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간이 흘러, 신반역이 폐역되기 하루 전 날이 되었다.

 

계획은 이렇다.

23일 오후 2시 30분에 신반역을 거쳐 포천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4시 31분에 신반역에서 하차.

이후 6시 19분에 신반에서 창이역으로 가는 열차를 탄 뒤,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것.

 

올 때와 갈 때가 루트가 다르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역에 정차하는 열차 편성 중에 신반역에도 정차하는 편성은 단 한 편 뿐이기 때문이다.

즉, 집으로 올 때는 인근 도시에 위치한 창이역에서 내려, 시외 버스를 타는게 최선의 루트이다.

 

이런저런 계획을 한 뒤, 나는 물건들을 챙겼다.

- 신반역을 찍을 카메라. 산지 6년이나 됐지만 아직 제법 쓸만하다.

- 물이 채워진 500ml 페트병 두 개. 신반역 인근은 거의 폐허일게 뻔하기 때문에 물을 마실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 연락을 위한 휴대폰.

- 보조 배터리. 용량이 넉넉하여 꽤 묵직하다. 안타깝게도 카메라는 충전할 수 없다.

- 휴대폰 충전 선. 4년동안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흠집 하나조차 나지 않았을 정도로 튼튼하다.

 

소집품을 가방에 넣고, 나는 집과 가장 가까운 역으로 떠났다.

 

...

 

덜컹 덜컹.

열차가 덜컹거린다.

 

이 일도 슬슬 지긋지긋하다.

폐역되기 일보 직전의 역이라봐야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역사에, 역 주변 교통은 더럽게 불편하다.

한 때는 음침한 곳에서 밤 10시 반까지 12시간 넘게 기다려 집으로 가는 막차를 타고 온 적도 있다.

 

그런 아까운 시간들을 만회할 만큼 역 디자인이 이쁘거나 흥미를 끄는 것도 아니다. 다 비슷비슷한 시골역들이다.

뭐 인터넷에 사진이 별로 돌아다니지 않으니 희귀하다면 희귀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희귀한 것도 아니다. 찾아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결국 고심 끝에, 이번 신반역을 마지막으로 역 탐사 활동을 모두 중단하기로 되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역을 탐사할 것이고, 내가 역 탐사를 안 한다고 해서 딱히 불편한 점도 없기에.

이 일을 그만둔다면 주혁이와의 관계도 증진되겠지.

오늘은 좀 늦게 집에 도착할 것 같아 사료도 넉넉하게 넣어 주었다.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벌써 신반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리니, 나를 반겨주는건 아주 휑한 풍경.

역 창문에는 녹이 슬어 있었고, 안에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군데군데 거미줄과 벌집도 눈에 띄였다.

역사를 빠져 나와 역 주변을 둘러 봐도, 첩첩산중에 방치된 폐가들만 그윽했다.

역 주변이 굉장한 오지이기에 차 소리는 커녕 인적 하나 없었다.

 

일단 사진기를 꺼내 느긋하게 사진을 찍기로 했다.

찰칵! 찰칵! 찰칵!

...

찰칵! 찰칵! 찰칵!

...

느긋하게 찍겠답시고 찍었으나, 역이 손바닥만했기 때문에 모든걸 찍는데 10분 남짓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제 이걸 끝으로 이 '취미'에서 나는 '해방'된다.

마지막 열차를 타는 로망을 즐기기 위해 이 짓거리를 지속해왔지만, 너무나도 반복된 일과에 더 이상 로망따윈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강박증이라고 봐야 할 수준으로 이 짓거리를 해왔다.

이제 집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만 타면 이 짓거리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다음 열차가 오기까진 1시간 30분이나 남아 있던 상황.

“하... 이런 첩첩 산중에서 뭘 하면서 시간을 때워야하나...“

 

참고로, 신반역 인근은 아예 수몰되기 때문에, 이 역이 단순히 폐역되는 수준이 아니라, 열차가 이쪽 선로로 더 이상 지나가지 않게 된다.

새로운 선로는 신반역에서 직선거리로 약 8km 정도 떨어져 있다.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신반역이 부활하진 않는다. 애초에 그 8km 떨어진 지점도 터널이다. 이 주변이 워낙 첩첩산중이라 역을 굳이 지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