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의 사이에서 여덟 개의 달은 한 없이 상냥하게 빛난다. 사막의 춥고 거친 밤을 밝혀주어 여행자들이 길을 잃지 않게, 조금이라도 따뜻히 거닐게 하늘 아래를 보살핀다. 

 

 소년은 바위에 앉아 달을 바라보며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던 한 여성,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품에 안겨 나근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스르륵 잠에 빠져버리는 장면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달빛이 소년의 하얀 머리카락을 미끄러져 내리며 강옥처럼 푸르고 깊은 눈을 비춘다. 이 사막에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눈동자, 밑바닥은 지독히도 차갑고 어두우며 무엇이 들어있는지 짐작조차 불가능했다. 곧 얼어 붙어버릴 호수를 가느다랗게 비추는 건 저 달빛처럼 은은한 기억의 조각들. 그녀는 누구일까, 상상이라기엔 그 희미함 속 따뜻함이 잊혀지질 않는다. 

 

 한창 생각에 빠져있을 때, 소년의 뒤켠에 누워있던 어린 사막늑대 한 마리는 특유의 크고 복슬거리는 귀를 소년에 팔에 비비고는 손을 핧는다.  

 

 소년은 그제서야 자신이 너무 감상적이 되어버렸단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린 듯 늑대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앉는다. 

 

“걱정시켰구나”

 

 이곳도, 소년도 낭만이나 추억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을 현실로 이끌어내준 어린 늑대의 동글동글한 턱을 긁어주며 고마움을 표한다. 한 마리에게 해주자 다른 네 마리는 자신에게도 해달라며 몰려들었다. 소년은 자리에 앉아 어린 늑대 다섯 마리의 턱을 긁어주며 시간을 보내고는, 이만 일어서버린다. 

 

  그 중 가장 몸집이 크고 얼굴이 순하게 생긴 녀석이 달라붙어서 더 해달라고 졸랐지만 소년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늑대 다섯 마리를 이끌고 간다. 이 천진난만한 녀석들은 작고 꼬물거리는 몸을 움직이며 최대한 늠름해보이려 애를 쓴다. 

 

 소년은 별자리를 보며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에 대해 다시 살펴보았다. 우레마 자리와 코톰 자리의 중간 쪽으로 가고 있었으니 목적지인 중앙성당이 있는 남쪽에 길을 잘 들었다. 달은 이럴 때 도움이 전혀 안 된다. 여덟 개의 달은 변덕이 심해 서로 이상한 궤도로 자리를 바꿔대고, 드물게 일곱 개로 줄어들기도 했다. 아침이 되면 저 달은 태양으로 변해 땅을 달구며 지독히도 괴롭힌다. 이 행성의 위성으로서 제 업무에 충실하지 못한 편이라. 

 

 그런 여덟 위성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드문드문 난 풀과 자갈 따위로 통일된 이 사막의 대지에서 사람 형상의 것들이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소년은 놀라지는 않았다. 

 

 달빛이 있다 해도 밤은 어두웠고 소년이 있는 위치에서 사람 형상의 것들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소년은 그게 몇 마리인지,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무엇인지 모두 파악하였다. 소년에게는 이런 한밤중의 풍경도 환한 대낮처럼 밝게 보이는 특이한 시력이 있기에 자신이 본 것에 대해 확신적인 의문을 표한다. 

 

‘좀비가 왜 이런 사막에 있지?’

 

 좀비는 본디 물이 많은 장소를 좋아한다. 물이 있다면 일단 무엇인가가 살고 있다는 뜻이며, 육체가 더 이상 부패할 것이 없어 물이 얼마나 고여 썩어있든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외형은 심지어 좀비와 골렘을 반씩 섞어놓은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두꺼운 다리와 올챙이처럼 톡 튀어나온 배, 덜 구운 도자기처럼 퍽퍽한 피부. 무엇보다 눈이 존재했다. 좀비는 본디 시야라는게 존재하지 않아 눈이 퇴화되었다. 지능도 한참 모자라 뇌가 어린 아이의 주먹만해져 머리도 짤막해야만 하는데 저 것들은 머리 모양도 사람과 흡사했다. 

