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아, 날아가거라!

 

7. 첫경험


매주 최 노인에게 뜯은 목돈이 생기면 그 날 밤 술값으로 돈을 홀라당 털어버리던 박기범이와 찍새는 웬일로 근 2주 동안 목돈을 착실히 모으고 있었다. 3주 째 차익을 현금으로 만질 때에는 둘이서 배시시 떠오르는 미소를 참지 못한 채, 은밀한 눈짓을 주고 받으며 하이파이브를 쳤다. 최 노인은 무슨 일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편지로 보내는데, 박기범이와 찍새는 영감, 내가 오늘 영감한테 좋은 구경 시켜줄게, 오늘 그냥 눈 딱 감고 홍콩 가는 거야! 라고 어깨동무를 척 하고는 콜택시를 불러서 태웠다. 일찍 돌아가야 잉크와 종이를 사람들한테 갖다 줄 수 있는데요 라고 적은 편지를 보냈으나 박기범이는 보지도 않고 택시 안에서 편지를 찢어버렸다.

 

“가는 거야!”

 

차는 달리고 달려서 최 노인은 구경도 해본 적 없는 이상한 장소에서 멈췄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호텔 같은 곳이었다. 시각은 이미 밤이었지만 이리저리 오고 가는 고급 세단들 때문에 호텔 앞은 낮만큼이나 분주했다. 억지스런 어깨동무에 이끌려 노인은 호텔의 지하로 내려갔다.

 

얄궂게 옷 입은 색시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었는데, 최 노인은 눈이 어른거려서 시선을 도대체 어디다 놓아두어야 하는지 정신이 없었다. 여기가 의원님들, 사장님들 지방에 내려오면 접대할 때 오는 필수코스지, 아무나 올 수 있는 데가 아니야 라며 거드럭거리는 박기범이의 목소리 따위 최 노인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야릇한 마음을 품고 여성을 쳐다본 일이 도대체 몇 년 전인지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할멈 상 치른 지가 8년이요, 죽기 전 할멈 갱년기 온 게 또 한참 전 일이니, 대충 잡아 이십 년 넘게 최 노인은 이런 야릇한 분위기에 관심이 없었거나, 있었어도 그냥 불어가는 봄바람이겠거니 하고 무시하고 살아온 셈이었다. 오랜만에 강렬하게 불어온 봄바람이라 노인은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바람이 뼛골까지 스며서 노인의 몸을 벌벌벌 떨게 만들었다.

 

두 놈은 근본이 놈팽이라 꽤 익숙했는데, 방을 잡자마자 애들 데려오라며 매니저에게 거드름 피우면서 드러눕듯이 앉는다. 최 노인이 문 앞에서 쭈뼛거리자 안 들어오고 뭐해, 쪽 팔리게! 라며 억지로 구석에 앉힌다. 적당히 맘에 드는 아가씨들이 들어왔음에도 한 번에 OK하면 실장 놈이 쉬운 놈들이라 볼 거라는 심산에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다른 애들 데려오란다. 그렇게 세번째 아가씨들이 오자 못 이긴 척 좋다고 말하면서 헤벌쭉 웃는 두 놈팽이들. 아가씨들이 앉자마자, 소싯적 놀던 대로 정신 없이 여자 끼고 술 마시느라 바빴다.

 

최 노인은 두려웠다. 장바닥 사람이야 십수 년 보던 사람들이니 인사해도 겁이 덜 나는데, 여기는 생전 와 본 적도 없는 곳 아닌가? 최 노인 역시 사람이 무서워 비둘기 마을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순히 젊은 색시가 옆에 있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판 모르는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해코지할까 봐 무서웠다. 평소에 어깨에 앉아 편지를 전해줄 비둘기도 아까 콜택시 기사가 불평을 해서 마차로 돌려보냈다. 나 혼자 먼저 장터로 돌아가고 싶다 라고 편지를 쓰려 해도 색시들 때문에 눈이 어리고, 무서워서 손이 떨리는 바람에 쓸 수가 없었다. 그런 벌벌 떠는 꼴을 뱀 같은 아가씨들이 모를 리 없어서, 아가씨 중 하나가 노인의 허벅지에 손을 대며 술잔을 권했다.

 

“어머, 젊은 오빠. 이런 데는 처음이에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색시가 내미는 위스키 담긴 언더락 잔을 잡아채어 벌컥벌컥 들이켜버렸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이건 꿈이다. 그래, 난 아무 것도 모르는 거야. 난 지금 마을로 돌아가는 중에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다 아무 것도 아닌 거야. 그리고 최 노인은 이성의 끈을 풀어버렸다. 정신 없이 다음 술잔을 들이켰다.

 

8. 화끈한 새벽


“야, 씨발,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세 남자는 나란하게 어깨가 떡 벌어진 형님들 손에 내던져져서 호텔 뒷골목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최 노인은 술 두 잔에 뻗어버려 별 문제를 안 일으켰지만, 두 새끼는 정도가 지나치게 추잡한 짓을 벌여서, 결국 기도들 손에 쫓겨나고 말았다.

 

잠깐 경찰들이 용돈 벌이하려고 룸싸롱에 단속 같잖은 단속을 나왔으니, 자제 좀 해주십사 하고 실장이 두 놈들에게 부탁을 했으나, 이 두 놈들에게 그 말이 귀에 들어갈 정신이 있었겠는가? 옷은 훌렁훌렁 다 벗고 팬티 바람인 놈들이 룸에서 날뛰는 건 경찰이 아무리 눈 감아주려고 해도 힘든 노릇이었다. 결국 주점 실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런 손님은 오늘밤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만들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들이 뒷문으로 쫓겨난 사연은 그랬다.

