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아, 날아가거라!

 


3. 새똥과 잉크가 흐르는 땅


이제는 마차가 마을에 아주 가까워졌는지, 나무 사이로 비둘기들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둘기들은 나무 여기저기에 빽빽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은근하게 내리쬐어서 성가신 늦여름의 햇볕도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약해졌는데, 이유는 해를 먹구름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처음에 당연히 하늘에 있는 그 무언가가 구름이겠거니 했다. 액체도 드문드문 내리는 것이 아마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구름이 저렇게 빠르게 점점이 흩어졌다가 모이던가 하고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그 무언가가 비둘기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드문드문 내리는 액체, 박씨의 어깨에도 이미 꽤나 질척하게 떨어진 그 액체가 새똥이라는 사실은 조금 더 있다가 알게 되었다.

 

마차가 천천히 마을에 들어서자, 마을의 하릴없는 늙은이들은 건물 속에 숨어서 노인 옆에 탄 이방인을 흘금흘금 훔쳐보았다. 그러고는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며 잡담을 시작했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팽이야?)


 (백양복 맞춰 입은 꼴이 여간내기는 아니겠군 그래>


<근데 왜 바지에 말똥은 칠갑을 하고 있는 거야?)


<최 노인, 저 덜 떨어진 작자가 말똥 버리다가 사고 쳤나 보군)
 

<맙소사, 또 그런 건가?)
 

<그렇겠지)
 

<저 노망난 늙은이 일 처리 어벙한 건 알아줘야지)
 

 (저 치는 젊었을 때에도 등신이었어,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봐왔지>
 

<이 놈이 어디서 나이 자랑 하고 있어, 어른 앞에서!)
 

 (나이 들어서 좋겠수, 영감!>
 

<뭐, 이 녀석이?!)

 

이런 식이었다.

 

어마어마한 비둘기떼가 쉴 새 없이 건물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자, 박씨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부 다리에는 편지가 묶여 있었다. 의사소통을 비둘기를 통해 편지로 한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상상 밖의 규모였다. 한 200명은 살까 싶은 이 조그마한 마을에 도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걸까?

 

먹구름과 같은 비둘기떼에 비처럼 내리는 새똥이라니. 보도의 바닥은 시꺼먼 잉크와 허연 새똥이 범벅이 되어, 마를 새 없이 항상 진창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 외벽 역시 새똥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냄새 역시 보통 고약한 것이 아니었다. 역겨울 만큼 진한 잉크 냄새와 비둘기 냄새가 동시에 코를 후벼 파서 숨만 쉬어도 구역질이 나려 했다. 지독한 냄새와 어이없는 풍경에 박씨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는지, 자신의 머리와 옷이 새똥 범벅이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무감하게 받아들인 채 입만 헤 벌리고 있었다.

 

최 노인은 놀라고 있는 박씨를 흘끔흘끔 보며 웃느라고, 새똥이 마차 끄는 말의 눈에 못 들어가도록 눈가리개를 해주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그리고 웃느라고 말 세 마리의 눈에 새똥이 직격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히히힝!!!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말 세 마리는 그 자리에서 두 발을 들고 펄쩍 뛰었다. 나머지 세 마리 역시 놀라 자빠지면서 같이 펄쩍 뛰는 바람에 선두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최 노인은 그제서야 눈가리개 생각이 났지만, 이미 늦었다. 마차는 기우뚱 옆으로 뒤집어지고 있었고, 뒤에 실은 짐수레도 마찬가지였다. 전복되는 마차에 박기범씨는 반사적으로 마차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고, 최 씨도 짐을 포기하고 보도에 몸을 던졌다.

 

마차는 꼴사납게 뒤집어졌다. 말들을 묶고 있던 나무 막대도 부서지는 바람에 마차에 묶여있던 몇몇 말들은 풀려나서 미친 듯이 보도를 질주했다. 길에 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은 달리는 말에 부딪치거나 밟혀서 나동그라졌다. 마차가 끌던 잉크 탱크는 짐수레가 넘어지는 과정에서 밸브가 그만 열려버렸는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로 관에서 잉크를 꿀럭꿀럭 게워내고 있었다.

 

<앙대, 내 잉크!)


<ㅅㅂ)


<아깝,ㅜㅜ…)


<기다려! 저 남은 잉크는 내 거야!)

