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아, 날아가거라!

 

 

1. 귀염둥이 박기범 씨

 

박기범 씨는 신이 났다. 어제 산 스마트폰으로 벌써 수십 번은 더 찍었을 셀카를 또 찍으면서 장날의 공주 산성시장을 누비고 있다. 그 거드름 피우는 몸짓에, 구멍가게 김 사장도, 야채 장사 신 할머니도, 그리고 버스 터미널에서 담배 태우던 기사들과 줄 서 있는 승객들도 이미 박씨가 사진이 찍고 싶어 저러는 것이 아닌 것쯤은 척보고 알 수 있었다. 그 모양새가 몹시 볼썽사나웠기에 어지간하면 인사 삼아서 `아이고, 핸드폰 새로 샀슈?' 하고 오지랍 넓게 물어줄 사람들도 인상을 찌푸리며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터미널의 기사들만큼은 줄곧 외면할 수가 없었는데, 그건 박기범 씨가 운수 회사 사장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 먹은 외아들 놈이 허구헌 날 아버지 돈 깨먹을 궁리만 한다며 사장 걱정이 여간 아니었는데, 그 걱정 탓인지 한 아흐레 전에 박지마 사장이 중풍으로 쓰러져버렸다. 아버지 쓰러졌으니, 이제 자기 재산 좀 챙기겠다는 심보로 박기범씨가 터미널 운수회사에 처음 기어 나온 그 날부터 시장 사람들끼리는 후레자식이 따로 없다고 여간 쑥덕거린 것이 아니었다. 나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되어 가는데. 철부지 같이 나서고 뻐기고 다니는 것이 보통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라서, 사람들은 박사장에 대한 측은지심과 더불어 그들 자신의 안녕을 위해 박지마 사장의 쾌차를 빌고 있었다. 거기다 덧붙여 기사들은 정신 제대로 나면 박사장이 굴리던 운수회사는 절대 아들놈에게 넘기지 말아달라고들 기도하는 판이었다.

 

이야, 사장님 맛폰 새로 뽑으셨어요? 죽이네요! 하고 막내 변 기사가 마지 못해 입을 웃는 모양으로 구기며 인사를 하자 기범 씨는 씨익 웃으면서 짜식, 뭘 좀 아네. 이거 원래 몇 백만 원짜린데, 형 아는 동생 종식이, 종식이 있잖아? 그 놈이 핸드폰집 하는데 말야. 어제는 나한테 와서 이걸 주더니, 형 이거 그냥 가지세요, 이러는 거야. 그런데 형님이 되어서 공짜로 받으면 가오가 안 서잖아? 그래서 차비나 하라고 한 삼십 정도 쥐어주고 보냈지. 라며 자신의 너그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마치 온 몸으로 이 형님 너무 멋있지 않냐 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사들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제 시장 건너 전자상가에서 종식 씨 등짝을 척척 치면서 무슨 핸드폰이 삼십만 원 넘게 받아 처먹냐며, 공짜로 내놓으라고 어르다가, 나중에 수 틀리자 이게 어디서 약을 파냐며, 씨발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상품 집어 던지면서 상점 손님 다 내쫓은 일을 모를 사람이 여기 어디 있다고 박씨는 뻔뻔스런 거짓말을 늘어놓았고, 주위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이 영 좋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 박기범 씨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술이라도 먹었으면 평소대로 술기운에 왜들 똥 씹은 표정이냐며 지랄을 했겠지만, 맨 정신에 그러기는 겁이 났다. 어금니를 뿌득 갈면서 운전사 새끼덜 좀 있다 보자며, 모른 척 자리를 옮기려는 박 씨. 그 와중에 가오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까처럼 스마트폰을 하늘 향해 높이 쳐들고, 고개는 스티븐 시걸 이 꺾은 것마냥 얄궂게 꼬고는 셀카를 찍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막내 변 기사가 사장님 그 쪽으로는 가지 마셔요 라고 말렸으나 박 씨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무시했다. 흥, 말려봤자 이미 늦었다, 이 새ㄲ…

 

-철벅!

 

 

2. 수상한 노인

 

물씬 풍기는 구린내에 박씨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발끝을 확인했다. 똥무더기를 짓밟은 백구두 위로 말똥이 시원하게 한 가득 올라 있었다. 깨끗한 백바지에 지푸라기와 말똥건더기가 치덕치덕 들러붙은 것은 덤이었다. 멀리서 변 기사가 사장님 괜찮으세요 하고 달려와 묻는 것은 들리지도 않았다. 쪽 팔려, 쪽 팔려, 쪽 팔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박씨는 이게 뭐야 씨발!!! 하고 악을 썼다.

