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잠깐. 너가 방금 한 말은... 지금 내가 너한테 준 밥을 이 녀석한테 주겠다는 거야?"


 리돌은 그 말에는 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나는 민재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은 나비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리돌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부탁합니다. 나비가 우리집에 오도록 하십시오."


 말을 다 들은 나비 녀석은 엄청난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식탁 위로 내려가서 마치 온 몸을 던지듯이 리돌에게 절을 하였다.


 "주군의 하해와 같은 도량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도 같습니다! 주군을 모시기로 한 저의 결심은 역시 틀리지 않았습니다. 저같은 미천한 몸에게 이리도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주군이시여."


 잘들 한다, 잘들 해.  왜 내 앞에서 이 고양이는 사극을 찍고 있는가. 갈수록 이 집에서 내 의견은 왜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가. 내가 보증금 내고 내가 월세내는 내 집에서 내 할 일도 내 맘대로 못하는가.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진짜로.

 어느 샌가 다시 나비는 리돌의 품 안에 들어와 있었고, 마치 나에게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만 나쁜 놈 된 것 같잖아, 이거?! 나는 애써 그 눈빛을 뿌리치고서는, 집주인으로서의 마지막 발악을 내뻗기로 하였다.


 "아, 일단 그 녀석한테 일단 더 밥도 못 준다고 얘기했고! 너가 니 돈 벌어서 어떻게든 먹이겠다면 상관 없는데! 더 이상 나한테 뭐라 요구 하지 마라, 알겠지?!"


 내가 화내면서 빽빽대는 모습이 저 두 녀석한테는 그렇게 인상적으로 와닿지 않았나 보다. 두 녀석 다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보면. 아아, 모르겠다. 이젠 진짜 모르겠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서로가 없이는 죽고 못 살 것 같은 한 여자아이와 한 고양이를 무시하고서는 아까 찢어 놓은 박스더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되어 가려던 찰나,


 "나비, 고양이는 말할 수 없다는 게 사실입니까?"


 폭탄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사실 저거에 대해서는 내가 먼저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성이 터져나가는 통에 물어보지 못했었는데, 리돌이 좋은 타이밍을 캐치해서 물어봐 준 것이다. 나도 대체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하여 고개를 돌려 둘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리돌의 말에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주군."


 리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나비가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나비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저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말해 두었습니다만... 저도 제가 어째서 인간들과 같은 지성을 갖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저도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여느 다른 고양이들과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군을 만나게 되었고, 그 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주군과 같은 분을 옆에서 보필하며 당신의 길을 올곧게 관철시키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저는 그리하여 오랜 야인 생활을 접고, 주군의 뒤를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말 돌리는 것 보소. 아까 나한테 말한 것 처럼, 나비 녀석은 자기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나 보다. 나는 더 말이 이어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궁금한 사항만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어차피 중요한 건 다 이야기 한 것 같으니.


 "잠깐, 잠깐. 그럼 둘은 어떻게 만난거야?"


 "우리 집의 계단에서 만났습니다."


 "내가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오르막길도 오르지 못하여 그 중간에 지쳐 쓰러져 있었을 때, 누군가의 따스한 그림자가 나를 덮는 것이 느껴졌다. 그 때가 주군과 나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마치 기본적인 문장 하나를 주고 작문을 해오라는 숙제를 보는 것 같다. 뭐, 만남 자체는 여느 집 아이들이 길고양이를 주워오는 과정하고 그렇게 다를 바는 없구먼. 난 또 나비 녀석이 길 중간을 막고 통행세를 요구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했었구만. 저 녀석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기도 했고.

 어쨌든 나의 주거권을 다시 한 번 침해하는 쪽으로, 오늘의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어제의 이야기와 별 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오늘 이 녀석이 우리집에서 도둑질을 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는 두리뭉실하게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반응은 뜨거웠다. 생각보다 이상한 곳에서.


 

 "우와, 민재 씨. 고양이 키워요?"


 "그냥 집에 들락거리는 도둑고양이입니다."


 가르랑거리던 나비의 눈빛이 순간 싸늘해진다. 하지만 뭐 어쩌랴. 이 녀석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기본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다. 고양이니까. 자기가 국과수나 국정원의 실험대에 오르고 싶지 않다면 당연히 조심해야 할 문제다.

 다음 날 아침, 성희 씨가 왔다. 성희 씨는 언제나처럼 우리 집에 먹을 것을 주러 왔다가, 나비를보고서는 표정이 함지박처럼 밝아졌다. 그러고서는 그대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는 기계로 변신했다. 오늘 성희 씨가 갖고 온 음식은 뵈프 부르... 뭐라던가 하는 거였는데, 정확한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분명 한 번 듣고 외울 수 있을 만한 이름이 아니었다. 와인으로 만든 소고기음식이라던데, 아직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이라 맛도 잘 모르겠고. 여하간 성희 씨의 능력의 한계는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이런 음식은 어디서 배워서 만드는 거야?!


 "그래도 집에서 밥을 주니까 이렇게 오는 거 아니에요? 민재 씨 리돌한테 하는 것만 봐도 알았지만, 진짜 다정한 사람이네요."


 "하하하하하하."


 웃음기 하나 없는 웃음. 답변의 목적도 아니고, '아니올시다' 라는 말을 하고는 싶은데 딱히 부정을 할 수는 없을 때 나오는, 그런 웃음. 물론 이 녀석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은 맞다. 리돌이 밥을 주니까. 하지만 여기에 내가 관여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 뭐, 하지만 성희 씨가 그렇게 여기신다면야,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물론 이 부분에서 나비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왜냐? 말을 못 하니까. 무언가 말을 하고 싶다는 표정으로 코 아랫부분을 그렇게 씰룩대 봤자 소용 없단다, 얘야. 어차피 너는 그렇게 계속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어떻게 보면 성희 씨가 쓰다듬어 주는 게 엄청 기분 좋아서 나오지 못하는 걸수도 있겠다.


 나비는 쓰다듬 공격에 골골대면서도, 온 힘을 다하여 리돌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아마 자신이 정신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군의 손길이 필요한 듯해 보였다. 하지만 리돌은 그런 나비의 눈길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눈 앞의 냄비에만 시선을 집중할 뿐이었다. 니가 모시는 주군이 이런 사람이에요. 


 언제나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몇 마디 더 나눈 후, 성희 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나가기 직전까지 나비를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성희 씨가 그렇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인줄 몰랐네. 성희 씨가 돌아간 직후, 나비는 살짝 질렸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털고서는, 혓바닥으로 자신의 몸을 단장하기 시작했다. 


 "후, 이렇게까지나 환대를 받을 줄이야. 내 몸이 너무나도 노곤해졌도다. 역시 너무나 융숭한 대접은 받는 입장에서도 피곤한 법이군." 


 나는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게 대접을 받은 게 아니라 너가 대접을 했으니까 그렇겠지. 어떻게 사람이 들어오자 마자 그렇게 다리에 부비고 앞에서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떨고 있냐?"


 "이 몸이 그렇게 저자세를 취함으로서 이 몸이 모시고 있는 주군의 격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몸은 주군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감내할 수 있다."


 "아, 예. 그러시겠죠."


 나는 나비의 대답을 대충 흘리면서, 접대용으로 내어 놓은 과자와 성희 씨가 갖고 온 냄비를 부엌 쪽으로 치우러 이동하였다. 나비는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오르며, 나의 뒤를 따라 오며 말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