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 당신은 우리가 먹고 외출?"

 

 "그래. 외출이다. 외출."

 

 말 그대로 영혼없이 대답을 했다.

 나와 리돌은 지금, 심야를 관통하는 모든 야근인들의 친구 서울N버스를 타고 있다. 나와 리돌, 단 둘만을 태운 버스는 한강대교를 지나 강북으로 향하고 있다. 보통 이렇게 남녀 둘이서 같은 자리에 앉아서, 아무도 없는 심야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라면 무언가 야릇한 분위기라도 들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이 옆에 있는 하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지금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바라보는 것은 무언가 먹을 것에 대한 기대감이지 절대로 남녀가 한 자리에 있어서 생기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잠깐 혀를 차며 바라보다, 다시 서울의 야경으로 눈을 돌렸다.

 방금 전, 캐롤라인의 실종 이후, 나는 리돌에게 이제 슬슬 갈 시간이 아니냐, 모르는 남자 방에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 등으로 좋게 좋게, 쉽게 말해서 '나가라' 라고 권유하였다.  하지만 이 하얀 소녀는 번역기의 탓을 대며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아니, 지금까지 먹는 이야기나 농담 따먹기 하는 건 분명히 다 알아듣는 것 같은데, 이런 문장만 못 알아듣는다? 이건 분명히 그냥 핑계를 대고 내 말을 무시하는 거다.

 결국, 나는, 이 아이를 버리기로 했다.

 이 말만 놓고 보니 너무나도 쓰레기같지만, 나에게도 정당방위라는 것이 있다. 아니,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갈 곳 잃은 외국인 소녀는 아무데나 빌붙어도 된다는 조항은 없다.  이 아이가 정말 나이가 어리고, 누군가 사람의 손길이 정말로 필요한 것 같으면 나도 사람으로서의 호의를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지구에서 음식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음식다운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 경우가 예상됩니다."

 

 안다. 말을 못하는 것이 죄는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번역기가 시킨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업신여기는 느낌은 계속해서 내 속을 긁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면, 아무리 처지가 곤궁하다고 해도 사람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된다. 

 일단 계획은 이러하다. 현재 이 N버스는 도봉구 쪽으로 향한다. 다행해도 아직 리돌은 '버스'라는 교통수단이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에 대해서는 파악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리돌, 잠깐만 여기 앉아 있을래? 내가 무언가 갖고 올 게 있어서 그러는데.”

 

 최대한 자연스러운 어투로 이렇게 버스에서 절대 할 수 없는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하면,  그녀는  

 

 “알았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좋아, 여기까지는 예상 적중이다. 나는 잽싸게 교통카드를 태그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스에서 내렸다. 나의 목적지는 서울역 환승센터. 이 곳이라면 교통수단도 충분하고, 설령 다음 정류장에서 눈치를 채서 내리더라도 서울을 처음 온 사람이라면 이 곳에서, 그것도 밤에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자마자 뛰어서 길을 건너갔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교통수단을 잡기  위해. 하지만 오밤중에 다니는 버스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길거리에 보이는 차들은 굉장히 적었고 그 중에서 버스는 거의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소녀를 버렸다는 죄책감보다는 어서 이 곳을 떠야 된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택시기사님께 이야기했다.

 

 “일단 노량진역쪽으로 가주세요.”

 

 

 다시 한강대교를 넘는다. 시계는 12시를 넘어가고, 오늘따라 쓸데없이 밝은 보름달은 빌딩 숲 사이를 넘어간다. 라디오에서는 멘트를 넘겨 버리고 음악만을 틀어주고 있다. 그리고, 나의 죄책감은 상상 그 이상을 넘어가고 있다.

 정말 그 아이를 이대로 두고 가도 괜찮은 걸까? 아무리 경우가 없고 귀찮게 굴었기로서니, 지금 이렇게 버리고 가는 행위 자체가 정당화가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버리기로 결정한 것은 나다.

 나 자신이 결정한 일이다.

 내일 아침에 좋게좋게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을 수도 있는 문제였을텐데,

 내가 이 아이를 오늘 버리기로 결정한 거다. 지금.