 

“뭐긴 뭐겠어유, 말똥이쥬.”

 

마침 사무실서 문을 열고 나온 노지심 부사장이 혀를 차며 대꾸했다.

 

“아침부터 뭣 때문에 그렇게 소란시럽대유? 워디 난이라도 났대유?”

“말똥이! 터미널에 말똥이 왜 있어?!!”

“거기, 악만 쓰지 말구, 고개 돌려 저기 터미널 구석탱이 좀 봐 보슈.”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과연 구석에 말 여섯 필이 딸린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말들은 박 씨의 고함소리에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박 씨가 저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노지심 부사장은 이 동네에 십오 년 전부터 오시는 분이라며, 소개하는 운을 떼었다. 가짜 닭꼬치 만드는 데 쓰는 비둘기 고기 팔아서 잉크와 종이, 새모이, 그리고 식료품을 주로 사가는 노인이 몰고 오는 마차란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노인분이라 그냥 사정이 딱해서 세워준다나 뭐라나.

 

“어이, 저기 마침 돌아오시네유.”

 

둥그런 철제탱크를 실은 수레를 자동차가 천천히 터미널 어귀로 끌고 오고 있었다. 자동차가 마차에 가까이 오자, 조수석 문을 열어주어 노인을 응대했다. 그러고는 싹싹한 태도로 수레와 마차를 연결해주고 있었다. 등이 굽은 노인은 거동이 편하지는 않은지 천천히 차에서 나왔다. 이리저리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들을 불편한 듯이 살피다가 자신의 어깨에 앉은 비둘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데, 그 모양새가 무척 겁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노지심 부사장과 눈이 마주치자 순박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하는데, 박기범 씨 동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호구다! 라고.

 

“아이고! 아이고, 이거 똥독 오른 것 좀 봐! 아이고, 나 살려! 아이고, 내 다리!”

 

그 자리서 멀쩡한 다리 붙잡고 뒹구는 박 씨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지랄병 시작이네 라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단 한 사람, 마차 주인 되는 노인만은 진심으로 놀라서, 뒹구는 박 씨에게 주춤주춤 다가갔다. 노인은 얼른 속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뭐라 휘갈겨 쓰고는 비둘기 다리에 묶어서 보내는데, 선 채로 받침대 하나 없이 편지를 써서 비둘기 다리에 묶는 노인의 솜씨나, 주인한테 편지 받고 원하는 사람한테 편지를 전달하는 비둘기의 솜씨나 모두 보통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비둘기는 잽싸게 박기범씨에게 날아가 편지를 읽으라는 듯 주둥이로 박 씨의 머리를 쪼아댔다.

 

귀찮다는 듯이 박씨가 비둘기에게 손찌검을 하려 하자, 노인은 그제서야 상대가 자신이 사용하는 대화수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깨닫고, 다시 한 번 송구스러워하며, 비둘기에게 다가가 어깨에 앉히고, 자신의 편지를 직접 박 씨에게 전달했다. 노인이 박씨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지나치게 진하게 바른 남자화장품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예민한 사람이었다면 그 남자화장품 냄새 너머에 숨겨진 미묘한 썩은 내도 맡을 수 있었으리라. 물론 한창 지랄병 연기에 한창 몰입하고 있던 박 씨에게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냥 화장품 더럽게 많이 발랐네 라는 생각만 했겠지.

 

노인이 직접 와서 자신에게 쪽지를 건네자, 박 씨는 어디 영화에서 보던 미국 놈들처럼, 자기 수표에 피해보상금 격으로 얼마 적고 사인해서 주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으나, 쪽지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괜찮습니까?

 

약간 어이가 없어, 다리 아픈 척 하는 것도 잊은 채, 박 씨는 멀쩡히 서서 쪽지를 계속 보고 있었다. 혹시 다른 내용이 더 있나 뒤집어 보아도 오로지 필기체로 멋들어지게 쓴 괜찮습니까? 라는 안부 인사만 적혀 있었다.

 

“괜찮냐고?! 괜찮아 보여? 이 백구두, 백바지, 이게 얼마짜린데 똥칠을 해?!!”