 

젊은이들은 받을 사람도 없는 편지를 그 자리서 휘갈겨 쓰고는 하늘 높이 던졌다. 그리고 모두들 탱크에서 비어져 나오는 저 잉크라도 받기 위해 한 손에 잉크병을 들고 건물을 뛰쳐나왔다. 그들의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었다. 보이는 것은 오직 잉크를 게워내고 있는 저 탱크뿐. 달리는 말에 치여서 그들의 이웃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말에 치인 사람은 아파서 소리를 지르기는 했지만, 넘어진 바람에 잉크를 못 받을 걱정이 훨씬 더 커서, 내지른 소리는 비명이라기보다는 탄식에 가까웠다. 땅바닥에 엎드린 채 두 팔로 포복전진하는 그들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어떤 부상자들은 그조차도 할 수 없었는지 바닥에 엎드려서 ‘내 잉크도 좀 남겨줘’라고 편지를 쓰고는 비둘기를 통해 탱크쪽으로 보냈다.

 

잉크탱크는 이미 굶주린 아귀들 손에 범해지고 있었다. 누가 좀 지긋하게 받고 있을라치면 어느 새 다른 손이 튀어나와 자신의 잉크병을 들이대고, 또 그 잉크병은 다른 손에 의해 치워지고. 모두들 씩씩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잉크를 확보하려고 애를 썼다. 그 와중에 먼저 도착한 이들이 좀처럼 자리를 비키지 않아, 잉크병을 탱크에 가까이 댈 수도 없는 이들은 ‘양보 좀 해, 망할 놈들아!’라는 내용의 편지를 불과 50cm도 안 떨어진 사람에게 비둘기를 통해 보내고 있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다.

도보에 내동댕이쳐져 정신이 얼얼한 최노인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눈을 뜨려다가 비둘기 부리에 콕 찔려버렸다.

 

“아오---!!!”

 

최 노인은 수백 마리의 비둘기들에게 둘러싸여 온 몸을 쪼이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비둘기들은 편지를 받을 때까지 수신인을 쪼는데, 재수 없게 눈 뜨자마자 눈을 쪼인 모양이었다. 욱신거리는 눈두덩을 한 손으로 비비면서 노인은 한 숨을 내쉬었다. 편지 따위 읽지 않아도 뻔한 내용이었기에, 노인은 쉴 새 없이 쪼아대는 비둘기 부리에 한참 동안 망연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잉크를 버리다니, 자네 제 정신인가?)


<또 사고를 치다니 정말! 멍청한 놈!)


<냉큼 다시 사 와!)


<물론 네 놈 돈으로!)

 

 

4. 박기범이의 귀환


당연하게도 잉크는 모두에게 배급하기에는 모자랐다. 최 노인은 우울한 발걸음으로 자신의 집에 들어가 비상금을 꺼내어 잉크를 사러 다시 산성시장을 향했다. 백양복을 새똥과 잉크로 샤워한 박씨는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최 씨의 손에 이끌려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터미널로 돌아온 박씨를 보자, 운전사들은 박씨의 몰골에 놀람과 동시에 역한 냄새에 코를 싸쥐었다. 그제서야 노인은 경황이 없어서 마을로 들어오기 전에 몸을 대충 닦고 향수 뿌리는 것을 까먹었구나 싶었다. 그러다, 이미 저질러진 것 어쩌겠어 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얼빠진 표정에 어버버 거리는 박씨를 보자, 주위 사람들 몇몇이 쌤통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븅신 꼴값 떨다가 저렇게 될 줄 알았지 하는 소리가 수군수군 커지기 시작하자, 심술궂은 박씨, 드디어 정신을 차린다. 다짜고짜 최 노인을 멱살을 잡으며, 이걸 어떻게 책임지겠냐고, 이제는 네 놈도 개털이잖아, 이 천하의 개쌍놈아 라며 있는 욕 없는 욕 다 퍼붓는다. 최 노인이 당하는 꼴을 차마 못 보고 말리러 나선 노지심 부사장이 박씨의 앞을 가로막자, 박씨는 노씨의 얼굴을 보고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제 딴에는 워낙 기가 막히는 묘안이라 배시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못 이기는 척 최 노인의 멱살을 풀어주는 박씨. 제일 먼저 노지심 씨에게 물은 말은,

 

“노씨 아저씨, 혹시 찍새 아직도 기름장사 해요?”