 두 손으로 감싸쥔 머리통 사이로는 신음만이 흘러 나온다. 누군가를, 아니, 무언가를 볼 자신이 없다. 속절없이 고개 숙이고 한숨을 내뱉는 모습에 택시기사 아저씨는 무언가 착각을 한 모양이다.

 

 “손님, 술은 적당히 드셔야죠.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이렇게 드시면, 몸에 해롭습니다.”

 

 라고 말하고서는 내 쪽의 창문을 열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열대야의 기운에, 더운 바람이 내 뺨을 후려친다. 아니에요, 아저씨. 술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괜찮다고, 그만 두라고 이야기하려 하였지만, 이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하얀 여자아이 때문에.

 

 ‘... 찬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라디오에서는 DJ의 멘트 없이 계속해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저씨의 말에 홀렸는지, 술 먹은 것처럼 속이 메슥거린다. 밤하늘을 쳐다 보면 좀 괜찮아 질까. 나는 거대한 한숨과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미세먼지로 가득했던 서울의 하늘. 오늘은 쓸데없이 맑기만 하다. 빌딩 끝에 살짝 걸린 달빛에 별들이 계속해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 곳을 향해 떨어지는 저 하얀색 별똥별 역시.

 잠깐. 이렇게 가까이 날아오는 별똥별도 있었나?

 

 “으아아아악!”

 

 택시기사분의 비명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별똥별이라고 생각했던 그 어떤 물체는, 내가 타고 있는 택시 앞을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당연지사 기사아저씨는 피할 곳도 없는 한강대교 위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쾅! 쾅! 끼이이이... 쾅!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었던 수많은 차량들이 내가 탄 택시를 들이받았다. 첫 번째 추돌 때, 에어백이 터졌다.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에어백에 허우적거리다, 계속해서 2차, 3차 들이받는 차들의 충격에 정신이 계속 혼미해져 갔다. 몇 번의 충격이 더 왔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정신을 잃어갔다. 

 


 
 눈을 뜬 곳은 누가 봐도 한국이 아닌 꿈 속의 어딘가였다.
 언덕 위에 무지개색 꽃들이 참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바로 앞에는 자신이 락스타라고 광고하는 듯한 옷을 입은 기타리스트가 땅바닥에 누워 수 미터는 될 듯한 자신의 날개를 땅바닥에 질질 펄럭이며 자신의 베이스를 튕기고 있었고, 그 기타리스트 건너, 붉은색 셀로판지를 댄 것 같은 배경 뒤로 마치 잘못 구운 회갈색 빵반죽과 같은 괴물이 나를 보더니 무지개꽃밭을 무참히 짓밟으며 나에게로 뛰어오며 무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구체화되어가는 그 괴물의 얼굴은 리돌로 변해갔고, 그녀의 얼굴에서 예의 기계 안내 음성으로 외치는 소리는 단 하나의 단어만을 말하고 있었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으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났다. 몸 전체에서 식은 땀이 난다. 아무리 리돌을 내다 버린 것에 대해서 죄책감이 들었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다. 마치 죽어서도 괴물이 되 어 복수하겠다는 것 같잖아?!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흐린 눈을 비볐다. 눈을 뜬 바로 앞에는 빠른 속도로 꿀렁대는 검은 무언가가 있었다.

 정신을 아직 덜 차렸나? 손을 들어 내 뺨을 쳐 보았다. 철썩!

 

 아프다. 그럼 일단 정신은 들었다는 건데. 마치 꿈 속에서 처럼 내 눈 앞에서 일렁대는 이 물체는 뭐지? 갑자기 그 검은 물체는 나를 덮칠듯이 다가왔고, 나는 엉겁결에 앞으로 뻗쳐있는 손 그대로 그 물체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갑고, 내 손이 지나가는 대로 갈라지며,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그것은 물이었다. 

 

 물? 물이라고? 정신이 번쩍 드는 그 감촉에,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였다. 바로 왼쪽으로는 방둑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고, 저 멀리 기둥이 잔뜩 서 있는 대교들이 보인다. 그렇다면, 내 바로 아래, 손을 뻗어 파악한 물체는... 한강?!

 

 “으아아아악!”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명이 서울의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맙소사, 나는 지금, 믿기지는 않지만, 엄마야, 세상에, 엎어진 자세로, 한강 위를 날고 있다!