 

노인은 다시 한 번 허리 굽혀 미안함을 표하고 다시 편지를 써서 박 씨에게 건넸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현금을 다 써서 뭐라 보상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랑 같이 제가 사는 마을로 모셔서 보상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편지를 받고 박 씨는 씨익 웃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보상을 해준단다! 딱히 오늘 할 짓이 있는 것도 아니라, 박씨는 흥! 하고 못 이기는 척 말똥도 털지 않은 채 마차에 달랑 올라탔다. \

 

노인의 마을로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박 씨는 꽤나 거드름을 피우면서, 노인에게 쉴 새 없이 지껄여댔다. 자신이 누구이며, 재산이 얼마나 있으며, 자기 아는 권력자가 누구인데 이런 식으로 잡스런 소리를 한참 동안이나 늘어놓는데, 노인은 예,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 그런 분이시라니 모셔서 영광이군요 라는 식의 짧은 ‘편지를 써서’ 성실하게 맞장구를 쳐줬다.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 지껄이는 데에 정신이 팔려 그 맞장구 치는 내용의 편지 종이들을 흘끗 확인하고는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편지의 양이 꽤나 많아져 주머니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되자, 그는 그제서야 노인의 맞장구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딴 맞장구나 치려고 편지를 써서 비둘기를 통해 보내는 것도 이상한데, 기범씨가 눈을 마주치려 하면 노인은 뭔가 무서운 것이라도 본 양 고개를 홱홱 돌리는 것이 영 아니꼬웠다. 아니 그리고, 마차를 타고 있으려니, 주변 행인들, 자동차 운전자들이 동물원 원숭이 보듯 자신을 쳐다보는 것도 매우 마음에 안 들었다.

 

여러 짜증이 뒤섞인 박 씨는 팩 거리며,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이 편지 종이들 짜증난다고! 하고 쏘아붙였다. 노인은 또 송구스러워하며, 박 씨의 주머니에서 손수 편지종이들을 꺼내 주더니, 다시 편지를 써서 대꾸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말을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들입니다. 벙어리인 사람도 있지만, 서로 마주보면서 대화하는 것을 무척 불편해하시는 사람들이 사실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의사소통은 해야 하니 이렇게 편지를 써서, 비둘기 다리에 매달고 서로에게 전달하지요. 아시다시피, 수화는 조금 불편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뭐지 이 새끼? 라고 박 씨는 생각했다. 외계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처음 보는 인종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데, 막상 가까이 있으니까 께름칙했다. 몇 년 전에 처음 게이를 봤던 그 기분하고 비슷했다. 지금 데려간다는 그 `마을'도 음성 꽃동네같이 몸 불편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그런 뜯어 먹을 것도 하나 없는 거지 같은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골치 아픈데, 가면 막 못 나오는 거 아냐? 따위의 잡상이 들기 시작하여 박씨가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마차는 산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무슨 산이냐고 물으니 `시돈 산'이랜다.

 

산에 어느 정도 들어가고 나자 고약한 비린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박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하자, 노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냄새가 좀 나지요? 익숙해지실 겁니다.' 라고 적힌 편지를 보냈다. 곧이어 마차로 비둘기 다섯 마리가 들이닥쳤다. 노인은 능숙하게 한 마리씩 다리에 편지를 풀어주며 비둘기들을 허벅지에 앉혔다. 박씨가 흘끔거리며 보니 편지 내용은 전부 다 왜 이리 늦게 오냐는 식의 독촉들뿐이었다. 잉크가 다 떨어져가니 빨리 오라는 내용도 있었다. 친절히 하나하나 지금 곧 갑니다 라고 적어서 비둘기들에게 맡겨 보낸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박씨에게도 편지 한 통을 건넸다.

 

-전부 이야기를 편지로 하니, 잉크 떨어지면 아무 말도 못하게 될까 봐 사람들이 전부 걱정하지요.

 

“그러는 영감은 꽤 느긋해 보이는데?”

 

-나야 마을 사람들한테서 돈 걷어서 장날에 잉크, 종이, 비둘기 모이 사오는 사람이라, 잉크가 항시 내 손에 있는데, 뭣 하러 불안해 하겠습니까? 하하하.

 

“아니, 그럼 그런 것 사오는 데에 필요한 돈을 전부 영감한테 맡긴다고?!”

 

-그렇지요.

 

박씨는 영감 주머니에 쩐이 정기적으로 들어온다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확실히 노인은 무척 순박해 보였다. 단체로 무엇 좀 사오라고 돈을 맡겨도 삥땅 칠 걱정은 안 해도 될 사람처럼 보였다. 그 때부터 박씨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