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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의 시간은 흘렀다. 리비아에서 건국 40주년 열병식에 참석도 안해 반역자로 낙인찍히고, 한국 스파이와 연루되어서 한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나의 아내는 결국 베이다에서 추방되어 이집트 콥트교인들이 많은 토브룩에 정착했다.


 나는 억울했다. 한국 정부가 스파이를 보낸 것인데 왜 우리 가족이 불가촉천민이 되어야 하냐고?! 하... 그래도 내가 추방당한건 아니니까 교통체증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간 나의 아내는 좋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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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가 시끄러윘다. 이태원 모스크에서는 튀니지 노동자들이 일어섰고, 벤 알리 대통령의 사진을 태우기 시작했다. 튀니지 대사는 얼굴이 신발보다 못했고, 자체적으로 대사를 세웠다.


 결국 경찰이 출발했다. 노동자 40명은 훈계를 받았지만, 나는 이게 시작이니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후 2주간 모스크 행진은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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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타니 쪽 아랍어 발음이 들려왔다. 카사블랑카, 라바트 등 모로코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폭군 무함마드 6세는 아버지 하산 2세의 반만 따라가라! 혹은 녹색행군을 중단해라! 시위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 경찰 대응은 달랐다.


 즉시 그들을 무력으로 검거했고, 시위 허가를 취소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때 모로코 대사관에서 연기가 났다. 무단으로 탈옥하고 그들은 대사까지 죽였다. 이곳이 서울 한복판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다. 중국, 일본도 똑같다고 한다. 이제 곧 나의 조국 리비아의 운명을 알게 되었다. 나는 즉시 주일본 니제르대사관에 도피 요청을 했고,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