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무것도 다른게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야밤에 내가, 저녁 대용의 두유를 사러 멀리까지 나가는 일을 제외하면. 


"너무 멀리나갔나? 나갈 때는 시간 휙휙 가더니..."


왜 올 때는 이렇게 길이 멀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가볍게 산책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근처 편의점을 건너뛰고 동네 다리까지 건너 멀리 나갔는데, 돌아오는거 생각보다 귀찮네.


이럴 줄 알았으면 편의점에서 만화잡지라도 하나 사서 읽으면서 올 걸 그랬다. 거기 나오는 히어로의 검은 채찍같은 거 쓸만해 보이던데 집에서 연구해볼까. 




"어라?" 


내 귀에 잡히는 금속 부딫히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 강변 근처는 언제나 조용했다. 강물이 깨끗하지 않아서 산책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소리는 어딜봐도 산책 나가는 사람의 소리가 아닌------


"흐엑." 


집채만한... 돌 덩어리가... 왜 나한테 날아오냐!? 페이퍼 나이프, 아니 없지 일단 피해야------


[콰아앙!!]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살긴 살았다. 돌덩어리가 내 바로 앞에서 멈추었으니까. 돌은 그대로 옆으로 치워져 강으로 날라가 잠겼다. 그 뒤에서, 누군가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하얀 눈동자와 머리칼의 소녀. 복장은... 교복? 많이 개조되어 있지만 우리 학교 교복이라는 것은 간신히 알아볼 수 있겠다. 우리 학교... 그러고보니 3학년생 중에 하얀 머리칼의 미인으로 유명한 선배가 있다고도 들었는데...




"괜찮니? 다친 곳은 없구나. 레이나, 이 아이를 지키고 있어줘."

"알겠습니다."


어느샌가 내 뒤에는 금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똑같이, 개조된 학교 교복을 입는데다, 손에는 하얀 검을 들고 있다. 기사같은 그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내 머릿속에 머물고 있는 건, '이건 무슨 상황이지.'라는 의문에 대한 필사적인 답 탐구다. 뒤, 방금의 소녀기사와 날아온 돌덩어리들에 이리저리 파인 강변. 앞, 나한테서 등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는 선배. 


그리고 위, 달을 가리는 검은 날개를 가진------ 저것들은 뭐야!?


"악...마...?"

"눈썰미가 좋은데."


내 중얼거림을 그녀는 받으면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다음부터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내가 그녀의 등 뒤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그녀가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단지 소녀의 옆에서부터 십수발의 화살같은게 나와서 악마 비스무리한 것에게 날아가 꿰뚫어, 소멸시켰다는 것만 알겠다. 




"저건 악마... 정확히 말하면, 악마의 힘에서 탄생한 잡병들이지."


단 한방으로 검은 무리들을 제거하자 뒤에서 스르릉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 소녀가 칼을 칼집에 넣은 거다. 그리고... 칼은... 사라졌다... 아니 방금 거에 비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놀랐지? 미안해. 사람 없는 곳으로 유인한다고 했는데, 설마 네가 있었을 줄이야."

"아... 네...?"

"어머, 당황하지 않는 모양이네. 기개가 좋아."


가만히 있는 내 볼을 차가운 손이 쓰다듬고 지나갔다. 저기... 너무... 가까운데요...? 소녀의 손이 한번 오가고, 내 앞에 검지가 천천히 들이밀어졌다. 그 모습은 생각보다 위험해서... 


'윽!? 위, 위험하달까... 왠지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데...' 




하얀 기운이 도는 검지가 내 코에 닿자마자 나는 다리가 풀려져 풀썩 쓰러졌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듯 누군가가 날 받쳐주는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 느낌조차 감상할 수 없었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두 사람의 말이 울렸다. 


"하마타면 위험할 뻔했네요. 트라우마라도 남지 않으려나."

"괜찮아. 오늘 일은 기억나지 않을테니까. 트라우마는... 이 아이가 악마를 또 만나지 않기를 빌어야지."


기...억? 무슨... 위...험... ...저...항... ...을... 했...




------거기에서, 내 의식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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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이라도..."


회장님이라고 불린, 백장발 소녀의 이름은 에인. 그녀는 왼손을 몇번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아니, 뭔가 기억조작 마법이 잘 안된것 같아서."

"설마 마법에 저항했다는 뜻인가요? 이 소년이..."

"아니, 확실하게 마법 자체는 통했을 거야. 다만 끝맺음이 시원치 않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말끝을 흐리면서, 몇번 손을 접었다 폈다 하며 방금의 마법 감각을 되새겨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기억조작 마법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에 에인이 사용한 것은 그냥 메이킹 필름 중간을 잘라내버리는 형식의, 매우 간단한 공정의 마법. 섬세하지 않은 그 방식은, 반대로 손에 남는 감각또한 거의 없다.


"뭐, 별거 아니겠지. 레이나, 그 아이를 집에 보내도록 해." 


에인은 그렇게 손을 털고 일어났다. 레이나, 라고 불린 금발 소녀는 그 즉시 자신과 비슷한 체구의 소년을 들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가 가자, 에인은 자신의 사역마들을 불렀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수십마리의 박쥐들은 여러가지 보조 마법들이 몸에 걸리자 몇무리로 흩어져서, 파괴된 잔해들을 원래대로 끼워맞추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쪽이 더 괴물같은지, 모르는 일이었다. 




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