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들의 미친듯한 울음소리가 귓구멍을 찔러 들어온다. 사실 시끄러운 것은 자는데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더운게 더 문제다. 이마에서, 목 언저리에서 너무나도 습하고 더운 공기가 내 몸을 때리듯이 지나갔기에, 불쾌한 기분에 매미소리까지 신경이 쓰이는 걸지도. 나는 눈을 감은채로 표정을 찡그렸다.

 

 잠깐. 왜 난 지금 눈을 감고 있는거지?

 

 난 어떻게 잠이 든거지?

 

 지금 난 어디지? 몇시지? 알바는? 공부는!

 

 젠장! 마치 침대 스프링이 고장난 것처럼 누운자리에서 튀어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서는 부어서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거칠게 부벼서 주변을 확인했다.

  나는 방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익숙한 책상, 익숙한 냉장고, 익숙한 창문이 눈에 보인다. 창문 옆 벽에는 여전히 내가 좋아해 마지 않는 가수 루비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꿈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 일단은 노량진 고시촌 옥상에 있는 내 방임은 확실해 보인다. 

 

 잠깐. 시간, 시간은?! 다행히 허둥지둥 뒤진 주머니 속에는 핸드폰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금요일 7시. 알바시간에 늦지는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가끔 술먹고 귀소본능이 잘못 발현되어 구름을 이불삼아 벤치를 침대삼아 자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나마 오늘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잠깐. 어젠 술은 먹지 않았는데.

 

 '어제'라는 단어에 반응하듯, 불현듯 흐트러진 퍼즐조각이 리와인드되듯이, 머릿속에서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이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어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려다, 어제 그 정신나간 여자애가 우리집에 방치되고, 걔를 버리러 나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이언맨마냥 날아다니고, 한강변에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지금 왜 집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어떻게 한강에서 집까지 온거지?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설마.

 

 나는 고장난 목각인형처럼 삐걱이는 고개로 침대 위를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달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새하얀 소녀가 대한민국 여름의 더위에 신음을 뻘뻘 흘리며  이불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침대 뒤로 보이는 현관문은, 열려 있다. 그것도 문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건물 옥상 사이로 떠오르는 서울의 아침 해가 적나라하게 나의 방을 덥히고 있었다.

 아아, 그래서 이렇게 더웠구만. 하고 고개를 끄덕... 일까보냐!

 

 "일어나!!!"

 

 분노에 찬 고함이 방 안을 울렸다. 어떤 사람이라도 열이 뻗치면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법. 나는 리돌이 자신을 날게 해준 아이언맨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서는, 말 그대로 '겁도 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느닷없는 호통에 리돌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녀는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그리고서는 나와 같이 주변을 한번 두런두런 둘러보고서는,

 

 

 "좋은 아침입니다, 민재."

 

 

 라고 말하고서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주 그냥 위기의식이 없구만. 나는 아무 말 없이 활짝 열려 있는 방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리돌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내 뻗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다, 그 끝에 있는 모든 손님을 환영할 법한 대문을 보고, 다시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아가씨 보게?!

 그렇지, 이 아이는 상식이 없는 아이였지. 그런 녀석에게 제스처만으로 모든 상황을 인식시키는 것은 좀 무리였던 것 같다. 나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기로 하였다.

 

 "일단 말이다, 우리집까지 날 다시 데려온 건 참 고마운데 말이지,"

 

 격한 고개 끄덕임. 니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임마.

 

 "저 문 말이다."

 

 리돌은 다시 문을 쳐다 보고서는 말했다.

 

 "문 말입니까?"

 

 "그래 임마! 문! 저렇게 문을 훌러덩 벌러덩 열어놓으면 너나, 나나 위험하잖아! 최소한 방에 들어왔으면 잠그지는 못하더라도 문은 닫아 놓아야..."

 

 ...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의문점이 생겼다. 


 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온 거지?

 리돌은 내 머릿속의 질문에 대답을 하듯이, 잠시 멈춘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도울 수 없습니다. 나는 문을 보았고, 기계에서 비밀번호까지 수용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민재,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난 문 밖으로 했습니다. 피로, 수면, 다시 넣어 하려 했습니다."

 

 아, 드럽게 알아 듣기 힘들구만. 수용이 어쩌고 일이 없어? 얘가 날 놀리나? 그리고 문으로 도대체 뭘 했다는 거야?

 

 "문 밖으로 뭘 해?"

 

 리돌은 다시 턱 밑을 조금 매만지더니, 한 단어를 말했다.

 

 "분해."

 

 "분... 뭐?"

 

 나는 잠시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 문을 확인하기 위해서 현관으로 걸어갔다. 지금 문을 분해했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런데 없다. 문이.