 

택시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직 2차도 안 갔는데 라면서 성질이 안 풀려 혀 꼬인 소리로 성토대회를 하며 돌아오는데, 산성시장에 다 오도록 최 노인이 일어날 낌새를 안 보였다. 시각은 이미 새벽 2시.

 

시장 옆 구 터미널에 와보니, 터미널 문 앞에 말들이 짐수레와 연결된 채 자고 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그리고 술에 찌든 주인 냄새가 나자, 다들 깨는 눈치였다. 찍새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형님 내일 봐요 이히히 하고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내뺐고, 최 노인은 안 일어났다. 술기운이 덜 깨어서인지 박기범이는 최 노인은 내가 마을까지 바래다 주어야겠다 라고 웬일로 착한 마음을 먹었다. 말 따위 몰 줄 모르지만, 김유신이 음주운전 겸 졸음운전 해도 말이 알아서 주인이 잘 가던 술집으로 모셔다 줬다는 이야기가 그 와중에 이 무식한 박기범이 머리 속에 스치고 있었다. 그냥 씨발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에 최 노인을 태우고 자기도 타고, 말 등짝을 채찍질했다.

 

주민들은 횃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최가, 자네 왜 이렇게 안 오나 라는 편지는 이미 너무 많이 써서 더 이상 쓸 잉크가 없었다. 밤공기가 싸늘한 탓인지, 아니면 잉크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게 되었다는 공포감 때문인지 다들 이빨을 딱딱딱 거리면서 떨고 있었다.

 

도대체 그는 언제 오는가? 다들 마을 입구 어귀에 서서 마차가 오던 오솔길만 쳐다 보고 있었다. 불을 더 밝게 밝히면 오는 것이 더 잘 보일까 싶어서 주민들 전체가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한 손에는 빈 잉크병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다고 오지 않을 마차가 더 빨리 올 리 없었지만, 그들은 그만큼 조바심이 나서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몸과 마음이 지쳐갈 즈음에 저 멀리서, 저 멀리서 등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주민들은 조심스럽게 숨죽이고 지켜보기만 했다. 아까도 불빛이 보였으나, 길 잃은 등산객의 라이트였다. 횃불이 있는 여기까지 와서는 재워줄 수 없냐기에 아까운 잉크를 여기로 오십시오, 여기서 주무시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안내하는 데에 써버렸다.

 

등불은 천천히 가까이 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다각다각거리는 말발굽소리도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마차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들은 뛰쳐나갔다. 무작정 달리다 신발이 벗겨지는 이도 있었으나, 그는 괘념치 않고 계속 달렸다. 몇몇은 미친 듯이 밀어제끼는 뒷사람들 때문에 넘어졌으나, 모두들 아랑곳하지 않고, 넘어진 이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마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짐승도 아니었다. 유일하게 그들을 묘사할 수 있는 존재는 생살을 씹으려고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요즘 영화에 주로 나오는) 날렵한 좀비들 뿐이었다. 모두가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마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도착하자마자 누군가는 밸브를 열었을 것이며, 밸브에서는 슬러지 기름이 콸콸콸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너도나도 횃불 쳐들고 부대끼는 판에 기름에 불이 안 붙었으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었으리라.

 

기름 탱크 터지는 굉음이 잦아들고 나자, 주위에는 종잇장 구겨지듯이 찌그러져버린 탱크였던 쇠붙이와, 웰던으로 바싹 구워진 고깃덩이들 뿐이었…으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다.

 

불길은 순식간에 나무에 옮겨 붙었다. 이윽고 마을의 ‘기름진’ 대지에도 불길이 다다랐다. 땅으로부터 기어오르는 불길은 빠르고, 힘차게 건물 벽면을 타고 올라갔다. 마을은 곧 새벽을 밝혀올 태양보다도 더 붉게 빛났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시뻘건 불꽃 밖에 없었다. 폭발에 놀라서 마을로 도망온 몇몇 주민들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보자, 할 말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불길은 마을뿐만 아니라, 시돈 산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불 붙은 나무서 자고 있던 비둘기들은 일제히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기름에 절은 그들의 날개는 불꽃을 떨쳐내기에는 너무나 연약했다. 푸드득 푸드득 너도 나도 불 붙은 나무에서 날아오르고 나면, 보이는 것은 비둘기떼가 아니라, 허공을 가르는 불덩어리뿐이었다. 뜨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한 때는 비둘기떼였던 이 불덩어리들은 더 힘차게 푸득거리면 행여 날개에 붙은 이 뜨거운 불길이 잦아들까 더 높이높이 날아오르기만 했다. 이윽고 그들은 마을 위에 둥그런 고리모양으로 무리 지어서 날아가다 하나 둘씩 스러져갔다. 멀리서 보기에 그 풍경은 마치 마을 위에 주황색 천사의 고리(Angel halo)가 얹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고요하고, 신비한 밤이 붉게 밝혀지고 있었다.

 

화마(火魔)가 집어 삼킨 시돈 산 속에서 말 한 필이 검게 그을린 사내 하나를 업고 뛰쳐 나왔다. 사내는 일전에 여기 처음 왔을 때 지었던,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을 다시 짓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열기(熱氣)에 일렁이는 붉은 산과, 그 위를 맴도는 붉은 비둘기 구름을 보자 씨익 웃으며 주머니에서 맛폰을 꺼낸다. 간당간당한 밧데리로 멋지게 인증샷 한 방 찍어주시고, (물론 그 와중에도 얼짱 각도는 잊지 않으셨다.) 시돈 산도 한 방 찍어주시고, 페북에 소감문도 한 바닥 남기셨다.

 

-시ㄷㅗㄴ 사ㄴ 왓다 감 ㅅㅂ 졸라 멋짐 시바 불나ㅆㅡㅁ ㄱㅐ쩜

 


끝.