 

 “뭐야! 지금 어떻게 된거야아아아!!!”

 

 정신을 차리려고 보니, 젠장. 이렇게 무엇도 모르고 날아가고 있는데, 사태파악이 될까보냐! 다른 것은 모르겠고, 무언가가 내 허리를 붙들고 있는 감각이 느껴진다. 지금 무언가가 나를 붙들고 날고 있는 것 같은데, 머리 바로 위에 있는지라 어떤 것인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몸을 바둥거리며 어떻게든 진위를 파악하려는 찰나,

 

 “움직이지 마십시오. 움직이면 빠질 수 있습니다.”

 

 ...어제 오늘 지겹게 들었던 음성 안내 소리에 나는 진이 빠져 버렸다. 아아, 너였냐 라는 허탈한 한 마디와 함께.

 대자로 누운 상태에서 맞이한 제정신은 그다지 상쾌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까와 같이 끔찍한 악몽은 다시 꾸지 않았다. 이것은 이미 리돌한테 내가 구출되었다는, 아니, 잡혀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드십니까?"

 

 "그래....."

 

 정신이 든다고 대답은 했지만, 딱히 눈을 뜨지는 않았다. 눈을 떠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제 오늘 내가 겪었던 일이 그저 지독한 악몽으로만 끝났으면 좋겠다. 인간 성민재의 하루가 이렇게까지 길게 느껴진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눈을 감은 채로 손을 짚어 상반신을 일으켰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은 콘크리트의 그것이다. 아마 길바닥에 그대로 널부러트려 놓은 것 같다. 한숨이 먼저 나온다. 지금 내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것에 대한 항의를 하기 전에, 그리고 우리 집을 본거지로 삼기 위해 무단으로 가택을 침입한 것을 따지기 전에, 지금 당장 바로 확인해야 될 일이 있다. 나는 이마를 짚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리돌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자세를 바로 하고서는 눈을 떴다.

 

 "야, 그러니까..."

 

 없다? 분명히 아까 소리는 이 앞쪽에서 들렸는데, 땅바닥으로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아무런 사람의 기척이 보이지 않는다. 눈 앞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축대와 그 위에 무성하게 난 갈대밭만이 보일 뿐이었다.

 

 "여기입니다."

 

 소리는 뒤쪽에서 들려왔다. 

 

 그 곳을 쳐다본 순간,

 

 말문이 막혔다.

 

 태어나서 한강의 야경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나 싶다. 콘크리트 계단 단 하나 바로 밑에,  방금 전까지는 벽이라 생각되었던 한강이 커튼과 같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강의 파도는 바다와는 무척 달라 보였다. 풍랑 아래 모든 것을 묻어버릴 듯한 하얀 포말의 파괴적인 율동과는 대조적으로, 마치 비단이 바람에 휘날리듯 그렇게 고요한 움직임이 한강철교 밑을 지나고 있었다. 그 관능적인 꿈틀거림 너머로, 약간의 어둠이 강물과 육지를 가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생각보다는 듬성듬성 박혀있는 형광등 박힌 성냥갑들은 강 건너를 장식하고 있었다. 넋을 잃고 바라본 그 배경 한 중간에,

 

 내가 알고 있는 한 하얀 소녀가 떠 있었다.

 

 그녀에게는 날개도 달려 있지 않았다. 

 

 비행을 보조하는 그 어떤 기계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저, 공중에 서 있을 뿐이었다.

 

 리돌은 내가 정신을 차린 듯한 낌새를 보이자,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떠 있는 자세 그대로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강바람에 회색 원피스가 조용히 나풀거린다. 눈 앞의 이 광경이 왠지 모르게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이 아이는, 그냥 하늘을 날 수 있는 거다. 

 

 더 이상 꿈이라 여기기에는 오늘 안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뇌 안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강 위에 멈춰 있었고, 나는 잠시 넋을 잃고 그녀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때, 지금 가장 묻고 싶은, 이미 답이 정해진 듯한, 하지만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이 나도 모르게 입술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래, 너는 달에서... 온 거구나?"

 

그녀는 약간의 미소와 함께 대답하였다.

 

"나는 왔습니다. 달에서."

 

 아아, 그러시겠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마지막 말 한 마디와 함께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