 

 분명 우리집 문은 밖으로 열리긴 한다. 하지만 문이 완전히 열리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문이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문이 왜 없어? 어제부터 자꾸 이상한 경험을 하다 보니, 이제는 그냥 헛것이 보이는 건가? 아니, 헛것이 보일라면 뭐라도 보여야지 말이 되는 건데, 이건 그냥 안 보이는 거잖아, 지금. 

 더 가까이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문을 잇는 두 걸쇠의 흔적만이 문틀에 남아 있을 뿐, 뭔가 다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없어진 것처럼. 혹시나 벌거벗은 임금님 마냥 투명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손으로 이래 저래 더듬어 보았지만,

 

 분명히 벽면에 붙어서, 경첩에 걸려서, 열렸다 닫혔다 해야 할 문이, 문이! 없다!

 

 나는 경악에 찬 목소리로 리돌에게 물었다.

 

 

 "야, 야! 문, 문! 어디 갔어!"

 

 

 리돌은 조금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분해되었다고."

 

 "아니, 니가 어떻게 이걸 분해해?! 설령 분해가 되었다고 해도 말이지, 이걸 어디로 치웠는데?!"

 

 "제 파괴자는 원자 분할합니다. 따로 치울 필요 없습니다."

 

 "원자?"

 

 고개를 끄덕이는 리돌. 지금 내 집 문짝이 원자단위로 분해되었다고?! 갑자기 리돌은 원피스 앞섶에 있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갈색 권총 비슷해 보이는 것을 꺼냈다.

 

 "이것이 파괴자입니다."

 

 왠지 무언가 중요한 설명이 날아간 듯한 제품설명이 끝난 후, 리돌은 왼손에 든 그 권총 비슷한 물건으로 식탁 위에 놓여있는 전자레인지를 겨냥하였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여 시방?! 이런걸 왜 보여줘? 문짝 어디갔냐고!

 

 "야, 그러니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리돌은 나의 말은 무시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쿠광! 천둥이 친듯한 굉음이 방 안을 휩쓸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터진 일이어서, 내 몸의 반응은 너무나도 느리게 찾아왔다. 나는 소리가 지나간 다음에야 어이쿠 하면서 방바닥에 나자빠져 버렸다. 시방 지금 장난치는거? 문짝 어디갔냐고 물어보니까 번개탄을 터트려?!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장난치지 말고 문짝 어디갔냐고!"

 

 리돌은 아무 말 없이 그녀가 겨냥했던 곳을 가리켰다.

 분명히 식탁 위에 있어야 할, 전자파를 이용하여 음식을 데우는 도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깜빡이면서 식탁 위를 자세히 들여다 보다, 다시 리돌을 바라 보다, 다시 식탁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식탁으로 다가가 그 위를 매만져 보기 시작했다. 아까 문짝을 확인할 때와 같이.

 분명히 어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 이 아이는 달에서 왔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어제 본의 아니게 그 실체를 확인해 버렸지만, 단 한번의 예시로 믿지 않았던 것을 단번에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이 아이는 분명히 현재 지구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초과학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 

 하지만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언제나 신선하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면 그 충격이 천천히 온다. 아니, 납득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몇 번 더 식탁 위를 더듬고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눈앞에서 파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는 소녀에게 물었다.

 

 "이, 이거. 되, 되돌릴 수는 있는거...야?"

 

 리돌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서는 다시 예의 갈색 권총을 돌려 잡고는, 윗쪽에 달린 다이얼을 조종하였다. 그리고 식탁 약간 위를 조준하였다. 그리고서는 방아쇠를 당겼다.

 브즈으으으... 아까와는 다르게 약간 전자기기를 구동할 때 나는 듯 한 소리가 지속된다. 총의 끝에서는 초록색 광선이 발사되고 있다. 광선은 마치 풍선처럼 둥근 모양으로 책상의 위쪽에 멈추어 있었고, 그리고 그 안에서 전자레인지가 밑바닥부터 재생성되는 것이 보여진다. 

 

 어떠한 말로도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 리돌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번역기를 돌려서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무슨 스타X렉에서나 나오는 기술력을 표현하라고 하면 무리가 있겠지.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초과학기술을 눈앞에서 보는 나의 심정은 지금,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그걸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에?" 라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는. 
 그리고 이것은 그저 이성적인 설명일 뿐이다. 지금 내 마음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그대로 나열하자면,   

 

 아니, 저기, 이게, 말이, 아니, 그러니까, 좀, 응?

 

 나는 완벽하게 얼이 빠진 상태로 내 전자레인지가 다시 재조립되는 과정을 그저 지켜 볼 뿐이었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라고 하였던가. 그런데 지금 만들어 가는 과정은 전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분명히 박살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느릿느릿한 것을 보면.

 한 5분정도 지났을까. 초록색 빛에 쌓였던 전자레인지가 제 모습을 모두 갖추자, 다시 아까 전 들려왔던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전자레인지는 식탁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소리와 맞추어, 나는 다시 기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