 

노지심 부사장은 찍새라는 말만 듣고도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찍새는 운수회사에서 주로 이용하는 주유소 주인 안정직 씨를 박기범 씨가 꼬붕처럼 부릴 때 부르는 별명이었다. 그랬다. 사실, 박기범 씨는 일주일전에 처음 이 장바닥에 발을 들인 인간이 아니었다. 다만 이십오 년 넘게 근속한 운전사는 노지심 부사장 말고는 없었으며, 공주시도 그 사이에 개발이다 뭐다 해서 이곳 구 터미널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새로 개발된 신관동 쪽으로 빠져나간 바람에 장바닥에 그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도 꽤 드문 탓도 있고, 이십오 년이란 세월이 박씨가 소싯적에 쳤던 그 대규모의 장난을 풍화시켰기 때문에 아무도 박씨를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

 

노지심 씨는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십오 년 전이면 박씨가 스물다섯, 노씨가 서른 다섯이었을 적 이야기다. 그 해 여름, 노씨가 늦게 아이를 본 탓에 그 무렵에 부인이 첫아이 출산예정일을 받고 있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려 나가려니, 뱃속에 애가 무척 몸부림친다며, 아내가 배를 부둥켜안고 몹시 몸을 비틀었다. 아직 날짜는 좀 덜되었다만, 오늘이 그 날인가 싶었다. 뭐든지 처음 겪으면 허둥지둥이라, 얼른 집전화를 돌려서 운수 회사에 오늘 아내 출산 때문에 못 나올 것 같다고 교대 좀 잡아달라고 하니, 회사에서는 교대할 놈이 없다고, 아내 병원에 데려다 주고 그냥 나오라고 답이 날아왔다. 이런 씨부럴 하며 정신 없이 아내를 응급실에 보내주고, 발을 동동 구르며 수술실 들어가는 것만 보고 얼른 총알같이 출근한 노지심씨. 벌렁거리는 가슴에 평소에 안 하던 실수를 만발하며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몰고 촌구석 한 복판을 달리는데, 차가 그만 푸르릅, 푹, 펑! 연기를 내며 멈춰버리는 것 아닌가?

 

얼른 한 타임 돌고 교대한 다음에 병원에 들러볼 요량이었던 노지심 씨는 복장이 터졌다. 흥분할 대로 흥분하여 씨부럴 육시럴 육두문자가 라임을 타고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님들한테 기다려보라거나 죄송하다고 말할 정신 따위는 이미 없었다. 부리나케 뒷부분 보닛을 열어보니 절은 기름 냄새와 매연 냄새가 섞여 아주 고약했다. 몇 시간을 써 가며 사고 처리 다 하고 터미널에 돌아와 보니 오늘 사고를 당한 차가 노지심 씨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장 아들놈 박기범이 하고 당시 주유소 사장 아들놈 안정직이 두 새끼가 같이 작당을 해서, 못 써먹을 절은 슬러지 기름에 찌꺼기만 대충 걸러서 휘발유 조금 섞은 후에 버스 기사들에게 진짜 휘발유인양 팔아먹은 모양이었다. 하루 이틀 해먹은 게 아니라, 벌써 몇 달을 해 처먹었는지 차 안에 슬러지가 쌓이고 쌓였다가 결국 오늘 이런 사달이 나고 만 것이었다.

 

한창 기운 좋던 박지마 사장이 말 그대로 이성의 끈을 놓고 장바닥 한 복판에서 자기 아들을 맨주먹으로 떡을 쳤다. 그 날 그 모습은 이십오 년이 지난 오늘 생각해도 몸서리 쳐질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분에 못 이긴 박 사장이 몽키 스패너를 집어올 때 기사들이 참으시라고 아드님 잡겠다며 뜯어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그날 박기범 씨는 이승 하직하는 날이 되었으리라. 주유소 사장 안대림 씨의 경우, 사람 성정이 너무 물러서 호통만 치고 치운 모양이었다. 결국 박기범 씨는 쪽 팔려서 그 이후로 이십오 년 동안 이 산성시장 바닥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고, 안정직 씨는 적당히 눈치 보면서 장바닥에 눌러 앉아서 이제는 주유소 사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찍새 말이유? 또 무신 작당을 하려구유? 몰러유! 다리짝 멀쩡하게 붙어 있으면 알아서 찾아보슈!”

 

“아, 아저씨, 내가 아직도 그때처럼 장난이나 치는 놈으로 보여요? 내가 기가 막히는 사업 아이디어가 생겨서 그러니까 좀 알려줘요! 예전에 주유소 있던 그 자리 가 보니까 딴 건물 들어서서 없더만!”

 

“일 없슈!”

 

어유 저 성질머리 개 같은 영감탱이 하며 들으란 듯 외치며 터미널 나오는 길에 막내 변 기사한테 기름 어디서 넣느냐며 묻자, 변 기사 박기범 씨 몸에서 나오는 역한 냄새에 구역질을 간신히 참으며, 저기 아래에 있다고 일러줬다.

 

박기범 씨가 박기범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