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개도 꿈도 의지도 없는 무일푼을 먹여주고 재워줄

부모는 여기에 없다, 가업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다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 “


스무 살이 되던 첫 해 겨울, 나는 홀로 서울에 상경했다.

아니 쫓겨났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대학도 가지 않고 꿈도 가지지 않은 채, 한심하게

살아만 있을 뿐이라면 일찍 가업을 이어 일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나는 정말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이유들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말하다가 결국에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제 막 학교라는 지독한 공간에서 해방되었는데

엄격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스무 살을 보내기는 너무나도 싫었다.

가업이라는 명목으로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건축업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에 속하는 직종이다.


내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노가다 반장’이다.

좋게 포장한다면 ‘소규모 건축업체 사장’쯤이 될 것이다.

지저분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을

인솔하며 건축현장에서 작은 원룸 등을 직접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일이다.







회사가 작은 만큼 사장이라고 특별 대우받지 않는다.

내 아버지는 항상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 뛰어나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일했으며


정장을 입고 있을 때에는 나와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거래처 바이어들에게 몇 번이고 머리를 숙여왔다. 


그런 아버지를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더운 날 밖에서 하는

육체노동보다는 시원한 사무실 안에서 있어보이게 일하는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대학도 가지 않은 주제에 무척이나 배부른 소리를 하고 앉아있는 건지, 어이가 없어서 스스로도 기가 찼다.


멍청하리만치 생각 없는 스스로의 행동 덕분에, 

나는 아버지가 지어놓은 서울 변두리의 원룸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물론 월세는 내가 직접 벌어서 내야 한다. 


원룸 월세 보증금과 한 달 치 생활비를 일시적으로 내주는

대신 아버지는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첫째. 자급자족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경우.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을 배워 가업을 이을 것.


둘째. 가업을 잇는 것과 상관없이 1년 내에 집으로

돌아와 납득될만한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설명하는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면 못난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분하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방침이었다. 


나는 도저히 구제의 여지가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기회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가진 것들의 반의반도 가지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내가 얼마나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배를 불리며 사치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는지,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스스로가 원망스러워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지독하게 배부른 돼지 같은 인간이었다.


만약 누군가 이런 나를 사랑하게 되는 병에 걸린다면,

그건 어떤 저주보다도 독하고 끔직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선택해야한다. 나를 구원해준 그녀를 위해.

나를 믿고 선택해준 그녀를 구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