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눈으로 덮인 길은 탁한 마음을 맑게 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줬다.
바람은 차가워 살을 때렸고 대나무 잎은 흔들려 서로를 때리는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말의 콧바람은 얼어붙은채 허공을 떠다녀 이곳이 얼마나 극한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지표였다.
칠흑처럼 어두운 털들로 이뤄진 고급스러운 로브는 극한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도와줬다.

로브 속 에서 베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검은 손잡이 부분만 노출되어 있었고 오른손의 지팡이를 흔들자 비상하는 눈들은 겨울의 꽃 잎의 비를 내린다.

현자의 품 속에서 포근해보이는 흰 천에 감싸인 아이는 작은 숨을 내쉬며 잠들어있었다.
현자는 말의 고삐를 굳게 쥐고있지만 내리쳐 달릴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뒤 늦게 느껴진 살기가 이곳까지 다다라 말을 겁줬기 때문이다. 

추격이 붙었다는 건 예견된 일, 추격자가 주변의 공기를 뒤틀어 살의를 표출하고 있었다.
 공포감이 지배하자 전염되어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고  팔에 받쳐서 흔들어 달래보았지만 소용이 없어 보였다. 

 

"이게 너희들의 방식이더냐"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유리 대신사용 할 수 있을 만큼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눈보라 속을 헤쳐나온다.
사람보다 큰 칼을 한 손으로 든 기사는 푸른 눈동자로 현자를 응시한다.

 

"방식이 어떻든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어서 아이를 버리시지요.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시끄럽다."


달빛을 반사하는 칼날은 현자가 타고 있는 말의 다리를 일격으로 베어버린다. 
 다리가 잘린 고통으로 난동 치는 말을 뒤로 한 채 아이에게 충격에 가지 않도록 조심히 착지한다. 

허나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칼의 연격은 땅을 베었고 대나무를 가르며 현자의 옷자락을 베어버린다.
 피해서만은 끝을 볼 수 없다. 현자는 지팡이로 칼의 진로를 막는다.
 막강한 힘, 과연 마법으로만 싸우던 현자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큭" 

 

기사의 신음이 터져 나온다. 
기사의 검은 상황이 역전되어 지팡이로 짓누르는 힘을 버티는 신세가 되었다.
힘의 열세라 느껴지기는 수년간 전쟁터에서 싸워오면서  처음으로 느꼈다.

구름은 달을 잡아 삼킨다. 
바람은 대나무 밀고 풀을 흔들었다.
 빛나는 칼날은 달빛을 받지 못해 어둠 속에 침묵 할 뿐이다.
이미 승부는 끝이 났다. 
기사의 칼은 내동댕이쳐져 땅바닥에 튕기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뒤로 넘어지는 기사는 눈의 초점을 흔들린다
마법의 흐름을 이끌어 주는 지팡이는 이제 기사의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사신이 되었다. 

지팡이와 갑옷이 충돌하는 소리가 고요한 숲속을 울린다.
감아 버린 눈은 결과를 확인 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 다시 눈을 떴을 땐 현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기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손으로 가슴을 어루만졌을 때 무언가 비어있음을 깨닫는다.

 

"채플리 영감. 재가 감히 덤벼 막으려 했으나 영감님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수 없지요. 다만 저는 뿌리 깊게 박힌 나무의 떨어지는 낙엽입니다. 영감님이 상대해야 할 나무를 감당할 수 있겠소? 그 방향의 끝은 좋지 못하니 듣고 있다면 어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도 강력해  칼집을 지팡이로 삼아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영감의 뜻이 그렇다면···."

 

채플리는 도주 끝에  도착한 곳은 너무나도 그립고 익숙한 마을이었다.
왕을 처음 만난 장소이자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3명에서 목적 없는 모험을 시작했던 장소 
그러니깐···. 

 

채플리 본인에게 제일 그리운 장소였다.  
지금은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빨리 만나야만 하는 이가 있다
왕비의 동생, 이제막 20살이 된 로웰
언니의 딸을 지키겠다는 공통된 뜻으로 채플리와 함께 움직이는 로웰은 왕궁을 몰래 빠져나와 폐허에 숨어 있었다. 

어두운 밤 하늘,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로웰은 오래된 폐허에서 횃불을 들고 나왔다.

횃불의 따뜻한 기운에  의지하던 로웰은  채플리를 보고 높이 손을 들어 반갑게 흔들었다.

 

"로웰, 횃불은 안돼" 

 

채플리가 주먹을 움켜쥐자 불꽃은 일그러져 없어진다.
폐허를 비추던 밝은 불빛은 사라지고 은은한 달빛에 의지한다.
로웰을 목소리를 낮춰 변명하였다.

 

" 추운 날씨에 아이를 품기 위해서는 몸을 따뜻해야지 아이가 힘들지 않을 꺼라 생각하고 횃불로 몸을 녹이고 있었어요." 


"걱정하지 말아라, 내 마법은 무능하지 않으니 감싼 천만 붙잡고 있으면 아이가 추위에 힘들지는 않을 게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산에서 불빛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자 낌세가 좋지못함을 깨닳는다.

 

"추격이 붙었나요?"

 

채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브에서 반지와 편지를 꺼내 아기를 감싼 천 안에 넣는다.
반지 꺼내 유심히 보던 로웰은 풀 사이로 부스럭 소리가 나자 반지를 빠르게 감췄다.
채플리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곁눈질 했다.
늙고 주름진 손은 로웰의 어깨를 강하게 잡고 로웰의 두 눈을 본며 경고한다.

 

"그러니 더욱 조용히, 더욱 조심히 가거라. 이곳은 내가 막겠다. 어서!"

 

안개 속을 지치지도 않고 품은 아이만을 생각하며 로웰은 뛰었다.
안개에 빠져나올때쯤 뱃사공이 배 위에서 노를 저을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 올라타자 빠르게 노를 저어 멀리 떠나간다.
안개 속에서 칼붙이가 서로 맞대는 굉음과 사람들의 고함이 여기까지 들렸다.
 물의 흐름이 바뀌어 가파르지만, 뱃사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노를 저어 속도를 올린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물을 저어가는 소리만 들릴 때 목적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급식시절에 쓴 글인데 찌꺼기들이 많이 남아있어 감히 올려봅니당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