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러를 통해 명령을 받은 리프트 로봇이 호텔 주차장에 세워진 밴에서 나와 천천히 움직였다. 원래 사람이 깔려있을 때 잔해를 들어올려 꺼내는 용도지만 이번에는 다른 용도로 쓰일 것이었다.

 

안드로이드는 또다시 아파트 쪽에서 돌격해 공격을 시작했다. 더 가까이 있는 나를 노리고 있었다. 서류가방은 이미 두동강이 나서 전기검을 막기 힘들었다. 바닥을 보니 카메라와 조명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바로 윗부분이 깨진 조명을 집어들어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막아냈다. 조명의 기다란 부분이 충격에 휘었다. 무술을 배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명의 주인 분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도 안드로이드의 공세가 계속되었다. 검과 조명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리프트 로봇은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다. 타격 공세를 받는 조명은 이제 이상한 모양으로 휘어버렸고 나는 다시 옆에 있는 다른 조명을 집어들어 전기검을 막기 시작했다. 손을 통해 격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안드로이드가 다시 40초 가량이 지나자 아까랑 똑같이 아파트 쪽으로 후퇴했다. 이번에도 낙뢰생성기의 사정거리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거리였다.

리프트 로봇이 아까 명령한 대로 기울어진 가로등 쪽에 멈춰섰다. 가로등이 기울어진 쪽에 보도블럭이 튀어나와 아슬아슬하게 고정되어있었다. 시즈오카 씨는 백화점 쪽에 바짝 붙어있으니 상관 없고, 기자들도 최소 60m는 떨어져있었다. 인명피해의 위험은 없었다. 이제 운명을 가를 도박을 할 때였다.

 

낙뢰생성기의 최대 사정거리에서 약간 안쪽에 서서 다시 컨트롤러를 잡았다. 앞으로 15초 안에 성공시켜야 했다. 컨트롤러를 리프트 로봇의 팔을 튀어나온 보도블럭 밑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조금씩 팔을 들어올렸다.

안드로이드는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가로등의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고 있을 때가 기회였다.

리프트 로봇이 보도블럭을 들어올리면서 가로등이 조금씩 아파트가 있는 북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대충 어느정도 움직였다 싶을 때 나는 한 발짝 뒤로 움직였다.

아파트 방향으로 약간 기운 가로등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가로등을 변수에서 제외하고 있던 안드로이드는 위치가 바뀐 낙뢰생성기에서 나온 번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안드로이드가 지지직거리더니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결국 성공한 것이다.

드디어 한 놈을 해치웠구나 하는 생각에 다리가 풀렸다. 정지버튼을 미처 누르지 못한 리프트 로봇이 마침내 가로등을 넘어뜨렸다. 낙뢰생성기가 가로등 위에 묶인 채 바닥에 떨어지며 파편이 튀어나왔다.

 

기자들과 시즈오카 씨가 이 장면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 기자들은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이게 무슨 일이냐'라는 당황스러움이 섞인 얼굴을 했고, 시즈오카 씨는 '이번에도 구해주시다니...'라는 듯한 표정을 내비췄다..

시즈오카 씨가 달려오더니 저번처럼 계속 감사인사를 쏟아냈다. 공개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워낙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이라 이번에도 얼굴이 달아오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어색함을 풀기 위해 화제를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캐슬골드 쪽의 최은준 씨랑 통신했다. 그쪽도 방금 막 해치웠다고 한다.

다시 안드로이드 추적기를 켰다. 5개의 점이 홀로그램 상에 표시되어 있었다. 모두 두 그룹으로 이루어져있었다. 2대는 백화점 안쪽에 위치해있다. 아마 다른 대원들 4명이 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3대도 한 곳에 몰려있었다. 나랑 시즈오카 씨가 바로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잠실주공아파트 5단지 530동 비상계단. 무너지다 만 듯한 공간에 저격수가 한 명 있었다. 전쟁의 시작을 알렸던 총성의 근원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