다. 그리고 질문은 없었지만, 나비는 굉장히 결연한 듯한 표정으로 나의 대답을 촉구하고 있다. ...이거 참, 뭐라 얘길 해야 돼? 아침 댓바람부터 철학 수업을 듣게 될 줄은 몰랐네. 그것도 내 집에서, 고양이한테. 마치 빨간약을 먹으면 진실을 보게 된다는 그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제 리돌이 이 녀석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들은 게 지금에서야 공감이 간다.

 뭔가 대답을 해 주긴 해야 되는데, 방금 이 녀석의 말에는 한 5분쯤은 생각해야 답해 줄 말이 생각날 성 싶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에도, 나비는 자신의 할 말은 일단 다 했다는 듯 창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내 대답이 나온 것은 시계바늘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움직인 후였다.


 "그래... 어쨌든 너는 고양이로서의 너 자신을 지키고 싶다는 말이지?"


 나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내 집에서 무언가를 훔쳐먹는 것도 고양이니까 그렇다 이 말이여?"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너를 다른 고양이들이 먹을 걸 훔쳐갈 때 처럼 대해도 상관 없다 이 말이지?"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옆에 놓여 있는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나비는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단지 털을 세우며 내 동작을 주시할 뿐이었다. 


 "죽어라, 이 도둑고양이 놈!"


 내가 아직 무협지에 출연하려면 멀었나 보다. 보통 영화나 소설 같은데서 보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격이 상대의 허리춤을 꿰뚫고 지나갔네 어쩌네 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내 빗자루는 그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것도 캐치볼 수준의 속도로.

 목표물은 이미 내 빗자루의 느릿한 궤도 위로 점프한 지 오래였다. 점프한 동작 그대로 식탁 위에 착지한 나비는, 나에게 하악질을 해대며 고성을 질렀다.


 "무슨 짓이냐!"


 "니가 고양이 처럼 대해 달래매, 임마!"


 "아니 그건 지금 이런 식으로 대해 달라는 게 아니라..."


 "이거 보게? 사람말 하는게 벼슬인 줄 아냐? 어디서 말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주워 섬기면서 자기 편한 것만 챙기려 들어?!"


 말은 말대로 계속 하면서, 나의 강철도 베어 넘길 듯한 날카로운... 아니, 말은 똑바로 하자. 무디디 무딘 빗자루질은 계속해서 먹잇감을 찾아 댔고, 나비는 계속해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나와 함께 우리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그만 두어라, 인간이여! 지금 날 죽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고나 있는 거냐?!"


 나는 잠시 혼이 서린 빗자루질을 멈추고 저 녀석이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들어 주기로 했다. 빗자루를 마체테처럼 들고 헐떡이는 숨을 몰아 쉬는 인간과 벽에 X파이더맨처럼 붙어 있는 새끼고양이의 사이에는 마치 정글에서 사냥꾼과 맹수가 마주친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휴, 니가 없어지면, 그래, 무슨 일이, 헉, 일어나는데?"


 나비는 잠깐 눈을 돌리더니, 머뭇거리면서 대답하였다.


 "뭐, 고양이 한 마리가 지구에서 사라지겠지."


 "...뒤져어엇!"


 홧김에 집어 던진 빗자루는 벽면을 강타할 뿐이었다. 나비는 흡사 거미같은 모습으로 벽면을 타고 오르다가... 마치 거꾸로 기는 모양새로 천장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집 천장이 저렇게 붙기 좋은 구조였나? 엑소시스트여?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사이에, 나비는 들어왔던 그 곳으로, 리돌이 아직도 자고 있는 그곳으로 몸을 감추려 하였다. 저, 저 도둑놈 도망간다!

 그 때,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 떠나려는 아이디어를 붙잡아 혓바닥에 후려쳤다.


 "야! 리돌! 밥먹자!"


 "우우웅-"


 "캬아앙!"


 천장의 문짝 대용인 루비의 포스터가 거세게 열리면서, 언제나 배고픈 달나라 소녀가 침대 위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하품하는 소녀의 아래에는, 기절한 듯 보이는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뻗어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리돌은 '떠서' 잔다. 마치 바닥과 자신의 몸 사이에 공기로 된 매트리스라도 달아 놓은 마냥. 본인이 공기를 차단하고 중력을 어쩌구저쩌구 설명을 해주기는 했는데 저놈의 번역기는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마치 이집트 석관같은 침상 위에서 공중부양수면을 하는 진기명기를 보고 나서, 나 역시 침구류를 더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저 에어쿠션은 리돌의 주특기(?)인 비행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능력으로 보인다. 리돌이 쓰는 저 공중부양침낭은, 분명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 주변에 손을 갖다 대면 마치 이불처럼 반탄성이 느껴진다.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 아주 부드러운 힘이. 그래서 매일같이 천장에서 아무렇게나 떨어져도, 리돌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고, 덕분에 그 힘에 같이 밀려 침대로 떨어진 나비는 공기 이불과 진짜 이불, 두 이불 사이에 낑겨서 마치 부잣집 마룻바닥에 놓인 호랑이 가죽마냥 축 늘어져 있다. 접힌 곳 없이 사지가 쭉 펴진 것으로 보아, 어디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도 도둑고양이 하나 잡겠다고 임기응변으로 리돌을 소환하긴 했지만, 내 눈앞에서 피칠갑을 보기는 싫으니까.


 "밥주세요, 민재."


 리돌의 번역기를 거치지 않은, 나름 단아한 목소리가 졸음을 싣고 내 귀에 기어 들어온다. 외국에 나가면 사람이 가장 많이 듣고, 가장 필요한 말부터 입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단 욕부터 알아듣게 되는 거고, 가장 먼저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안녕 예 아니오 인 것이다. 허나 이 녀석에게는 밥주세요가 가장 먼저였다. 


 "그 전에 리돌, 밑에 한번 볼래?"


 에어쿠션에 누운 상태 그대로 졸린 눈을 비비며 자신의 허벅지 밑을 바라본 리돌은, 깜짝 놀라서 공중에 뜬 상태 그대로 옆으로 굴러 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납작해 보이는 나비를 보고서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리돌은, 서둘러 공중침대를 해제하였다. 리돌이 침대로 아주 살포시 떨어지는 그 때, 다시 나비의 모습은 입체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잽싸게 그 녀석의 몸을 박스로덮었다. 

 리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번역기를 켰다.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민재?"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박스를 테이프로 봉하며 대답하였다.


 "기다려, 시켜볼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