 

 환경과 외견을 봤을 때 좀비라고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소년이 확신한 이유는 저것들의 행동 때문이였다. 

 

 살에 곰팡이인지 개미때인지 모를 검은 게 잔뜩 달라붙은 동물의 사체를 집어먹고, 옆에 있는 풀이나 벌레 따위도 납작 엎드려 게걸스레 먹는다. 여러 인간형 괴물 중에서 저런 식성을 지닌 건 좀비밖에 없다. 구울은 인간만을 먹고, 흡혈귀는 피만 마신다. 카마딘은 햇빛과 술을 받아 마시고, 물귀는 이끼와 풀만 뜯어먹는다. 본디 좀비는 노예로서 형벌을 받은 자들이기에 먹을 걸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였다. 그만큼 변종도 많아, 소년은 저 것이 아마 좀비의 한 종이라고 생각하였다. 

 

 누군가는 좀비가 죽은 주제에 산 자를 흉내내고, 먹는다는 행위를 베껴서 그 짓을 이어가기에 가증스러우며 혐오스러운 것이라 했다. 소년은 그런 것엔 신경쓰지 않았다. 

 

 좀비의 무리가 한창 식사를 하는 동안, 소년은 어린 늑대들의 안전을 위해 아주 뒤에서 따라오게 하고 그 무리에 접근한다. 소년과 가장 가까이 있는 좀비는 소년을 유심히 관찰한다. 

 

‘혼자 있음. 작지만 영양상태 좋음. 어림. 근육량 적음. 약함.’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사고방식으로 소년에 대해 판단하고, 소년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 좀비는 두꺼운 다리를 가진 개체 답게 빠르게 달려와서 소년을 덮치려 든다. 그러나 좀비 한 마리는 순식간에 심장이 뚫리고, 한 마리는 목이 잘렸다. 나머지 한 마리는 위에서 아래로 갈라버렸는데, 검붉은 액체와 함께 흥건한 물이 튀겼다. 후발주자로 온 놈들은 각각 팔과 다리가 잘렸고, 그 뒤에 있는 무리와 팔과 다리가 잘린 것들은 소년을 사냥할 수 없다는 걸 깨닫자 빠르게 도망쳐버린다. 

 

 어깨부터 깔끔히 잘려버린 놈은 그나마 살아남았지만, 다리가 잘린 놈은 절뚝거리다가 뒤에서 달려온 어린 늑대들에게 잡혀 물어뜯겨진다. 소년이 저것들을 쫓아가면 잡을 수야 있겠지만 꽤나 골머리를 썩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도대체 이 놈들의 정체는 뭘까. 알아보기 위해 시체를 해체해보아도 혈액이 진하고 장기는 꽤나 잘 구축되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좀비 중에서도 나름 상위종에 속하는 녀석들인 모양이다. 뼈는 얇은데 살이 질기고 단단했다. 좀비 특유의 악취도 나질 않았다. 지능도 훨씬 훌륭하다. 저 상황에서는 보통 막무가내로 덤벼드는게 정상인데 도망이라니, 좀비에게는 자유 의지가 본디 허용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어쩌면 좀비가 아니라 구울의 변종일까? 혹은 아예 새로운 종족일까. 그리 고민하는 사이 이번에도 덩치가 가장 큰 녀석이 낑낑거렸다. 입에 고기를 물고서는 자신의 앞에 뱉어 놓았는데, 수십번을 씹었음에도 잘리지를 않아 먹기 좋게 해체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였다. 사막늑대가 먹지 못할 수준이면 악어에게 던져주어도 별 소용이 없을 정도이리라.

 

 그래. 그래. 소년은 칭얼거리는 아이를 보살피듯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어설픈 실력으로, 그나마 먹기 좋게 고기를 해체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