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거리를 아미야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렇게나 많이 불던 바람이, 지금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미야는 여전히, 내게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모자를 꾹 눌러쓴 채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앞이 잘 보이기는 한 건지 걱정이 될 정도로 푹 눌러쓴 상태였다.


…마법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아미야의 곁에 있는 동안에는 바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을 이렇게 사용하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글쎄…. 마력이야 청하의 것을 사용하면 된다지만, 인간이 얼마나 마력을 잘 사용하는 지는 잘 몰라서 이렇다 저렇다 딱 잘라서 말해주기는 어렵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약간의 기대감을 가져도 되는 게 아닐까. 혹시나, 만약의 가능성이기는 한데 내가 마법을 잘 쓰는 체질일수도 있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런 요행을 바라기에는 지금까지 겪어온 일들이 일들이라 어떻게 될 지를 모른다. 필리아처럼 마법을 잘 쓰지 못할 수도 있다.


무턱대고 청하의 비늘을 이용해서 마법을 사용했다가는 폭발할 지도 모른다.


"혹시나해서 말하는 거지만, 너가 인간인 이상, 그리고 심장에 마력 기관을 만들지 않는 이상에야 무턱대고 마력을 쓰려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인간에게 마력이 어떤 식으로 작용할 지 모르니까."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하겠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막상 그런 일이 발생할 때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거야."


"…예."


아미야의 말에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여성의 몸으로 바뀐 것도 마력에 의해서 였는데, 직접적으로 마력을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다시 남자의 몸으로 되돌아가는 걸까? 아니면, 그냥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걸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이런 때일수록 낙관적으로 생각하라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우울한 생각은 멈추는 게 좋겠다. 그녀 말마따나 이런 생각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현재 상황에 대해 더 안 좋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차버리니.


"그래서, 혹시 마법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니?"


"지금은 없습니다. 마법이란 게 정확히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건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아예 기초부터 가르쳐야겠네."


"나중에, 어느 정도 마법에 대해 익숙해지면 이런 식으로 사용이야 가능하겠지만, 얼마나 배워야 할 지는 모르겠네. 오래 가르칠 생각도 없고."


"그렇습니까."


"너가 처한 상황이 딱해서 도와주는 것 뿐이란다? 흡혈귀는 어찌되든 상관없는 관계니까."


아미야는 필리아에 대해서는 딱 잘라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미야가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내가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내가 사람이니까. 사람이 아닌 다른 종족이었다면, 금향이 그렇게 친절하게 굴 리도 없었고, 달리 말하자면 금향의 카페에 들어가지도 못했겠지.


청하와 만날 일도 없었을 테고, 아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른 종족들처럼 무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을 지는 조금 궁금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만약의 이야기였다.


"…너가 인간이라고 도와주는 건 아니야."


"…그렇게 말하셔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네 신체에 마력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 인간이 아니더라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있고 말고."


아미야는 걸음을 멈추고, 뒤로 몸을 돌려 내 가슴, 정확히는 심장 부근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검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첫번째 이유로는, 내가 영혼을 볼 수 있으니까."


"영…혼입니까?"


"영혼. 인간에게는 참 어려운 말이겠지만, 영혼의 색으로 마력에 대한 적성을 알 수 있지."


"그럼, 제 영혼의 색은 어떻습니까?"


"흰색의 도화지와 같지. 아무런 색도 칠해지지 않은, 순백의 종이.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 봐."


경이롭다는 듯이 나를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표정도 얼핏 보이는 아미야가 나를 본다.


"정말, 마력이 없는 종족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예?"


"흰색에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하나의 마법에 특화된 재능이라는 소리야. 아니면, 구역을 나누어 색깔을 칠하듯이, 여러 종류의 마법을 배울 수도 있고."


아미야의 눈빛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이 내게도 전달될 정도였다.


"두번째는, 아예 마법이라는 법칙을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다는 것."


아미야는 접고 있던 중지 손가락을 피며, 내 눈을 쳐다봤다.


"마력을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그리고. 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주로 사용하는 쪽으로 특화되도록 적응하는 경우가 많아."


"금향의 마법이나, 청하의 주술처럼 말입니까?"


"…그건, 그냥 예외라고 받아들이면 편해. 드래곤의 마법이나 용의 주술은 가짓 수도 많을 뿐더러, 이렇다 저렇다 딱 나눌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두 손가락으로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 그었다.


손가락이 긋는 궤적을 따라, 허공이 갈라지며, 갈라진 틈 사이로 어딘지 모를 공간이 보인다.


어디에는 거대한 솥이 있었고, 어디에는 알 수 없는 종류의 꽃들과 약초로 보이는 풀들이 올라간 선반이, 어디에는 청하의 책장만큼 커다랗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건물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책장이 보였다.


"나는 보시다시피, 이런 공간에 특화된 마법을 주로 사용하다보니 다른 마법들은 그렇게 잘 하는 편은 아니야. 너에게 가르칠 정도는 되겠지만."


…잘 하지 못한다는 말이 왜 저렇게 믿음이 안 가는 걸까. 아미야의 기준으로 잘 못한다는 말은, 남들과는 다른 기준인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금향과 청하와 친하게 지내다보니 저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었다.


마법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는 나로서는 그런 추측만을 할 뿐이었다.


진짜로, 잘 못하는 편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이동하는 데 편해보입니다."


"편하기는. 공간을 지정해야되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이동하는 위치에 뭐가 있는 지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계산해야 되는 것들이 한가득이야."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길게 찢어진 틈으로 아미야가 걸어 들어갔다.


