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writingnovel/389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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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공간이 하얀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 흰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희고 희다. 나는 그 바닥에 누어서 천장을 바라본다.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그냥 흰 어떤 물체일 뿐인 것 같다. 바닥에서는 차가운 한기가 등을 따라 전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에서 입자 같은 것이 떠다닌다. 곧이어 내 얼굴 위로 쏟아진다. 이건... 눈이다.

 

갑자기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고요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던 공간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이 불며 눈을 뿌려댄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나는 점점 몸이 얼어붙는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건 얼굴뿐이다. 나는 체념하고 눈을 감는다.

 

...

 

어둡고 싸늘한 공간에서 눈을 뜬다.

여긴, 내 방이다.

 

바람이 들어올 정도의 작은 틈이 보인다.
나는 일어나 창문을 닫고 침대에 앉는다.

 

지금은 새벽 6시,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수학문제집을 펼쳤다. 수학 학원에다 과외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숙제가 많아서 최대한 빨리 숙제를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어와 영어 숙제도 밀릴 것이다.

 

A4 용지보다 조금 더 큰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읽으며 수식을 적고 문제를 푼다. 푹 자지 못해 뻑뻑해진 눈 때문에 문제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제 진짜 안경을 써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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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은 (다행히도) 재밌다. 쉬는 시간엔 숙제를 하거나 매점을 가거나 친구들과 떠든다. 사실- 쉬는 시간에는 매점을 가거나 친구들과 떠드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수업을 재미있게 진행해서 인기가 많은 국어 선생님의 수업을 집중해서 듣거나, 깐깐하고 졸리는 사탐 선생님의 수업을 졸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노트에 필기하는 것이 학교에서 나에게 늘 있는 일이었다. 오늘 내 친구가 이산화질소를 우리 반 유행어로 만든 건 기억할 만하다. 아- 그리고.

 

오늘 동욱이가 나에게 “고마웠어”라고 말했다. 말수가 없고 조용한 친구라서, 먼저 말을 거는 일도 별로 없는데. 하얀 얼굴에 빨개진 눈두덩이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조용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에게만 그런 게 아니었다. 7교시가 끝나고, 야자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모두 떠나기 전에, 한명 한명을 붙잡고 그런 식의 인사를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야자 시간에 졸아 가며 겨우 끝낸 숙제를 가방에 넣고, 9시에 나선 교문 밖의 차를 타고 수학 학원으로 갔다. 수학 학원은 여기에서 거리가 있는 OO고등학교 근처 타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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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학원에서는 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솔직히 학원 수업이 너무 재미가 없다. 우리 학원은 월/수/금 선생님이랑 화/목/토 선생님이 다른데 화/목/토 선생님은 재미있지만 월/수/금 선생님은- 수면제다. 그래서 결국 선생님이 나를 깨웠다.

 

-너무 많이 조니까 잠깐 쉬는시간 가지자.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너무 잠오면 옥상에 가서 바람 좀 쐬고 와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학원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쇠로 된 무거운 옥상 문을 열고 나왔는...데
난간 앞에 위태로운 자세로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뭐야 ㅅㅂ. 거기 잠깐만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시 옥상 바닥에 발을 붙였다. 그리고 나는 차가운 바람이 쇳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광원이 바깥의 건물이 내뿜는 빛인 여기에서, 나는 창백한 빛이 반사시킨 그 사람의 얼굴을 봤다. 그는 분명... 동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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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오늘 꿈에서 느꼈던,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얼어, 그대로 굳어 버릴 것만 같은 차가움이 그의 손에서 느껴졌다.

 

-왜..... 죽으려고 한 거야.

 

동욱이는 아무런 말없이 울기만 했다. 흐느끼면서. 하늘에선 갑자기 눈이 내렸다. 나는 서서 조용히 , 그러나 명확하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었어.

 

-그냥. 살기
싫어.
나도
싫고.

 

나는 그의 등을 두들기며 진정시켰다. 그는 한참을 더 울었다. 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차가운 옥상, 눈 내리는 겨울처럼 차가운 공기가 서러운 것처럼 그는 숨을 힘들게 들이쉬었다. 춥다. 꿈처럼.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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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