익숙하다는 듯이 들어가는 모습에, 나 또한 따라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게 안전한 건지 의문이 들어 쉽사리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아미야가 들어갔으니 안전한 게 맞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이 이어지는 도중, 틈 밖으로 아미야의 검은 팔이 나와서는 내 팔을 잡고는 그대로 잡아당겼다.


"거기서 뭐하는 거야. 안 그래도 바람 부는데."


"잠시 마음의 준비를…!"


강제로 틈 안으로 끌어당겨지며,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였던 것은 거대한 솥과 그 밑에 깔린 마법진이었다.


…크기가 크기라서 사다리가 솥에 걸쳐져있는 것을 보면, 사다리를 타고 휘젓는 모양이었다.


거대한 솥 옆에 그 안을 휘저을 정도로 충분히 길쭉한 나무 주걱을 보면 확실했다.


아미야는 주변을 둘러보는 내 모습을 보는 둥 마는 둥, 책장으로 걸어가서는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는 데, 어느 한 책을 꺼내서 한번 훑어보고는 내게 던졌다.


던진 책을 받고, 안을 펼쳐봤지만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책이었다.


"…혹시, 언어는 이해하고 있니?"


"…모릅니다."


내 말에 모자를 쓴 채로 머리를 긁적거린 아미야는 한숨을 내쉬며, 내 손에 들린 책을 채가서는 빠른 속도로 훑기 시작했다.


"정말로, 내가 이런 귀찮은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가르치시는 게 귀찮으셨다면, 굳이 하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귀찮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말이 세게 나갔지만, 아미야는 그렇게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귀찮아도, 인간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니까. 한번은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지. …금향 녀석이랑 청하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도 궁금했고."


그렇게 말하며, 씨익 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역시, 그 둘과 친구를 할 만한 성격이었다.


서로 비슷비슷한 사람, 아니. 종족끼리 모인다더니 딱 그 말이 맞았다.


어쩜 저렇게 비슷한 성격끼리 모였는 지.


내 생각도 모른 채, 책을 빠른 속도로 훑던 아미야는 탁. 하고 책을 덮고는 뒤쪽으로 휙 하고 책을 던져버렸다.


바닥에 미끄러지던 책이 어딘가에 부딪혔는데, 거기에는 그렇게 던져진 책들이 쌓이고 쌓여서 산을 이루는 게 보였다.


얼마나 정리를 안 하고 살았으면 책이 저렇게 쌓였는 데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건지. 내 방도 아니었는 데도 내가 정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 정도였다.


…저걸 정리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들려나.


"저기는 무시해. 귀찮아서 정리 안 하는 것도 맞지만, 다 읽은 것들이야."


"…그래도, 정리하지 않으면 통행에 걸치적거리지 않습니까?"


"딱히? 걸어서 이동하는 것보다 그냥, 공간과 공간 사이를 연결해서 이동하니까."


그러고보니, 아미야는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래도 뭐,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니까 대충이라도 정리해둘까."


아미야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산처럼 쌓인 책들 밑으로 선이 그어지며 옆으로 쫙 찢어지더니 그 안으로 책들이 떨어졌다.


어디에 연결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라지니 거기에만 먼지가 쌓여있지 않아 깨끗한 바닥이 보였다.


"청하 녀석의 도서관에다가 던져두면 알아서 정리하겠지."


"괜찮습니까?"


"괜찮고 말고. 오히려, 거기서 일하는 녀석이라면 좋아할 걸? 읽을 것들이 더 생겼다면서."


…확실히, 그럴 지도 모르겠다. 손님이 왔을 때에도 책을 읽고 있었던 직원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오른다.


아마, 오늘도 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직원이 어떻게 행동할 지 예상이 되었다.


"그러면, 저기를 비워놨으니 저쪽으로 갈 까."


"알겠습니다."


아미야는 손가락으로 책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곳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먼지가 쌓인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바닥을 손으로 대충 훑어내고는 털썩 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충 앉아. 서서 이야기하면 피곤하니까."


"예."


아미야와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앉았더니, 아미야가 손가락을 튕기니 코 앞까지 옮겨졌다.


"거기 앉아서 뭐하게."


"…예?"


"애가 귀염성이 없어서는. 예가 뭐야 예가. 좀 더, 편안하게 말하면 안 돼? 듣는 내가 이상해지네."


"…저도 노력은 했습니다만, 잘 안 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무튼, 복주머니나 꺼내봐."


아미야의 말에 주머니에 있던 복주머니를 꺼내어 앞에 놓으니 그 안을 뒤적거리고는 청하의 비늘을 내게 내밀었다.


"쥐고 있어."


"예."


내밀어진 비늘을 손에 쥐고 있으려니, 차가운 느낌이 손에 맴돌았다.


물을 만지는 것 같으면서도, 비늘의 딱딱한 촉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비늘을 쥔 내 표정이 이상해졌는 지 아미야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아하핫! 너, 그 표정은 절대 청하 녀석에게 보여주지 마렴. 아까랑은 다르게 진짜로 상처받을 지도 모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지는 말고. 나중에 보여지더라도 사과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럼, 일단 어떻게 마력을 움직이는 지에 대해서부터 알려줄테니까 잘 기억하렴."


"예."


"…예라고 하지 말고, 좀 더 편안하게 대답했으면 좋겠는데."


"…알, 았어요…."


아미야의 말에 어투를 바꿔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아니다, 됐다. 그냥 평소대로 말해."


"…알겠습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말을 편하게 하는 게 힘들었다. 그건 남자였을 때에도 그랬고, 여자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대화할 때에도 이랬기에 한번 바꿔보려고 했지만, 웃음이 터진 이후로 더더욱 이렇게 말하게 되었고.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 두고, 당장 해야하는 일에 집중하자.


아미야가 비늘을 쥔 손을 감싸며 마법의 기초에 대해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